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한 우리네 교회에 대한 단상
올 겨울은 유난히 추웠으므로 따뜻한 봄이 기다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게다. 아무리 겨울이 춥더라도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는 없기에 말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 겨울이 온지 오래 되었지만 봄이 올 생각이 없다. 아니, 영원히 봄이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어두워지기도 한다.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멸망당하고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지만, 70여년 후에 다시 고향으로 돌려보내시고 회복시키지 않았는가? 그러나 그들 역시 끝내 로마의 침공을 받아 불행과 고통의 역사를 곱씹어야만 했다. 이러한 일이 우리네 교회에도 예외가 아니다. 작금의 우리네 교회는 영적으로 침체되어서, 교회지도자들의 탐욕과 교만 그리고 방탕은 하늘을 찌르며 세속적이고 종교적인 껍데기 교인들만이 교회마당을 밟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외면하고, 노인들이 세상을 떠나고 시간이 지날수록 교회가 텅텅 비어가고 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네 교회를 떠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여전히 하나님이 자신들과 함께 하시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조차 우리네 교회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왜 우리네 교인들만 이 사실을 모를까? 그래서 오늘은 이 얘기를 좀 하고 싶다.
먼저, 우리네 교인들은 성경을 읽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들은 성경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교회예배에 참석해서 수많은 설교를 들어왔으며, 각종 성경공부 프로그램을 수료하였고, 방송이나 인터넷을 통해 유명목회자의 설교를 듣고 있는 것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설교를 듣는 것과 성경을 읽는 것은 다르다. 설교는 성경말씀을 해석해서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는 설교자의 신학이나 목회철학, 신앙방식 등이 들어가 있는 셈이다. 또한 설교자들이 성경 전체를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자신들이 선호하는 주제나 말씀만을 가르친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는 습관을 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설교자가 다루지 않는 말씀이나 주제에 대해 무지하고, 설교자가 자의적으로 말씀을 해석해서 비틀어놓았다면 이미 변질된 말씀을 잘못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또한 성경공부 프로그램이나 공과공부도 다르지 않다. 교단에서 숭배하는 신학자의 교리로 이미 각색하고 편집해 놓은 내용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 성경 전체를 읽고 묵상하며, 성령이 주시는 깨달음으로 가슴에 새기지 않는 교인들은 성경적인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없다. 아쉽게도 우리네 교회에서는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습관을 가르치고 독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수십 년 동안 교회를 다닌 교인들도 성경을 제대로 아는 이들이 드물다. 교회에서 왜곡되고 비틀어진 내용을 알고 있을 뿐이다. 필자의 칼럼은 성경말씀을 근거로 주장하고 있지만, 기존의 우리네 교회에서 들어보지 못한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인들이 이런 칼럼을 보면 당혹해하며 도망치기 일쑤이다. 신앙의 연륜이 오래되고 교회직분이 높아도, 스스로 성경적인 내용인지 분별한 능력이 없기 때문에 낯선 것을 보면 두려워하며 도망치기 일쑤이다. 기가 막히는 일이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당시 성경인 모세오경을 암송해서 가르쳤다. 그러나 정작 성경의 주인공인 예수님을 몰라보고 십자가에 못을 박는 만행을 저질렀다. 성령께서 필자에게, 선생이 지옥에 가면 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다고 말씀하셨다. 선생이 변질된 성경을 가르치고 있다면, 이를 분별한 능력이 없는 학생들은 불쌍한 먹잇감에 불과하다.
두 번째, 우리네 교인들은 기도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날 방법이 없다. 설령 새벽기도회나 교회에서 시행하는 기도회에 참석하는 이들도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가 아니라, 자신들이 소원을 들어주거나 삶의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기도로 일관하고 있을 뿐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는,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통치하시고 다스려달라는 기도를 시작해서 찬양, 감사, 회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간구이다. 이런 기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두루 다니면서 찾아오시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는 이런 기도를 가르치지도 않고, 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사랑한다면 보고 싶어서 견딜 수 없어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기도하는 습관도 없으며, 어쩌다 기도자리에 앉게 되면 그 자리가 힘들어서 견디지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만나는 걸, 쓴 한약을 마시는 것처럼 싫어하는 이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인가? 그래서 하나님도 우리네 교회를 떠나시고 교회지도자과 교인들을 버린 지 오래되었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교회는 텅텅 비어가고 있다. 예전에는 주일학교와 학생부에 인원이 차고 넘쳤는데, 어느 교회를 가나 어린 자녀들이 교회에 별로 없다. 또한 젊은 사람들이 교회에 찾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예배당에는 중년과 노인들이 드문드문 자리를 채우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자신들에게 영적 능력이 없으며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이 사그라지고, 세상 사람과 진배없이 고단하고 팍팍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지 않는다. 이는 어릴 적부터 말뚝에 박힌 사슬을 다리에 묶고 평생을 살아온 서커스단 코끼리가, 다 커서 이제는 그런 말뚝 따위는 충분히 뽑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포자기하며 불행한 운명을 받아들이고 체념하며 사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평생 기적과 이적을 경험하며 놀라운 성령의 능력을 체험한 적이 없는 우리네 교인들은, 무능하고 무기력한 믿음이 성경적인 믿음이라고 믿으며 고단하고 팍팍하고 사는 게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고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이 땅에서 수고한 희생적인 신앙행위의 대가로, 이 땅을 떠나면 천국에 들어간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으니 놀랍지 아니한가?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적극적인 사고방식 투의 자기 확신을 성경적인 믿음이라고 여기며, 무당들에게서 들여온 기복신앙과 번영신학을 하나님의 약속이라고 믿고, 세속적이고 종교적인 신앙인이 참된 하나님의 자녀라고 믿고 있으며, 예배의식에 참석하고 각종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고 있으며, 인생의 짐 위에 신앙의 짐을 지고 건조하고 냉랭한 영혼으로 무능하고 팍팍하게 살아가면서, 교회에 지갑과 인생을 탈탈 털리고 살아가는 게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고 알고 있으니 기가 막히는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을 수렁에서 건져줄 생각조차 없으신 것 같다. 그 이유를 말씀하시는 성경구절을 올려드리며 칼럼을 마치겠다.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눅16: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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