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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가 던지는 의미 - 엄상익 변호사

Joyfule 2022. 12. 15. 01:05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실패가 던지는 의미



이제부터 나의 실패했던 얘기를 하나 말하려고 한다. 

지금부터 삼십육년전 그러니까 변호사를 시작하고 막 한달쯤 됐을 때였다. 

아침 신문을 보니까 사회면에 거액의 도박사건이 터졌다. 

대학의 이사장과 재벌그룹의 임원등 사회지도층이 모여 판돈 수억에 이르는 포커 도박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가 보다 하고 무심히 지나쳤다. 그날 오전 사무실에 있는 내게 전화가 왔다. 

경찰서 출입기자로 있는 고교동기였다. ​

“야, 아침신문 읽었지? 고교동기 윤식이가 도박판을 벌인 사람들과 같이 유치장에 들어와 있어. 

아는 변호사가 너 밖에 없다고 연락을 해달래. 지금 구속영장이 청구됐다는 거야.”​

얼핏 중학교 시절 교실의 뒤쪽에 있던 윤식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검은 뿔테안경을 쓴 영리하게 생긴 친구였다. 

그런데 웃음을 흘리면서 건들거리는 스타일이 어쩐지 밸런스가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대화 한번 해 본 기억이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번은 기업 사장을 하는 친구의 집에서 모임이 있을 때 그를 본 적이 있다. 

아버지에게서 거액의 상속을 받은 부자 친구의 집이었다. 

몇 명이 ‘바둑이’라는 포커를 하고 있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판돈이 만만치 않았다. 

잠시 시간을 보내는 놀이를 넘어 도박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에 핏발이 서고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

나는 그가 어떻게 부자 친구와 도박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그는 부자집 아들은 아닌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대기업 사장의 비서로 일한다고 했다. 

나는 경찰서 유치장으로 갔다. 

그는 철창 안에 같이 잡혀온 몇 명과 함께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가 유치장 마루바닥에 앉아 있다가 일어나서 반색을 하며 철창 쪽으로 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지금 서울지검의 최검사가 영장을 심사하고 있다고 그래. ​
나 좀 살려줘.”​

구덩이에 빠져있는 그를 건져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구속영장을 심사하는 검사와 안면이 있었다. 

여유가 있어 보이는 부드러운 성격 같았다. 바로 검사실을 찾아가 부탁을 했다. ​

“첫 사건입니다.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때는 변호사가 많지 않았을 때였다. 

검찰이나 법원이나 변호사를 같은 식구라고 생각해서 많이 봐 줄 때였다. ​

“알겠습니다. 그 친구만 영장을 기각해 드리죠.”​

다음날 점심 무렵 그 친구가 석방이 되어 내 사무실을 찾아와 밥을 같이 먹자고 하면서 말했다.​

“같이 유치장에 있던 사람들이 내가 석방이 되는 걸 보고 놀라더라구. 

그러면서 너를 변호사로 선임할 테니 구치소로 와달라는 거야. 

부잣집 아들이고 대학의 재단이사장이니까 변호사비를 많이 받아도 될 거야.” ​

변호사는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일거리였다. 

그가 밥을 먹고 한 후 말했다. ​

“내가 갑자기 돈이 필요한 일이 생겼어. 돈을 꿔주면 사흘 후에 와서 갚을께.”​

나는 그가 말하는 대로 돈을 주었다.​
다음날 독립문 부근에 있던 서울구치소로 갔다. 

죄수복을 입고 재단이사장이라는 사람이 접견실로 나왔다. 

나를 대하는 그의 표정이 어정쩡했다. 그 순간이었다. 

국회의원 뱃지를 단 변호사가 뒤에 와서 서 있었다. 그가 나를 보면서 말했다.​

“엄 변호사 미안해”​

자신이 사건을 맡았으니 나는 사라지라는 소리였다. 

동물의 세계를 보면 다른 동물이 잡아놓은 먹이감을 빼앗는 포식자가 있다. 

나는 사냥한 먹이감을 빼앗긴 약한 동물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첫 사건의 실패였다. 

내가 감옥에서 빼 낸 친구에게도 수고비 한 푼을 받지 못했다. 

그는 당연히 공짜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꿔간 돈도 받지 못했다. 

그 친구는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십년 가까운 지금까지 어디서도 본 적이 없다. 

그 실패에서 나는 값진 교훈을 얻었다. 

돈 많은 사람, 부정한 일을 하고 돈으로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의 변호는 내 몫이 아니었다. 

내가 변론을 할 사람은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하고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람, 

가난해서 변호사를 선임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었다. 

변호사마다 하나님이 정해준 먹이감이 따로 있다는 걸 자각한 사건이었다. 

실패는 방침을 바꾸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