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5.12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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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훈 문화부 차장
이 작품을 몇 해 전 소설로 먼저 읽었다. 읽는 내내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이 남은 것은 재기를 위해 분투하는 자녀들 뒤에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남매가 돌아온 집에는 생의 쓴맛을 본 자식들의 등을 토닥여 줄 아버지가 없었다. 알고 보니 삼남매는 아버지가 다르거나 이복형제였다. 자식을 키워 세상에 내보내고, 돌아온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모든 것은 어머니 몫이었다.
우리 소설에서 이런 모계사회적 가족 구성은 전혀 낯선 장면이 아니다. 2000년대 들어 한국 소설에서 아버지는 멸종동물이거나 흔적기관이다. 아버지들은 가부장적 권위만 내세우다가 아내와 자식들에게 왕따당하고 집 밖으로 내몰리는 무력한 존재로 그려진다.
'아버지'가 밀려난 자리는 '아빠'들 세상이다. 젊은 아빠와 병아리 같은 6~7세 아이가 함께 여행을 떠나는 '아빠, 어디 가?'라는 TV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더니 최근 '나는 아빠다'라는 코미디도 뜬다. 5월 가정의 달에 맞춰 서점가에는 '아빠라서 행복해' '아들아, 아빠를 닮지 마라' 같은 책이 쏟아진다. 이런 '아빠' 현상 이면에는 권위적이고 가까이하기 힘든 아버지보다 프렌디(친구 같은 아버지)가 각광받는 세태가 깔려 있다.
결혼한 남자가 '아빠'라고 불리는 시기는 대략 20대 후반부터 40대 초반까지다. 자녀가 고등학교·대학교 들어가는 40대 후반부터 아빠는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가 된 남자는 아빠였을 때보다 가족에 대해 더 큰 책임감을 느낀다. 그걸 보여주는 조사 결과도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이 2010년 한국의 50대를 대상으로 자녀를 언제까지 책임질 것인지 설문조사를 했다. "만 20세까지"라는 응답은 3.2%에 불과했다. 절반 가까운 41.5%가 "결혼할 때까지"라고 답했고 "취직할 때까지"란 응답도 23.9%다. 하지만 자녀들은 아버지에게는 늘 무심하다. "아버지, 어디 가세요?" 하고 묻지도 않는다.
소설가 박범신은 최근 펴낸 장편 '소금'에서 가족을 위해 늙도록 노새처럼 일하는 아버지들의 분투를 '치사함 견디기'라고 표현했다. 소설 속 아버지는 가장의 책임을 완수하려고 직장에서 크고 작은 굴욕을 견딘다. 그러나 아내와 자식들이 자신을 돈 벌어오는 기계로만 대하자 절망한 끝에 가출한다. 그 아버지의 결정에 "집을 나가기보다 가족에게 자신의 부담을 토로하고 위로를 구할 수는 없었느냐?"고 책망한다면, 그건 아버지의 '깊은 속'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어머니를 이해하려면 대화가 필요하지만, 아버지를 이해하려면 아버지 나이가 되어야만 한다. 아버지는 구차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소설 '소금'은 아버지 가출 이야기를 통해 가족 안에서 아버지의 가치를 되새겨보자고 제안한다. 위로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아버지, 오늘 하루 어땠어요?" 이 말 한마디면 처진 어깨를 다시 힘껏 펴는 사람, 그게 아버지란 이름의 남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