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영화이야기

영화 <클래스>

Joyfule 2017. 12. 13. 22:25

 

 

 

  오늘, 혜화역 1번 출구 쪽에 있는 동숭아트센터 내의 하이퍼텍나다에서 <클래스>란 영화를 보았습니다. 프랑스 중학교 교육 현장을 다룬 영화인데 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지만 세 가지 점에서 극찬을 하고 싶습니다.

 

  1) 등장인물들의 연기력: 교사역을 맡은 프랑소와 베고도와 아이들의 연기가 너무나 '자연스럽다'.

  2) 감독의 연출력은 칸느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탈 만하다.

  3) 영화가 거의 전부 교실에서의 대사로만 진행되는데, 팽팽한 긴장감을 잃지 않도록 끌고 간 시나리오의 힘.

 

  아쉬운 점은 미해결의 부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1) 여학생에게 '창녀'라는 말을 한 교사에게 아무런 조처가 취해지지 않고 넘어간 점.

  2) 문제학생 술레이만이 퇴학을 당했는데 학우들이 거기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아직 알기 전인가?).

  3) 학생들과 교사들이 방학하는 날 한 판 축구를 통해 갑작스럽게 화해 무드를 조성하면서 영화를 끝맺은 것. 갈등이 있는데 그 갈등이 상존한 채로 영화가 끝나, 어 왜 여기서 끝나지? 하는 생각을 함.

 

  감독은 문제의 해결점을 보여주지 않고 문제점을 제시한 데서 끝맺은 것일 테니, 이런 결말이 이해는 갑니다. 감정을 부추기음악이 없다는 것, 감동을 유발하는 과잉이 없다는 것, 시나리오 작가가 교사나 학생의 편을 들지 않은 점(구태여 편을 들었다면 교사를 초인적인 인내심을 가진 이로 그렸다는 점)도 이 영화의 미덕이다.

 

  아무튼 12월 28일 화요일 오전 11시, 1월 1일 토요일 저녁 6시에 하이퍼텍나다에서 하니, 보고 싶은 분은 가서 보실 것. 재미는 없겠지만 잘 만든 영화인 것은 사실.

 

  줄거리

  좋은 교사도, 나쁜 학생도 없는 (클래스) | "가르쳐봐야 알죠, 울화통 터지는 거" - "배워보면 알죠, 말 뿐이라는 거"

  새 학기가 시작되는 9월의 어느 중학교 교실. 프랑스어 선생님 마랭과 아이들은 설렘과 긴장을 안고 수업을 시작한다. 좀처럼 다루기 쉽지 않은 개성 넘치는 아이들과 이성적인 면과 감정적인 면을 동시에 가진 열혈 4년차 교사 마랭의 수업은 매 시간이 불꽃 튀는 작은 전쟁의 연속이다. 서로 간에 흥미로운 교감과 치열한 갈등이 오가는 동안, 자신의 마음을 조금씩 열어가는 마랭과 아이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면서 이들은 숨겨 왔던 진심을 들키게 되는데…….

 파리 도시 빈민가의 한 고등학교. 프랑소와와 동료 교사들은 문화적 충돌과 문제아가 가득한 이 학교에서 수업을 준비한다. 프랑소와는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고루한 교육관을 탈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처음에는 선생님을 따르던 학생들의 반발이 점차 거세지면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위기를 맞게 된다.

 영화제 소개글: 프랑소와 베고도의 원작 소설에 바탕을 둔 영화로 다큐멘터리와 픽션을 혼합한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감독은 영화 속 개개인과 학교라는 구조를 직조하여 현대 프랑스 사회를 재구축한다. 한 교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 삶의 진실을 해부하는 작품. 학교를 소개로 한 영화 중에서 보기 드문 진정성과 실험성이 돋보인다.

 

  아래는 관객이 쓴 칭찬 글(비난 글은 설득력이 부족해 칭찬 글을 2개 싣습니다.)

 

 

  1. 소름이 끼칠 정도로 생생하다....★★★★

 

  <클래스>는 프랑스 파리 교외의 한 중학교 교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한 줄이 이 영화 스토리에 대한 모든 정보다. 그 학급에서 일어나는 세세한 사건들은 표현만 다를 뿐 아마도 거의 모든 이가 경험했던 또는 경험하고 있는 사건들과 대동소이할 것이다. 또는 이것은 단지 학급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의 단면이기도 하다.

