신약성서 배경사 요약
제 2 부 신학성서의 헬라주의적-로마적 배경
제 1 장 기원후 1세기의 로마 제국의 정치와 사회
알렉산더 대와이 정복을 통하여 이루어 놓았던 거의 무한대한 나라는 마케도니아 왕인 그가 젊은 나이로 죽자 곧 다시 붕괴되었다. 그렇지만 희랍어와 생활 습관은 알렉산더의 유산을 서로 분활하여 다스렸던 장군들의 지배영토 내에서 줄어들지 않고 계속하여 강한 영향력을 미쳤다.
1. 시이저의 지배하에 있는 로마 제국
결국 시이저가 그의엉적들으 누르고 권력을 잡는 데 성공한 후 독재 정치를 펴다가 갑작스레 살해 당했다.(기원전 44년) 시이저 살해자 제거를 위해 동맹했던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가 마침내 로마를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둘 사이에 불화로 인해 전쟁읅 하게 되어 옥타비아누스가 악티움 해전에서 승리한 후 로마제국을 다스렸다. 옥타비아누스는 스스로 아우구스투스란 명칭을 덧붙였다. 이는 선의 별칭이었다. 아우구스투스는 현명하고 적절하게 제국을 다스렸그므로 평화의 지배자로 환영을 받았다. 기원후 14년 그가 76세의 나이로 죽자 그의 양자인 티베리우스가 통치를 계승하였다. 티베리우스는 열심히 전임자의 정책을 추진하였으나 않은 의심과엄격함으로 적으 만들었다. 그의 통치시에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 사마리아의총독으로 임명되었으며 세례요한 등장, 나사렛의 예수가 치욕적인 십자가형을 받았다.티베리우스의 뒤를 이어
칼리룰라가 계승, 통치하였다. 그는 자신을 신과 동일하게 높이ㅣㅣ려했으며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자신의 입장을 세우려 했으나 많은 적으로 인해 궁중혁명으로 그의 통치는 끝났다.(기원후41년) 뒤를 이어 클라우디우스가 황제로 추대되어 다스렸는데 그는 양심적으로 통치하려고 노력하였다. 그의 통치시 로마에서 유대인들 끼리 그리스도에 관한 소식으로 분쟁이 일어나자 유대인들을 추방시켰다. 기원후 54년 클라우디우스는 그를 없애고 아들 네로를 왕좌에 앉히려는 부인 아그립피나에 의해 독살되었다. 통치권은 자연스럽게 네로에게 방해자는 생각없이 제거해버렸다. 그의 명으로 기독교 박해가 일어난 이유는 생각 없이 제거해 버렸다. 그의 명으로 기독교 박해가 일어난 이유는 로마시의 대화제 사건이 있었는데 범인이 네로라는 소문이 퍼져나가자 기독교인들을 범인으로 몰아 죽이도록 했다. 결국 모반이 일어나 자살하였고 이로인해 율리우스-클라디우스가의 통치가 끝났다. 팔레스틴의 베스파시안이 그의 군단에 의해 황제로 추대되어 권력을 장악하였고 안정과 질서를 다시 찾았다. 기원후 79년에 그가 죽자 그의 아들 티투스가 황제가 되었고 기원후 81년에 그의뒤를 이어 동생 도미티안이 황제가 되었다. 그는 권력의 절대적임과 신성을 공공연히 나타냈다. 그는 절대 복종을 요구하였고 로마인들은 이러한 군주를 원치 않았다. 기원후 96년 반란이 일어나 도미티안이 죽자 플라비 황가의 시대는 끝났다. 도미티안이 죽은 후 원로원은 스토아적인 지배자 네르바를 황제로 세웠다. 그후 트라얀,하드리안, 안토니우두스피우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 이르기까지 스토아 철학의 이상을 실현하려 노력했으나 단절되었고 평화는 유지되지 못했다. 그러나 제국은 내외적으로 번영되었으며 헬라주의적-로마적 문화는 별다른 방해없이 발전, 널리 보급되었다.
2. 기원후 1세기의 로마 제국의 사회적 상황
로마제국은 광범위한 국경을 무력으로 안전하게 방어하는 셰계적인 국가가 되었다. 그래서 이 세계적인 국가 안에서 헬라적이고 로마적인 유산이 통일성을 가진 위대한 문화로 하ㅂ성된 헬가주의적-로마문화는 별다른 지장이 없이 발전될 수 있었다. 로마인들은 정치적으로 무력한 희랍이 문화적으로는 우월하다는 것을 깨닫고 헬라에서부터 그들에게 쇄도해오는 풍부한 정신적 자산에 거리낌 없이 개방하였다. 헬라의문화는 언어, 자녀교육,가정생활,학문. 철학,생산과 경제,행정등 모든 면에 적용되었다.
