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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왜 숲 속의 이슬을 떨었을까

Joyfule 2015. 10. 18. 20:40

 

 

 

어머니는 왜 숲 속의 이슬을 떨었을까

 

이순원

 

아들아.

 이제야 너에게 하는 얘기지만, 어릴 때 나는 학교 다니기 참 싫었단다. 그러니까 꼭 너만 했을 때부터 그랬던 것 같구나. 사람들은 아빠가 지금은 소설을 쓰는 사람이니까 저 사람은 어릴 때 참 착실하게 공부를 했겠구나, 생각할지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단다.

 

 초등학교 때부터 아빠는 가끔씩 학교를 빼먹었단다. 집에서 학교까지 5리쯤 산길을 걸어가야 하는데, 학교를 가다 말고 그냥 산에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온 날도 있었단다.

 

 그러다 중학교에 다니면서부터는 정말 학교 다니기 싫었단다. 학교엔 전화가 있어도 집에는 전화가 없던 시절이니까 내가 학교를 빼먹어도 집안 식구들은 아무도 그걸 몰랐단다. 학교로 가는 길 중간에 산에 올라가 아무 산소가에나 가방을 놓고 앉아 멀리 대관령을 바라보다가 점심때가 되면 그곳에서 혼자 청승맞게 도시락을 까먹기도 했단다. 어떤 날은 혼자서 그러고, 또 어떤 날은 같은 마을의 친구를 꾀어서 같이 그러기도 하고.

 

 그러다 점점 대담해져서 아예 집에서부터 학교를 가지 않는 날도 있었단다. 배가 아프다, 머리가 아프다, 비가 와서, 눈이 와서, 오늘은 무서운 선생님 시간에 준비물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서, 하는 식으로 갖은 핑계를 댔단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니 우선 학교가 너무 멀었단다. 아빠가 태어난 대관령 아랫마을에서 강릉 시내 중학교까지는 아침저녁으로 ?20리 길을 걸어 다녀야 했단다. 큰 산 아래의 오지 마을이라 아직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버스도 다니지 않던 시절의 일이란다. 그러나 그거야말로 핑계고, 무엇보다 학교에 가도 재미가 없었단다. 지금 내가 아들인 너에게 그 얘기를 하고 있는 거란다.

?

 오월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나는 학교에 가기 싫다고 말했다. 왜 안 가냐고 물어 공부도 재미가 없고, 학교 가는 것도 재미가 없다고 말했다. 어린 아들이 그러니 어머니로서도 한숨이 나왔을 것이다.

 "그래도 얼른 교복으로 갈아입어라."

 "학교 안 간다니까."

 그시절 나는 어머니에게 존댓말을 쓰지 않았다. 어머니를 만만히 보아서가 아니라 우리 동네 아이들 모두 그랬다. 아버지에게는 존댓말을 어머니에게는 다들 반말로 말했다.

 "안 가면?"

 "그냥 이렇게 자라다가 이다음 농사지을 거라구."

 "에미가 신작로까지 데려다 줄 테니까 얼른 교복 입어."

 몇 번 옥신각신하다가 나는 마지못해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러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어머니가 먼저 마당에 나와 내가 나오길 기다리고 섰기 때문이었다. 나는 잠시 전 어머니가 싸 준 도시락까지 넣어 책가방을 챙겼다.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오자 어머니가 지겟작대기를 들고 서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그걸로 말 안 드는 나를 때리려고 그러는 줄 알았다. 이제까지 어머니는 한 번도 나를 때린 적이 없었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조금은 낯설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 나는 신발을 신고도 마루에서 한참 동안 멈칫거리다가 마당으로 내려섰다.

 

 "얼른 가자."

 어머니가 재촉했다.

 "그런데 그 작대기는 왜 들고 있는데?"

 "에미가 이걸로 널 때리기라도 할까 봐 겁이 나냐?"

 "겁나긴? 때리면 도망가면 되지."

 "그래. 너는 에미가 무섭지도 않지? 그래서 이 에미 앞에 학교 가지 않겠다는 소리도 아무렇지 않게 하고."

 "학교가 머니까 그렇지. 가도 재미없고."

 "공부, 재미로 하는 사람 없다. 그래도 해야 할 때에 해야 하니 다들 하는 거지."

 "지겟작대기는 왜 들고 있는데?"

 "너 데려다 주는 데 필요해서 그러니 걱정 말고, 가방 이리 줘라."