 

  2008년 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클래스>는 다큐멘터리적 극영화라고 할 수 있다. 카메라는 시종일관 인물의 근접거리에서 끈질기게 따라 붙고, 몇 대의 카메라로 촬영된 장면들을 짧게 이어 붙임으로서 스크린은 생동감으로 넘실댄다. 많은 영화에서 봐왔던 학급, 그러니깐 뒤 또는 앞에서 학급 전체를 조망하며 선생과 학생을 한 화면에서 모두 담아내는 그런 식의 흔한 장면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카메라는 연신 선생과 학생의 얼굴을 번갈아 담아낸다. 마치 선생과 학생들(!)의 일대다 관계가 아니라, 선생과 학생의 일대일 관계가 학급의 본질적 관계인 것처럼 말이다.

 

  단지 촬영이라는 기술적 요소에 의해서만 다큐멘터리적 느낌이 묻어나는 것은 아니다. <클래스>의 원작소설을 쓴 작가 프랑수아 베고도가 영화의 주인공 마랭 선생역을 맡았고, 촬영 장소로 선택된 중학교의 교사들이 그대로 교사로 출연했으며, 그곳의 학생들이 오디션을 거쳐 학생을 연기하게 함으로서 그 어떤 영화에서보다 생동감과 현실감을 담보하게 된 것이다. 또 한 가지 말하자면, <클래스>의 로랑 캉테 감독은 구체적인 시나리오 대신 어떠한 상황만을 부여함으로서 학생들이 평소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해 자연스럽게 극을 이끌어가도록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현실과 연기가 구분되지 않은 생생함으로 영화는 상영시간 내내 유머와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클래스>의 학급은 여러 인종들이 모인 전형적인 다문화 학급이며, 그것도 주로는 가난한 학생들로 이루어진 학급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수업 진행에 집중하지 못하고 내내 떠들며, 선생의 말에 대꾸하기 일쑤고, 심지어 프랑스어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거나 쓰거나 읽지 못하는 학생도 있다. 이런 학급에서 우리가 익히 예상할 수 있는 문제들이 연이어 발생한다.

 

  이에 대처하는 교사의 자세는 어떨까? 학생들의 계속된 도발에도 불구하고 마랭은 아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아이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스스로 표현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자.. 이렇게까지 얘기가 되면 무수히 많은 영화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교사의 노력으로 학생들이 변화되고 그래서 훈훈하고 감동적인 엔딩으로 가는 수많은 영화들. 그러나 <클래스>는 헐리웃 영화적인 그런 진행을 거부한다.

 

  내내 반항의 기운을 물씬 풍기던 술래이만은 마랭의 칭찬에 조금 변화의 기미를 보이는 듯하지만, 이내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간다. 아니 오히려 반항은 더 심해지며, 급기야 수업 시간 도중 교실을 빠져나가고 이 과정에서 한 학생의 얼굴에 상처까지 남긴다. 이때부터 영화는 급물살을 타듯 파국으로 돌진한다. 술래이만에 대한 처리를 둘러싸고 마랭은 홧김에 해서는 안 될 말을 아이들에게 내뱉고 아이들은 이에 집단적으로 반발한다.

 

  그래서? 파국은 오는가? 마랭은 마랭대로 수업에 들어오고, 또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수업에 들어온다. 파국은? 현실에서 그러한 파국이 존재하는가?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헤피엔딩이나 파국은 그저 영화의 시나리오에만 존재할 뿐이다. 한 학생이 퇴학당하고 아프리카로 쫓겨 간다고 해서 또는 교사가 실수로 심한 말을 학생들에게 했다고 해서 그 학교가 문을 닫을 일도 없고, 교사가 그만 둘 일도 없으며, 심지어 학교 측의 처사에 반발하던 학생이 학교를 스스로 떠날 일도 없다. 수업은 그전 그 모습 그대로 진행된다. 소름 끼치도록 생생한 현실이다.

 

  <클래스>를 보면서 놀랐던 점으로는 첫 번째, 그 어떤 상황에서도 교사나 학교 측에 의한 강압적 체벌이 시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번째, 학교나 교사가 학생들에게 원하는 것이 높은 성적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기본에 관한 점이라는 것이다. 세 번째, 학생 한 명 한 명을 상대로 학교, 교사, 학생 대표가 모여 평가하는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네 번째, 학생들이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분명한 자기 생각과 자신의 존엄성에 대한 가치관이 나름 정립되어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의 특수성이 현재의 교육 제도의 특징으로 귀결되었겠지만, 어쨌거나 다문화 사회로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우리로서도 생각해봐야 할 지점인 것 같다.