3.황제 숭배
동양에서는 옛날부터 군주를 신의 아들로 여겨 숭배하였다. 얄렉산더 대왕이 그의 군대를 이끌고 동부 제국가들을 통과하여 승리의 행군을 하게 되자 희랍인들은 신국이라는 동양적 사상에 접하여 황제를 신으로 여기게 되었다. 군주에 대한 숭배는 우선 예배적인 형태로 표현된 정치적 충성을 상징하는 것이었다.로마인들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였다. 때문에 유대인에게는 군주 숭배를 강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대인과 기독교인이 분리되자 기독교인들은 회당에 참여하지 못하였고 이로 인하여 황제 숭배를 강요 받았고 로마인과 계속 충돌하였으며 콘스탄틴 황제 밑에서 시이저가 그리스도에게 굴복하기 까지 교회는 박해와 고난을 받아야 했다.
제 2 장 신약성서 시대의 헬라주의적-로마적 세계 안에서의 종교 운동과 정신적 조류
1.희랍과 로마의 신들
희랍인들이 숭배하던 신들은 자연 속에서 역사하는 힘과 능력을 형체화한 것들이었다. 희랍과 로마의 신들은 비슷했으며 사람이 사는 사회와 도시들은 각기 그들의 특별한 신을 가지고 있었다. 동양의 신들은 운명의 주인이지만 희랍과 로마의 신들은 인간에게 예속되어 있으며 단지 죽지 않는다는 점과 커다란 힘을 마음대로 사용한다는 점에서만 인간과 구별된다. 예배는 국가의 업무였기 때문에 국가의 번영을 위하여 월력의 정확한 순서에 따라서 시행되었으며 공직자들은 이를 장려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2.민속신앙과 운명 사상
인간의 생활 과정과 운명은 지상적인 힘들에 의존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들의의미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별을 관찰하였는데 그것은 인간 개개인에게 주어진 숙명이 별에 기록되어 있다고 믿엇끼 때문이다. 로마 제국을 지배했던 세계주의적인 포용성은 사람들이 어떤 신들을 부르든지 어떤 종교를 따르려고 하든지 그것들을 그들의 재량에 맡겨 두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각자 자기를 위해서 만족해야만 하였던 자유로운영역이 주어졌다. 미신적인 생각과 결합되었던 다소 분명하게 형성된 운명 사상은 많은 사람들엑세 널리 퍼지게 되었다. 모든 사람은 자기에게 좋은 운명이 주어지기를 바랐으며 자기와 자기에게 예속되니 사람에게 선한 것이 오리라는 전조를 얻으려 애썼으며 행복을 상징하는 튜게(운명의여신)의 형상을 매우 사랑하였다.
3.密儀 종교들
인간이 어떻게 음울한 운명으로부터 방어하고 자유롭게 되는지에 부분적으로나마 해답을 준것이 밀의종교였다. 이러한 밀교들은 인간에게 고통, 죽음에 대항하는 치유의 능력을 주어서 인간에게 구원을 약속하였다. 여기서 비밀이라는 말은 특별한 예배 행위를 위하여 모여든 종교적 모임이 그들의 종교의 내용과 의미에 대하여 그 종교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누설되지 않도록 엄격히 침묵을 지킨다는 말이다. 이러한 결과로 그들의 비밀스런 계율은 지극히 지킨다는 말이다. 이러한 결과로 그들의 비밀스런 계율은 지극히 적은 부분만 전승되었다.
4.통속 철학
헬라주의 시대에 에피큐르는 향학이라느 것을 인간이 참된 지혜를 얻어 모든 상활속에서 옳은 것을 찾아 행할 수 있을 때 도달할 수 있는 인간적인 건전함의 상태로 이해되었다. 에피큐르는 신의 존재는 부인하지 않았으나 신들이 인간의 삶에 개입하지 않으므로 인간이 신에 대하여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에피큐르 철학자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다. 때문에 세상에서의 향락적 쾌락을 추구하였다. 퀴니크의 철학자들은 에피큐르 철학자와달리 삶의 쾌락을 경멸하였다. 스토아 철학자들 역시 쾌락추구의 삶을 거부하였다.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인생의 과제를 배워 알게 하는 스토아 윤리의 실제적 방향은 퀴니크 학파의 이론과 관련을 맺고 있다. 스토아 사상은 헬라주의적 유대교에서도 받아들여젔다. 이외에도 고대 후기의 정신적 생활에 영향을 끼친 다를 철학 학파에 피타고라스 철학파와 플라톤의 세계관이 있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금욕적인 생활을 견지하며 회개를 촉구했다. 플라톤의 세계관 중 신론은 유대인에게 성서 텍스트로 채택되었다.
제 3 장 영지주의
1. 영지주의의 근본적인 구조
영지주의의 근본구조를 가능한 한 적절하게 표현하려고 한다면 도대체 영지주의는 그들 자신의 견해에 따르면 무엇이 되려고 하였는가 하는 문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영지라는 말은 인식을 의미한다. 지식은 인간에게 신 인식을 전달해 주는 계시를 통하여 주어진다. 인간은 인식의 대상 즉 하나님 자신에 의해 감동되면서 이러한 인식을 체험하게 된다. 영혼은 황홀한 지경에서 그를 인식한다.
