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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날의 초상 / 문혜영

Joyfule 2014. 8. 1. 10:01

 

 

어린 날의 초상 / 문혜영

 

눈을 감으면 아지랑이 아롱아롱한 언덕길을 타박타박 걸어오는 조그만 계집아이가 보입니다. 수줍음이 너무나 많았던 조그만 가랑머리 소녀........

아득한 세월 저편에서 내게로 걸어오는 그 가랑머리 소녀는 언제나 말이 없습니다. 말이 없어도 나는 그 소녀의 말을 알아듣습니다. 누군가가 만약 소리 없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그 둘은 이미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우리들 서로는 끊임없이 둘이 되기도 하고 또 끊임없이 하나가 되기도 합니다. 소리 없는 말을 알아들을 때 하나였다가, 다시 또 막힌 가슴으로 둘로 갈라서는, 인간은 참으로 묘한 존재들입니다.

가랑머리 소녀, 때때로 내게 찾아와 가슴을 휘저어 놓고 가는 소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어린 소녀로만 있는 어린 시절 속의 나! 나는 지금, 지워지지 않는 영상으로 내 가슴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그때의 나를 보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은 이북에서 살다가 1?4후퇴 때 월남하였습니다. 피난을 나오면서 아버지를 잃고 또 오빠마저 세상을 떠나게 되니, 남은 사람은 어머니와 올망졸망한 우리 네 자매뿐이었습니다.

 

사선을 넘으면서 목숨 하나 부지하기도 어려웠던 우리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빈주먹으로 어느 도시에 정착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그곳의 여자 상업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게 되셨기 때문입니다.

방 한 칸 마련할 수조차 없었던 우리의 처지를 생각했음인지 학교에서는 관사에서 살도록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말이 관사지 방이 둘, 부엌이 둘 있는 작은 일본식 집이었습니다. 그나마 방 하나는 숙직실로 사용했기 때문에 우리는 방 하나만을 차지하고 살았습니다.

나는 지금도 그 집이 눈에 선합니다. 방과 후면 어머니가 가르치시는 학생들이 우리 집에 들끓었습니다. 짙은 감색 교복에 하얀 칼라를 단 언니들이 떼 지어 오면 나는 혼자 마음속으로 예쁜 순서를 꼽아보곤 했습니다.

 

전쟁 뒤였기에 모두가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수난을 함께 겪었던 그 당시 사람들의 마음은 지금보다 훨씬 순수하고 고왔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 우리 집에 들락거리던 어머니의 제자들은, 그 외롭고 고달팠던 시절의 은사님이셨던 어머니를 못 잊어 하며, 삼십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스승의 날이나 어머니의 생신이면 찾아오곤 합니다.

나는 그 집에서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그리고 막내인 내 동생은 내가 3학년이 되던 해, 만 다섯 살도 안 된 나이로 내가 다니는 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학교에 다닐 나이가 안 되었지만 어머니가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유복녀로 태어난 내 동생은 내가 학교에 가고 없으면 심심하고 외로워서 어머니가 가르치시는 교실마다 찾아다니며 어머니를 난처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동생은 어머니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교실을 찾아내어 문을 빠끔히 열고는 "엄마, 나 심심해!", "엄마, 나 배고파!" 했습니다. 학생들은 동생이 귀여워 까르르 웃어댔지만, 어머니는 마음이 아프셨던 것입니다.

언젠가는 우리 앞집에 사는 마리아네 엄마가 아기를 낳자 마리아가 그것을 자랑했습니다.

"우리 아기 참 예쁘다. 너넨 아기 없지?"

아기가 무슨 인형쯤 되는 줄 알았던지 동생은 교실 문을 열어젖히고

"나도 아기 하나 낳아 줘!"

하고 울어 버린 일도 있었습니다.

 

동생이 입학한 후, 첫 번째 맞이한 봄 소풍 때의 일입니다. 김밥, 사탕, 과자, 과일 등 어머니는 동생 몫과 내 몫을 한 보자기에 싸주셨습니다. 보자기가 하나뿐인데다가 동생이 너무 어리기 때문에 점심시간에 나보고 챙겨 먹이라면서 그렇게 싸 주신 것입니다. 나는 동생의 손을 잡고 학교를 향해 팔랑팔랑 걸었습니다. 날아갈 듯이 즐거운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 도착해 보니 1학년과 3학년이 각각 다른 곳으로 소풍을 간다는 것입니다. 3학년은 1학년보다 조금 더 먼 곳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난감했습니다. 도시락을 둘로 가를 수도 없을뿐더러 어린 동생을 혼자 보내는 것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르다가 나는 결정을 했습니다. 저 어린 동생을 위해 오늘 하루 학부형이 되어야겠다고 말입니다.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쾌히 승낙하셨습니다.

 

나는 먼저 출발하는 우리 반 소풍 대열을 한참이나 바라보았습니다. 눈물이 나오려고 하는 것을 꾹 참고 동생네 소풍 대열을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신입생들이라서 그런지 학부형들이 꽤나 많이 따라왔습니다. 1학년 아이들과 비교해도 별로 크지 않은 조그만 내가 어머니들 사이에서 걷고 있으려니까 어머니들은 무척 궁금한 모양이었습니다.

 

"몇 학년이니? 너는 왜 소풍을 안 가고 여기 왔니?"

그렇게 물어볼 때마다 도시락 보따리가 왜 그리 부끄럽던지, 감출 수만 있다면 어디에든 감추어 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런 마음 때문이었는지 도시락 보따리가 자꾸만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 동생을 솔밭 그늘로 데려와 점심을 먹였습니다. 동생은 언니인 내가 저를 따라온 것에 대해선 아무 생각도 없는지 재잘거리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은 뒤,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에 따라 동생은 다시 제 동무들 곁으로 갔습니다. 혼자 앉아 도시락 보따리를 챙겨 싸는 내 눈에는 뿌연 안개가 서려 왔습니다. 참았던 눈물 한 방울이 볼을 타고 흘렀습니다. '아, 이러면 안 돼, 난 오늘 학부형인데, 눈물 따위를 보이다니!' 나는 누가 볼세라 손으로 얼른 눈물을 닦아 냈습니다.

아름드리 소나무에 기대어 서서 동생네 반 아이들이 뛰노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수건돌리기, 술래잡기, 보물찾기....... 즐겁게 웃는 동생의 모습이 아지랑이처럼 아롱거렸습니다. 솔밭 위 하늘엔 눈부시게 하얀 학들이 너울거리며 날아다녔습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참으로 길고 긴 하루였습니다. 아홉 살의 소녀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힘들었던 봄 소풍. 그런데 왜 가끔씩 그 때가 그리워지는지 나도 모를 일입니다.

 

* <중학 국어> 1-1에 실림.

* 대학의 교양국어 교재인 <문학과 교양> -학지사- 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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