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칡 멜빵 - 신재기

Joyfule 2014. 7. 29. 01:21

 

 

 

칡 멜빵 - 신재기

 

부모도 더러 자식한테 크게 야단을 치거나 매를 댈 때가 있다. 그런데 그러고 난 다음 대부분 자신의 언행에 대해 후회한다. 고등학교 2학년인 딸과 중학교 1학년인 아들을 두고 있는 나도 예외는 아니다. 아이들을 야단칠 때마다 성격이 급해서 그런지 늘 감정이 앞선다. 그러고서는 자라는 아이에게 왜 그런 말을 함부로 했을까, 그만 참을 걸, 아이가 마음에 상처를 받지는 않았을까,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이런 생각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가 많았다.

 

초등학교 육 학년 때의 일이다. 그 때 나의 고집은 나 자신도 놀라울 정도였다. 나는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다. 부모님은 인내심을 발휘하여 며칠 전부터 열네 살짜리 막내아들을 설득했다. 나는 당시 고향에서 백 리나 떨어진 안동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 원서를 내어놓고 있었다.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아 부모님 중에 한 분도 내가 시험 보러 가는 데 동행하지 못할 형편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같은 중학교에 원서를 낸 친구의 아버지를 따라가, 시험 볼 동안 친구의 친척 집에 묵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시험 보는 곳에 함께 따라가 주지 않는 부모님이 야속하고 원망스러웠다. 무엇보다도 집을 떠나 며칠 동안 낯선 곳에서 보내야 한다는 점이 두렵고 불안했다. 버스도 타 보고 도시 구경도 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부모님이 곁에 없다는 생각을 하니 도무지 안심이 되지 않았다.

 

시험 날짜가 다가올수록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뜻을 넌지시 드러냈다. 시험 날이 임박해지면서 울면서 만약 부모님이 따라가지 않으면 나도 가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설득을 거듭하면서 부모님의 인내심도 드디어 한계에 도달했다. 시험 보러 떠나기 바로 전 날 아버지는 들고 있던 소쿠리를 마당 한가운데로 냅다 던지며, ‘시험이고 뭐고 다 때려치워라’는 마지막 선언을 하고 말았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나는 아버지의 화난 목소리에 덜컥 겁이 났다. 정말로 시험 보러 보내 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닥의 걱정과 아버지에 대한 야속함이 교차되는 가운데 서럽게 한참이나 울먹였다. 마당 끝에 웅크리고 앉아 나에게 등을 보인 채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던 아버지는 화난 모습으로 곧장 집 밖으로 나갔다. 사립문을 나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이제는 내 고집을 꺾어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그 날 아버지는 밤이 깊어서야 돌아오셨다. 잠결에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푸념과 아버지의 긴 한숨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자고 일어나니 아버지는 이른 아침부터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마루 끝에는 내가 가지고 가야 할 짐 꾸러미 하나가 아주 단단하게 꾸려져 있었다. 그 짐 꾸러미에는 등에 질 수 있도록 칡덩굴을 반으로 쪼개어 만든 멜빵이 보였다. 아버지의 솜씨임을 금방 알았다. 쪼개진 칡덩굴의 하얀 속살이 아침 햇살에 더욱 선명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짐을 지고 갈 수 있도록 공들여 짐을 꾸린 아버지를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짐을 등에 지니 칡 멜빵이 내 어깨에 자로 잰 듯이 딱 들어맞았다. 아버지가 아니면 누구도 그런 멜빵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친구의 아버지를 따라 친구와 함께 안동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풍산까지 오십 리 길을 걸었다. 12월의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얼얼하도록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었다. 바람을 맞으며 묵묵히 걸었다. 등뒤에는 석 되의 쌀과 나의 일용품을 싼 짐 꾸러미가 제법 무겁게 매달려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등짐의 무게가 더해 갔고 어깨가 조여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너무나 편했다. 등짐의 무게를 통해 아버지의 진정한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 것 같았다. 그때 ‘때려치워라’는 아버지의 화난 모습은 나로 하여금 그 먼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힘을 보태어 주었다. 나는 서럽게 울었다. 아니 울지 않았다. 아버지가 계속 내 등뒤에서 따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옛날 ‘때려치워라’는 아버지의 말이 본인 자신을 향한 분노였음을, 나도 자식을 키우면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칡 멜빵을 매면서 자신이 뱉은 그 말로 무척이나 가슴 아파했음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아마 자신의 가슴을 가르듯이 그 칡을 반으로 갈랐을 것이다. 부모는 언제나 자식 때문에 가슴 아파하고, 그로 인해 멍든 상처를 안고 사는 듯싶다. 오늘 따라 육십을 못 넘기고 삼십 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무척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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