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다 스커트
스커더 집안은 역사상 가장 훌륭한 의료선교사 가문이었다. 죤 스커더(John Scudder)로부터 시작한 의료선교사 사역은 4대에 걸쳐 42명이 선교사로 헌신하였는데 그 기간은 총 1000년이 넘는 기간이였다. 아이다는 그 42명 중 죤 스커더의 막내 아들인 죤의 딸이였다. 그녀의 아버지 죤은 할아버지 죤과 마찬가지로 인도에서 의료선교사로 헌신한 사람이었다.
아이다는 1870년 인도에서 태어나 선교사 가족의 모든 아픔들(특히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져야 하는 외로움들)을 겪으며 자라왔다. 그녀가 어렸을 때 안식년을 맞아 미국으로 돌아온 가족들은 그녀만을 혼자 남겨두고 인도로 돌아갔는데 그녀는 그 기간이 매우 고통스러운 추억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그녀는 메사츄세츠의 노스필드에서 무디가 운영하고 있는 ‘여자청년 신학교(Young Ladies' Seminary)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가족의 전통을 이어받아서 선교사가 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던 1890년 졸업직후 무렵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게 된 아이다는 몇주후 어머니의 간병을 위해 인도로 가게 되었다. 아이다는 그곳에서 예정보다 더 오래 인도에 머물게 되면서 어머니의 간호말고도 여학교의 교사로서 68명의 학생들을 떠맡게되었다. 인도에 있는 동안 그녀는 가족들과 함께 있어서 행복함을 느꼈지만 그녀의 거의 모든 가족들(삼촌들, 사촌들, 부모들까지) 선교사로 봉사하는 스커더가문의 전통을 깨뜨리지 말라는 압력을 받았기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밤 그녀를 방문한 3명의 방문객(브라만, 힌두교성직자, 이슬람교인)들로 인해 아이다는 의료 선교의 ’소명‘을 가지게 되었다. 그날 밤 그녀는 난산을 하고 있는 산모를 도와달라고 요청을 받게 되었는데 종교 관습상 낯선 이성은 가까이 할 수 없었으므로 남자의사인 아버지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서 그녀를 찾게된 것 이었다. 그리고 아이다는 지옥보다도 더한 악몽의 밤을 새웠다. 그녀의 손을 거친 아이들 중 3명의 여아가 모두 죽게된 것이었다. 그녀는 원망과 기도속에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었다. 그녀가 하나님과 그렇게 가까이 한적은 처음이었고, 그녀는 그 시간 내내 하나님이 선교사로 부르고 계심을 느꼈다. 다음날 아침 마을에서 ’둥둥‘ 하며 울리는 북소리와 함께 산모들 모두가 밤에 죽었음을 전해들은 아이다는 인도 여인들의 비참한 현실을 깊이 생각하며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많은 생각과 기도 후에 미국에서 의학공부를 하고 선교사로 인도에 와서 불쌍한 여인들을 돕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다음해 아이다는 미국으로 건너가 1895년 가을 필라델피아의 여자 의과대학에 입학하고 1989년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기 위해 코넬 의과대학에 편입하여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공부를 마친후 아이다는 새병원을 지을 1만달러의 헌금을 지니고 노스필드에서부터 친구였던 애니 핸콕(Annie Hancock)과 함께 인도로 돌아갔다. 애니 핸콕은 아이다의 의료사역과 연결하여 복음사역을 할 계획이였다. 그러나 아이다의 첫 의료사역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아버지의 후광을 입고 인턴과정을 하려고 했지만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셔서 무산이 되었으며 인도인들은 아이다를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사의 도움이 필요해도 아이다를 찾지 않았다. 또한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의 실력도 서서히 늘어갔지만 인도에서는 미신적인 치료행위가 계속되었기 때문에 그녀의 치료가 무위로 끝나는 일이 많았다. 어떤 축제기간에는 의료행위가 모두 금지되었고, 환자는 개처럼 끌려다니며 귀신을 몰아내는 의식을 하였다. 한번은 심한 부상을 입은 환자의 환부를 깨끗이 소독하고 붕대를 감아주려고 자리를 떳다가 돌아와보니 상처를 ‘거룩한 재’로 범벅을 해놓아 목숨을 잃을뻔한 일도 있었다. 환자가 협조적인 경우에도 그들의 무지로 인해 많은 문제들이 생겼다.
아이다는 무엇보다 인도 여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의료에 대한 무지에서 벗어나 기본적인 의학 상식을 갖추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인도 여성을 위한 간호대학을 세우는 최대의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그녀는 모금활동을 시작하고 정부당국에 비협조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간호대학을 시작하였다. 입학생들도 기대와 달리 몰려들어서 151명 가운데 18명을 뽑았으며, 그중 14명이 4년 과정을 수료하였으며, 5명중 1명꼴로 합격하곤 했던 정부의 자격시험에서도 14명 전원이 합격하였으며 그 중 1등부터 4등까지를 그녀의 졸업생이 휩쓰는 쾌거를 이루게 되었다.
의료사역 가운데에서도 아이다는 영적 사역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녀는 바울 사도와 바울서신에 관한 4년과정의 성경공부를 실시하였으며 이 과정은 매우 인기가 높았다. 하루에 16시간을 일해야 하는 중노동의 의료사역에서도 그녀는 성경공부를 빠뜨리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의료사역은 애니핸콕의 복음사역의 문을 열어주었다. 처음 애니핸콕이 인도에 왔을때는 그녀를 집안에 들여보내지도 않았지만 아이다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그녀의 신망도 함께 올라 어디에서나 환영받는 존재가 되었다.
아이다는 1946년 75세의 나이로 은퇴하기까지 병원과 학교이외에도 마을진료소, 고아원들을 운영하였으며 은퇴한 후에도 10년동안 남녀학생과 의사들을 대상으로 성경공부를 하고 의사들에게 어려운 환자들에 대해 조언하는등 정력적으로 활동하였다.
처음 그녀는 조그만 방에서 몇 명 안되는 환자들을 데리고 시작했지만 이제는 100명의 의사에 484개의 병상을 갖추고 매년 20만명 이상의 환자를 치료하고 200명의 학생들을 배출해내는 현대적 의료단지를 이룩해내었다.
'━━ 영성을 위한 ━━ > 신앙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압 Joab (0) | 2018.08.13 |
---|---|
한국기독교 선교사 캠벨 (0) | 2018.08.12 |
한국기독교 선교사 베어드(배위량) (0) | 2018.08.10 |
존 하버드( JOHN HARVARD 1607-1638) : 영재들만 모이는 하버드대학 설립자 (0) | 2018.08.08 |
짧은 인생, 오랜 기억! 존 헤론 (0) | 2018.08.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