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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의 쌀

Joyfule 2017. 11. 23. 02:25

 

 

  원제 : Riso Amaro
  제작 : 룩스필름(1949, 이탈리아)
  감독 : 주제페 데 산띠스
  주연 : 실바나 망가노, 빗또리오 가스만


  이탈리아 감독 주제페 데 산띠스 감독의 <애정(哀情)의 쌀>에는 맹목적인 사랑이 빚은 파국의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사랑에 눈이 먼 한 여자의 종착지, 그것은 죽음으로 귀결되는 비극적인 인생의 드라마임을 암시한다. 진실을 동반한 사랑은 위대할 수 있지만 무분별한 정염(情炎)으로 충만한 사랑이란 바람 속의 촛불처럼 불안하다. <애정의 쌀>의 히로인 실바나야말로 바로 이런 유형에 속하는 전형적인 에고의 여인상이다.

  # 모내기 떠나는 여자들의 행렬
  1948년 5월의 어느날 아침, 북부 이탈리아(삐에몬떼)의 백양나무가 길가에 늘어선 수전지대(水田地帶)로 품팔이 떠나는 모내기 여자들의 집단이 또리노역에서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왈타(빗또리오 가스만)라는 건달의 꾐에 빠져 근무하던 호텔에서 비싼 보석 목걸이를 훔쳐낸 프란체스카(도리스 다우링)는 그와 도망가기 위해 이 역에서 만난다. 그러나 여기까지 이미 경찰의 손이 뻗쳐 있었다.

  왈타는 교묘하게 형사의 눈을 피해 프란체스카를 품팔이 가는 여자들 틈에 끼게 한다. 그 가운데는 실바나(실바나 망가노)라는 요염하게 생긴 아름다운 처녀가 있었다. 처음부터 그녀는 왈타와 프란체스카의 거동을 수상하게 여겼다. 그렇지 않아도 즐기는 독서와 영화 탓으로 공상이 많은 그녀는 어떤 모험을 기대하며 프란체스카에게 접근한다.

  일행은 기차에서 내리자 군대가 머물고 있던 어느 농가에 도착한다. 실바나는 그곳에서 보병상사 마르코(라프 바로네)라는 씩씩한 사나이를 만난다. 그런데 프란체스카는 소중히 감춰뒀던 목걸이가 없어진 것을 알고 당황한다. 이러는 사이에 모내기 일이 시작된다. 프란체스카는 무계약패 여자들의 선봉에 나서서 열심히 일을 한다. 미리 계약을 하고 온 여자들보다 일을 많이 하면 자기네들과도 반드시 계약을 맺어 주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보장받은 일을 침해당하지 않으려는 모내기 여자들이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큰 싸움이 벌어진다. 실바나는 이 사건의 주모자가 프란체스카라는 사실을 알고 폭로한다. 
 

  여자들의 분노를 산 프란체스카는 도망치다가 마침 그 근방에서 사격연습을 하던 마르코 상사를 만나 도움을 받는다. 마르코 상사는 흥분한 여자들을 설득하여 서로 화해시키고 고용주에게 무계약패 여자들도 일할 수 있도록 교섭한다. 하지만 기고만장한 실바나는 문제의 목걸이를 꺼내 보이며 프란체스카를 도둑년이라고 마구 욕설을 퍼붓는다. 아울러 마르코 상사에게 자신이 목격한 모든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그는 저지른 일은 당사자들끼리 해결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목걸이를 프란체스카에게 돌려주라고 설득한다. 프란체스카는 뉘우침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실바나에게 자기는 지금까지 부자들의 생활을 부러워하여 왈타를 좋아한 나머지 그의 유혹에 빠져 죄를 짓게 된 것이라고 고백하고 모내기 일에만 몰두하겠다고 말한다.

  #파국을 몰고 온 왈타의 음모
  이 무렵, 어느 날 밤 숲의 놀이가 벌어진다. 모내기 여자들은 저마다의 연인들과 숲속으로 모여든다. 실바나도 여러사람 앞에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때 마침 또리노역에서 보았던 왈타가 나타난다. 서로 마주치는 눈과 눈. 그는 어느새 자석에 끌리기라도 하듯이 실바나를 따라 능숙하게 스텝을 밟는다. 신나게 돌아가는 부기우기춤.