 

 하루 일곱 시간씩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도시락까지 넣어 가방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나는 어머니에게 가방을 내밀었다. 어머니는 한 손엔 내 가방을 들고 또 한 손엔 지겟작대기를 들고 나보다 앞서 마당을 나섰다. 나는 말없이 어머니의 뒤를 따랐다.

?

 그러다 신작로로 가는 산길에 이르러 어머니가 다시 내게 가방을 내주었다.

 "자, 여기서부터는 네가 가방을 들어라."

 나는 어머니가, 내가 학교에 가기 싫어하니 중간에 학교로 가지 않고 다른 길로 샐까 봐 신작로까지 데려다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어머니가 내주는 가방을 도로 받았다.

 "너는 뒤따라오너라."

 거기에서부터는 이슬밭이였다. 사람 하나 겨우 다닐 좁은 산길 양 옆으로 풀잎이 우거져 길 한가운데로 늘어져 있었다. 아침이면 풀잎마다 이슬방울이 조록조록 매달려 있었다.

 

 어머니는 내게 가방을 넘겨준 다음 두 발과 지겟작대기를 이용해 내가 가야 할 산길의 이슬을 떨어내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몸빼자락이 이내 아침 이슬에 흥건히 젖었다. 어머니는 발로 이슬을 떨고, 지겟작대기로 이슬을 떨었다.

그런다고 뒤따라가는 내 교복 바지가 안 젖는 것도 아니었다. 신작로까지 15분이면 넘을 산길을 30분도 더 걸려 넘었다. 어머니의 옷도, 그 뒤를 따라간 내 옷도 흠뻑 젖었다. 어머니는 고무신을 신고 나는 검정색 운동화를 신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물에 빠졌다가 나온 것처럼 땟국이 찔꺽찔꺽 발목으로 올라왔다. 그렇게 어머니와 아들이 무릎에서 발끝까지 옷을 흠뻑 적신 다음에야 신작로에 닿았다.

 

 "자, 이제 이걸 신어라."

 거기서 어머니는 품속에 넣어 온 새 양말과 새 신발을 내게 갈아신겼다. 학교 가기 싫어하는 아들을 위해 아주 마음먹고 준비해 온 것 같았다.

 "앞으로는 매일 떨어 주마. 그러니 이 길로 곧장 학교로 가. 중간에 다른 데로 새지 말고."

 그 자리에서 울지는 않았지만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니, 내일부터 나오지 마. 나 혼자 갈 테니까."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어머니가 매일 이슬을 떨어 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떤 날 가끔 어머니는 그렇게 내 등굣길의 이슬을 떨어 주었다. 또 새벽처럼 일어나 그 길을 이슬을 떨어 놓고 올 때도 있었다. 물론 어머니가 어머니가 아무리 먼저 그 길의 이슬을 떨어내도 집에서 신작로까지 산길을 가다 보면 내 옷과 신발도 어머니의 것처럼 젖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어머니는 그 산길의 이슬을 떨어 준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학교를 결석하지 않았다.

 

 어른이 된 지금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때 어머니가 이슬을 떨어 주신 길을 걸어 지금 내가 여기까지 왔다고. 돌아보면 꼭 그때가 아니더라도 어머니는 내가 지나온 길 고비고비마다 이슬 떨이를 해 주셨다.

아들은 어른이 된 뒤에야 그때 어머니가 떨어 주시던 이슬 떨이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아마 그렇게 떨어내 주신 이슬만 모아도 내가 온 길 뒤에 작은 강 하나를 이루지 않을까 싶다.

 

 아들아.

 나는 그 강을 이제 '이슬강'이라고 이름 지으려 한다. 그러나 그 강은 이 세상에 없다. 오직 내 마음 안에만 있는 강이란다. 그때 아빠 등굣길의 이슬을 떨어 주시던 할머니의 연세가 올해 일흔넷이다. 어쩌면 할머니는 그때 그 일을 잊고 계실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빠한테는 그 길이 이제까지 아빠가 걸어온 길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도 안타까우며 마음 아픈 길이 되었단다. 이다음 어른이 되었을 때, 아빠처럼 너에게도 그런 아름다운 길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어린 날 나는 그 길을 걸어 나오며 내 앞에 펼쳐진 이 세상의 모든 길들을 바라보았단다.

 

 아들아. 길은 그 자체로 인생이란다. 그리고 그것을 걷는 것이 곧 우리의 삶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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