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압 Joab
히) '요아브' יואב - "여호와는 아버지이시다"
1. 다윗의 군대 장관. 다윗의 누이인 스루야의 아들이며, 아비새와 아사헬의 형제이다(삼하 8:16; 대상 2:16).
요압은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다닐때부터 형제들과 함께 다윗 편에 가담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그는 사울과 이스보셋의 군대 장관인 아브넬을 기브온 전투에서 무찔렀는데, 이 전투에서 이미 요압은 다윗 군대의 지휘권을 행사하고 있었다(삼사 2:12~32). 그 후 요압은 다윗과 협상하고 돌아가는 아브넬을 속임수를 사용하여 살해하였다. 요압이 아브넬을 살해한 이유는, 자기 동생 아사헬을 아브넬이 기브온 전투에서 죽인 사실도 있었으나 실제로는 아브넬이 다윗의 군대 장관 자리의 경쟁자였기 때문이었다(3: 22~29). 그 당시 다윗은 요압과 아비새 형제를 징벌할 만한 힘히 없어서 징벌하지는 못했으나, 요압과 그의 가족에 대하여 매우 신랄한 저주를 퍼부었다(28~29절, 31~39절).
대상 11:6(참조. 삼하 5:8)에 의하면, 요압이 맨 먼저 나가 여부스(예루살렘)사람을 쳐부수었기 때문에 다윗의 약속대로 사령관이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요압은 다윗성의 일부를 증축하였다(대하 11:8). 후에 요압은 다윗의 사신들에 대한 암몬족의 모욕을 보복하기 위하여 암몬과 아람 연합군을 쳐부수었다(삼하 10:1~14; 대상 19:1~19). 암몬과의 두 번째 전쟁에서 요압은 암몬 수도인 랍바를 완전히 포위해 놓고, 다윗이 그 성읍을 점령할 수 있게 해주었다(삼하 11:1; 12:26~31; 대상 20:1~3). 바로 이 전쟁에서 요압은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의 살해를 공조하였다(삼하 11:14~25). 다윗이 에돔을 정복했을 때. 요압은 6개월 동안 에돔에 체류하면서 에돔 남자들을 모조리 죽였다(왕상 11:15~16).
암논을 살해한 압살롬이 그술로 피신해 있을 때,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데려 오도록 다윗을 설득한 자가 바로 요압이었다(삼하 14:1~24). 그러나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키자 요압은 압살롬과 대항하여 싸웠으며, 결국 반역자 압살롬을 죽여 버렸다(18:9~18). 비록 반역자였으나 압살롬을 잃은 슬픔에 빠져 있던 다윗왕에게, 요압은 당돌하게 나아가 협박조로 왕의 잘못을 비난하였다(19:5~8). 그 후 세바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요압은 세바를 죽이고 반란군을 진압하였다. 이 진압 기간에 요압은 다윗이 군대 장관으로 지명한 아마샤를 부당한 방법으로 살해하고 다시 군대 장관이 되었다(19:13; 20:8~10).
다윗이 인구조사를 실시하려 할 때 요압은 적극적으로 반대하며 신앙적인 충고를 해 주었다(삼하 24:1~3). 그러나 요압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요압에게 인구 조사를 엄명하고 독촉하였다. 그 결과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삼일 동안의 지독한 온역을 겪어야만 했다(15절; 대상 21:1 이하). 요압은 다윗의 명령에 불만을 품고 레위 지파와 베냐민 지파를 인구 조사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요압은 아도니아가 왕이 되려고 음모를 꾸밀때 아도니야 편에 가담하였다. 그는 이스라엘 왕국이 어린 솔로몬보다는 장성한 아도니야의 손에 맡겨지는 것이 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왕상 1:7, 19). 아도니야의 잔치 석상에서 맨 처음 위험을 직감한 자는 요압이었다(41절). 다윗은 임종시에 솔로몬에게, 요압이 아브넬과 아마사를 부당하게 살해한 일을 상기시키면서, '그 백발로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고 유언하였다(2:5~6). 아도니야가 아비삭과의 결혼을 요청하면서 새로운 음모를 꾸미려 하자, 솔로몬은 아도니야를 처형해 버렸다. 이 소식을 들은 요압은 성막으로 도망하여 재단 뿔을 붙잡았다. 그러나 솔로몬의 명에 따라 요압은 브나야의 칼에 죽고 말았다(28~34절; 참조. 출 21:14). 요압은 '거친 땅에 있는 자기 집' 묘실에 장사되었으며(왕상 2:34), 브나야가 그를 대신하여 군대 장관이 되었다(35절).
요압은 다윗에게 충성을 다했으며, 유능하지만 양보심이 전혀 없는 출세 지향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무례했으나 매우 활동적이었기 때문에 다윗 왕조 건설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유익한 일들을 이루어 놓았다. 그는 또한 복수심이 강한 야심가였으며, 양심의 가책을 전혀 받지 않고 경쟁 자를 살해 하였다.
2. 그나스의 후손이며 스라야의 아들인 유다 지파 사람. 그는 '게하라심'("기술자들의 땅")의 조상(또는 거주자)이었다(대상 4:14).
3. 바핫모압 자손의조상, 요압 자손들은 바벨론 제 1차 귀향자 명단에 나타나 있다(스 2:6; 8:9; 느 7:11).
'━━ 영성을 위한 ━━ > 신앙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맥스웰의 탁월함 (0) | 2018.08.15 |
---|---|
에바브로의 신앙 (0) | 2018.08.14 |
한국기독교 선교사 캠벨 (0) | 2018.08.12 |
아이다 스커트 (0) | 2018.08.11 |
한국기독교 선교사 베어드(배위량) (0) | 2018.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