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를 해 오면서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조직폭력의 보스들은 주먹이 강할 뿐 아니라 머리도 좋은 것 같았다.
험난한 세계를 발판 삼아 여러 사업체의 경영자로 변신을 하기도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너있고 돈도 잘 쓴다. 그러나 위기에는 그들의 야수적 본능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어떤 게 그들의 깊은 내면에 들어있는 본심일까.
건달 보스 출신의 한 사람이 내게 자신의 내면을 이렇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저는 큰 돈을 밑천으로 사채업을 했죠.
돈을 빌리러 온 사람이 오백억을 벌 건수가 생겼다고 하면서 십억을 빌려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얼마 후 그 사람이 빌린 돈의 두배인 이십억을 가져다주어도 심사가 편하지를 않았어요.
내가 이십억을 받는 것 보다 그 사람이 오백억을 버는 게 더 배가 아프더라 이거죠. 그런 심보였습니다.”
그런 비틀린 마음이 그 혼자만 가지고 있는 것일까.
내가 가지고 있어도 남이 더 많으면 불행한 게 사람들이 아닐까.
그 반대의 마음도 있었다.
비행기의 일등석을 타는 사람들은 삼등석이 없으면 일등석을 타는 맛이 없다고 하는 수도 있었다.
그는 또 이런 말을 했다.
“얼마 전 저를 믿고 따르던 부하가 배신을 하고 검찰에 저를 밀고했어요.
그 친구 원래 소매치기 출신인데 돈을 좀 벌었죠.
그런데 어려서부터 힘들게 살아서 그런지 속이 꽤 뒤틀려 있어요.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면 철저히 까뭉개고 잘났다고 생각하면 뒤에서 씹어버리는 성격이예요.
도대체 누구 칭찬하는 꼴을 보지 못했어요.
그러던 친구가 어느 날 자기가 벌어놓은 돈으로 노인들을 돌보는 시설을 한다기에 개과천선을 한 줄 알고 감동을 받았죠. 그래서 그 다음부터 잘해주고 부하로 데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검찰에 제가 동대문 쪽의 사업을 빼앗았다고 모략을 해 버린 거예요.
배신감에 증오가 일어 손을 단단히 봐 줘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나는 마치 조폭 영화의 한 장면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반듯한 사람보다 뒤틀리고 비틀어진 사람들을 더 많이 보게 마련이다.
영화보다 더 잔인한 현실이 많았다. 악과 악이 부딪쳐 시퍼런 불꽃을 튕겨 내기도 했다.
법은 그들을 이용해서 그들을 청소하기도 했다.
조폭의 보스출신인 그는 영리한 사람이었다.
지방의 명문 중고등학교에서 줄곧 이등을 했다고 얘기했다.
일등이었던 친구는 판사가 되고 자기는 조폭 두목이 됐었다고 했다.
그는 소년범 시절 감옥에 있는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암기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그 자체가 성경이었다. 말씀이 그대로 술술 흘러나왔다.
그러나 성경이 그의 두뇌가 아니라 영혼 속에 스며들어 마음과 몸까지 지배하는 지는 의문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계속 조폭출신들이 많이 하는 사업에 발을 담그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진리의 말씀과 그의 험한 사업중 어느것이 그의 본체인지 나는 의문이었다.
그런 나에게 그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부하한테 배신과 모략을 당하고 손을 봐주려고 하다가 그걸 멈추고 한동안 생각해 봤습니다.
하나님이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는데 그 의미가 뭘까하고 말입니다. 그러다 깨달았습니다.
우선 저 자신이 살인죄보다 더한 죄들을 짓고 하나님한테 용서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망각하고 나보다 죄를 덜 지은 인간을 배신자라고 욕을 하고 혼을 낼 수 있겠습니까?
아니죠. 용서받은 나 자신의 죄에 비하면 배신한 부하는 아무것도 아니더라구요.”
성경이 그의 두뇌 속 계산공식을 바꾸어 놓은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그의 다음말을 조용히 기다렸다.
“이 세계에서도 남을 미워한다는 건 고통입니다.
저는 이번에 그 말씀의 의미를 알았습니다.
원수를 사랑할 정도가 되면 자기가 전혀 힘든 일이 없게 되는 거죠.
그게 구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배신한 부하를 불러다가 용서한다고 말했어요.
잔뜩 겁을 먹고 떨고 있더라구요.”
그들 사이의 피바람이 잔잔해졌다는 얘기 같기도 했다.
성경속 잠언에서 하나님은 비뚤어진 인간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마음이 비뚤어졌으니 하는 일마다 꾸미는 일마다 비뚤어졌구나
그리고 하는 일마다 사람들과 싸움만 일으키는구나.
그런 짓만 벌이고 돌아다니다가 어느 날 갑자기 황천길로 떨어지리라.’
죄 많은 인간의 본질과 속성을 꿰뚫은 말씀이었다.
그런데 무조건 황천길은 아닌 것 같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양쪽에 죄인이 있었다.
하나는 예수에게 애원했고 다른 하나는 저주를 퍼부었다.
애원하던 죄인은 황천에서 갑자기 낙원으로 길이 바뀌었다.
죄를 지었지만 애원 하나로 인간의 영원한 운명이 달라질 수 있었다.
인간은 누구나 먼지같은 존재이고 죄인이다.
복수를 중단한 그는 애원하는 죄인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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