 

  대학로에 있는 <하이퍼텍 나다>에서 <클래스>를 관람하였다. 예매한 시간에 맞춰 도착하니 웬 남녀 고등학생들이 바글바글이다. 대충 분위기를 보니 교사 몇 명이 학생들과 함께 단체 관람을 온 것이다. 심히 걱정이 되었다. 하필 내가 보는 시간에. 아니다 다를까. 영화가 약 1/3 지점에 다다르자 학생들의 동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차라리 그냥 밖으로 나가는 학생은 그나마 고마웠다. 속닥거리는 잡담들이 모여 꽤 시끄러웠다. 화면에선 프랑스 학생들이 떠들어 대고, 현실에선 객석의 학생들이 떠들어 대고. 분위기로만 보면 거의 4D 극장에서 관람하는 기분이었다. 영화와 현실의 완벽한 조우. 이걸 좋다고 해야 할지…….

 

  2. 공교육에 대한 수준 높은 고민

 

  클래스란 영화를 보았다. 우연히 슬리퍼 질질 끌며 집 앞 영화관을 찾아가 보았는데, 정말이지 무표정으로 들어가서 무표정으로 나오고 말았다. 물론 무념의 상태에서 들어가 상념의 상태로 나왔다는 것이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이 영화는 생각에 생각을 만드는 영화다. 이 영화가 정확한 메시지가 없이 나아가는 영화기 때문에 그렇다. 클래스는 ‘교실’을 뜻할 수도 있지만, 이 영화의 클래스는 바로 ‘계급’이다. 그리고 왜 클래스가 이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도 알 수가 있다. 프랑스 원제는 ‘Entre Les Murs’로서 ‘벽 사이에서’ 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교사와 학생의 계급이 주는 벽을 의미한다고 유추할 수 있다.

 

  한국에서의 학교란 성적지상주의 지옥도와 같다. 초딩1학년부터 고딩3학년까지 아니 그것을 넘어 대딩4학년까지의 과정이 마치 지옥을 빠져가는 것과 같아서다. 하지만 프랑스의 학교는 우리와는 조금 달라 보인다. 우선 이 영화의 주인공 젊은 선생님은 아이들을 다루는 것에 있어서 권위보다는 부드러운 말투와 미소로 대한다. 지식을 주입시키기 보단, 질문을 통해 다양한 생각을 얻어내려는 노력은 말로만 듣던 프랑스의 높은 교육수준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도 계급은 존재한다. 이 영화가 뒤틀리기 시작한 술래이만의 퇴학 사건을 보자. 교사의 부적절한 언행에 상처를 받은 술래이만은 문제아지만, 그동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교사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듣자 분노한다. 불량학생이던 그는 나름대로 학교라는 사회에 적응하려 노력했지만, 한순간의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거리로 내몰리게 된다. 하지만 이 사건에 원인을 제공했던 젊은 교사 마랭은 실수라는 이유로 단순히 경고로 그치는 약한 처벌을 받는다. 물론 그에게 술래이만의 퇴학으로 많은 비난이 가해졌지만, 학생과 교사는 엄연히 계급이 다른 존재다. 그렇기에 선생은 자신의 지위를 지킬 수 있게 된다.

 

  

  이 영화의 재밌는 점은 은유일 것이다. 선생과 학생은 바로 정부와 국민의 관계로 유추해낼 수 있다. 이것은 다양한 인종이 존재하는 프랑스의 현실과 마랭의 학생들은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마랭의 젊고 뛰어난 화술에는 사르코지의 얼굴이 비치는 것은 약간 오그라드는 해석일 수 있겠다. 한순간의 실수에 정부는 다시 그 권위를 쉽게 회복하고, 국민은 낙오되는 모습에서 프랑스의 현실을 보여준 연출자의 의도가 선명히 드러난다. 하지만 마랭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는 충분한 노력을 기울였다. 젊은 교사지만 충분한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의 밝은 면을 이끌어내려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의 언행 하나하나에 민감한 촉수를 가진 아이들은 그가 저지르는 작은 실수들에게 깊이 분개했다. 그러니 이 영화에서 선과 악은 구별되지 않으며, 그저 선생(정부)에게는 완벽한 고결함을 요구하고, 학생(국민)에게는 냉혹한 잣대를 들이미는 프랑스 사회의 시스템에 대한 수준높은 고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해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일이 없었다는 듯 평온을 되찾는 학교를 보며, 텅빈 운동장의 공허함과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안도감을 찾으려 할 뿐 도통 그 고민의 해결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극중에서 에스메랄다가 학기 마지막 수업에서 <국가론>을 읽었다고 자랑하는데, <국가론>에 등장하는 프랑스의 스승 소크라테스처럼 이 영화는 답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질문을 던지며 현실에 대한 생각거리를 제공하는데 주력하는 영화라 보면 되겠다.

 

  체벌과 폭력으로 완전한 권력관계가 드러나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절대 생각할 수 없는 영화로서, 높은 수준을 자랑하는 프랑스의 공교육을 통해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순수한의식의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출처: 이승하 : 화가 뭉크와함께 이후 글쓴이 이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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