  우연히 이곳에 들른 마르코 상사는 실바나가 걸고 있는 목걸이를 보자 분개한 나머지 달려들어 강제로 잡아뗀다. 왈타와 마르코 사이에 격투가 벌어진다. 마침내 굴복한 왈타가 프란체스카에게 그 목걸이가 가짜라는 사실을 실토한다. 프란체스카는 어이가 없었으나 쫓겨온 왈타를 큰 쌀창고에 숨겨 준다. 왈타는 이에 아랑곳없이 매혹적인 실바나에게 마음이 끌린다. 실바나가 왈타와 몰래 만나는 것을 안 프란체스카는 사나이다운 마르코에게 차츰 애정을 느낀다. 실바나는 적극적인 왈타의 공세에 프란체스카의 충고도 외면한 채 몸까지 허락하고 만다.

  이윽고 모내기가 끝나고 여자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에 앞서 송별파티가 벌어진다. 창고에는 모내기 여자들에게 나누어 줄 쌀이 가득 쌓여 있다. 이런 들뜬 분위기 속에서 왈타는 부하 세 사람과 창고의 쌀을 훔쳐 낼 계획을 세운다. 왈타는 먼저 실바나로 하여금 수문(水門)을 열게 한 후 사람들의 관심이 논에 쏠리는 동안 감쪽같이 쌀을 운반할 속셈이다. 마침내 쏟아지는 물로 연회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왈타의 음모를 알아차린 프란체스카는 제대하고 돌아온 마르코에게 이를 알리고, 왈타와 실바나가 숨은 식육(食肉) 저장소로 달려간다. 무서운 정막 속에서 권총을 꺼내는 마르코. 이때 돌연 왈타가 던진 식칼이 마르코의 어깨에 꽂힌다. 프란체스카는 얼른 마르코의 권총을 받아들고 왈타를 쏜다. 상처를 입고 비틀거리는 두 사나이. 마르코는 실바나를 향해 간절히 부르짖는다. "당신은 잘못이 없어. 지금이라도 마음을 돌리면 늦지 않아, 우리가 돕겠소."

  대답을 못하는 실바나에게 왈타는 어서 방아쇠를 당기라고 재촉한다. 프란체스카는 목걸이를 돌려줄 테니 제발 이곳에서 나가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실바나에게 그것은 가짜라며 왈타에게 더 이상 이용당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모든 것을 믿고 몸까지 바쳤던 왈타는 이런 악질적인 인물이었던가. 뒤늦게 속은 것을 깨달은 실바나는 상처를 입은 채 달아나는 왈타를 향해 힘껏 방아쇠를 당긴다. 그리고 송별 파티장 옆 높은 철탑 위로 올라간 실바나는 급히 달려온 프란체스카의 제지도 아랑곳없이 땅으로 뛰어내린다.

  다음날 고향길로 떠나는 모내기 여자들은 실바나의 시체 위에 배급받은 쌀을 한 줌씩 뿌리며 슬퍼한다. 허벅지까지 덮이는 관능적인 검은 스타킹과 검정 셔츠로 1950년대 젊은 관객들을 뇌쇄시켰던 실바나 망가노의 풍만한 볼륨도 이들이 뿌리는 쌀무덤 속에 불꽃처럼 사그라져 간다.

  주제페 데 산띠스 감독은 이렇게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무참히 바스라져 간 정염의 허상을 광활한 수전지대를 배경으로 강렬하게 농축시켜 놓고 있다.

  * 이성에 대한 그리움이 파도처럼 밀려오던 사춘기 시절, 누님이 평소 애지중지하는 스크랩 북을 몰래 훔쳐 보다가 그속에서 <모내기를 하는 실바나>라는 흑백의 스틸 사진을 보고 얼마나 가슴이 떨렸던지요. 그때의 심정은 이태리 영화 <말레나>에서 모니카 벨루치의 뒤를 자석에 이끌리듯 끌려가는 소년의 심정과 같았습니다. 모내기 철이 끝난 지금 모가 심어져 있는 유월의 들판을 바라보면서 실바나의 짧았던 삶을 생각해 봅니다.

 

  ㅡ유진 이딸리아, <우리들의 이야기>에서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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