이 세상의 내적 관계는 세상의 기원이 밝혀질 때에만 이해되어질 수 있다. 영지주의는 세목에서 여러 가지로 표현될수 있으나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는 특징들을 보여주는 우주 개벽설의 묘사로서 세상의 기원에 대하여 말한다. 창조는 순수한 빛의 세계 가운데 있는 신의 영역으로부터 한 부분이 하층 세계로 떨어져서 물질과 결합함으로써 일어났다는 것이다. 세상이 하강을 통해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신의 본래적인 작품이 아니라 지금은 적대적인 세력에 의하여 지배를 받고 있는 신의 소외된 작품이다.
인간관 역시 창조의 이해에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왜냐하면 태초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신화는 인간으로 하여금 그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느 속으로 던져졌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현재 상황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구원론 속에서 구원에 대한 물음이 답변되고 있다. 세상 위 먼곳에서 통치하고 계신 신과 인간의 영혼속에서 쉬고 있는 신적 본체는 자연적인 근사성을 근거로 하여 하나의 전체를 이루기 때문에 영혼은 그가 본래 내려왔던 상계로 다시 올라가야만 한다.
그러므로 구원은 인간 속에 숨겨진 신적인 핵심이 자유롭게 되고 그럼으로써 그의 본래적인 임무를 다시 받게 됨으로써 근원적으로 복귀하는 가운데 일어나는 것이다.
영지주의와의 싸움은 교회가 영지주의 이론에 대항하도록 창조론과 인간론, 그리고 구원론을 좀더 명백하게 표명하도록 교회에 도전하였다.
2. 전 그리스도적 영지주의의 증거로서의 코르푸스 헤르메티쿰
영지주의 사상은 18개의 논문을 모아 만든 코르푸스 헤르메티쿰이라는 책 안에 총괄되어 있다. 첫변째 논문은 거친 표현으로 영지주의 학설의 우주론, 인간론, 구원론을 총괄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세상의 기원, 인간의 창조 및 인간을 속박으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구원 등을 표현하기 위하여 짜맞추어진 많은 신화론적인 전승들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거듭남에 관하여 다루고 있는 열 세번째 논문이 무엇보다도 주목을 끄는데 이 논문에서는 성례전적인 행위가 아니라 신의 인식만을 생각하고 있다.
코르푸스 헤르메티쿰의 문헌들은 영지주의의 개념과 내용을 보다 명백하게 보여 준다. 인식은 정신적인 노력에 의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신도들에게 알려지기를 원하는 신의 계시로 말미암아 체험된다. 그러므로 영지주의는 그의 본질에 따르면 철학적인 명상으로 도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속에서 잠자고 있는 신적인 불꽃과 결합되어 있으며 인간으로 하여금 참된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신적 능력으로 가득 찬 인간 전체의 변화로서 일어나는 인식이다 .
3. 기원후 1세기의 영지주의 전파
기독교 복음을 어떻게 적절하게 표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영지주의와의 만남 가운데서 결정되어질 수 밖에 없었다. 모든 인간의 삶과 구원의 의미에 관한 공개적인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서 복음이 명백하게 이해되기 위해서는 영지주의의 유창한 말과 개념들을 빌어서 인간에게 설교되어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영지주의의 말과 개념들을 받아들였다고 해서 기독교의 선포가 내용적으로 변화되었거나 변조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어떻게 우리가 복음의 진리와 독자성을 해치지않고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이, 희랍인들에게는 희랍인이 될 수 있는지 개별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오린, 그리고 가끔 애써서 숙고한 후에야 비로소 결정될 수 있었다. 고대 교회에게 영지주의가 던진 도전으로 말미암아 - 유대인이건 희랍인이건 - 모든 인간에게 빚지고 있는 그리스도 복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해석을 하기 위하여 교회는 피나는 노력을 하게 되었다.
결 론
말라기 이후 하나님은 400년간 침묵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슬펐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제물을 가져오는 것을 번폐스럽게 생각하고 온전치 못한 제물을 가져오는 자기 백성들의 불신실한 태도에 깊은 상처를 입으신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난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그 고난의 세월을 통해 하나님은 메시아가 이 땅에 오는 것을 예비하셨다.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넘어 온 세상의 모든 범죄한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열심은 때가 되어 독생자를 보내심으로 그 엄청난 일을 이루신다.
유대인들과 희랍인들에게 전해진 십자가의 복음만이 이를 믿고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선물을 준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달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이며,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표출로서 선포된다.
인간이 보기에 미련해 보였으나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였으며, 인간의 보기에 비참한 패배로 보였으나 그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승리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바울은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언제나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언제나 사람보다 강하다고 말하고 있다.(고전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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