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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우리가 잘 먹고 잘 사는 나라가 되었는가?

Joyfule 2020. 3. 17. 00:31


 
   언제부터 우리가 잘 먹고 잘 사는 나라가 되었는가?

 

 

이제 겨우 백여 년이 겨우 넘는 구한말시대나 일제강점기만 하더라도, 우리네 조상들은 입에 풀칠을 하는 게 몹시 힘들었다. 조선시대에는 아예 점심식사라는 게 없었으며, 아침과 저녁 두 끼를 먹었다. 저녁도 일찍 먹고 잠이 들었다. 밤늦도록 깨어 있으면 쉬 배가 고파지기 때문이다. 오천년의 역사를 자랑한다는 우리나라에서, 배곯지 않고 살게 된 것은 7,80년대의 경제부흥기를 맞이하고 나서이다. 50년대 육이오사변이후에는 산업이 피폐하다시피해서 번번한 공장이 없었으며 회사다운 회사가 없었다. 오천년의 역사 중에서, 겨우 먹고 살만한 시절이 오십년이 채 되지 않았다는 게 기이하지 않는가? 우리나라에 미국과 캐나다의 선교사가 복음을 전해준 게 바로 구한말시대부터이며, 선교사들의 열정으로 기독교가 반짝 부흥하는가 싶더니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를 비롯한 악재로 교회가 변질되었다. 그리고 해방의 기쁨도 잠시, 육이오사변의 후유증으로 우리네 부모들은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살아가야했다. 그러나 그 고난의 시기에 한줄기 빛이 비쳤으니, 바로 예수를 믿으면 배고프지 않게 살게 될 것이며 자식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그래서 너도나도 이웃의 손을 붙잡고 교회에 나왔으며, 새벽기도회에 사람들이 넘쳐났고 전국의 방방곡곡에 기도원이 세워졌다. 그러나 90년대 IMF사태를 계기로 한국의 경제는 성장이 둔화되었으며, 더불어 교회성장도 덩달아 멈추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 국민들은 배를 곯는 사람들은 없다. 노숙자도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죽지 않는다. 배가 고프지 않는 백성들은 하나님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으며, 교회마당을 밟는 교인들도 배고프던 시절을 잊고 더 이상 기도자리에 나오지 않는다.

 

우리나라 경제에 먹구름이 낀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기복신앙과 번영신학으로 세계최고의 교회를 싹쓸이하다시시피한 한국교회에 경고등이 켜지기 시작했다. 엄청난 속도로 달리던 한국의 경제가 숨을 헐떡거리며 주저앉기 시작한 것이다. 성장이 둔화된 기업들은 지갑을 닫기 시작했고, 인건비가 싼 중국과 동남아시아도 공장을 이전하였다. 쓸 만한 직장과 회사가 사라지자 해고열풍이 불기 시작했으며,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은 공무원과 교사 그리고 공기업에 목을 매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대학졸업생의 꿈이 공무원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일자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중소기업의 공장과 농촌의 농장에는 일손이 부족하다. 그러나 이미 배가 불러진 젊은이들은 편의점 알바를 하더라도 노동 강도가 센 일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러한 상황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IMF를 시작으로 우리나라 경제는 곤두박질치고 있다. 지난해에는 사드배치로 중국의 보복으로 엄청난 손실을 보더니, 엊그제는 일본의 수출규제로 효자산업이던 반도체가 위기에 몰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이런 저런 악재가 터진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언제부터 우리네 국민이 배를 곯지 않고 살았던가? 크리스천들은 오천년의 역사 속에서 불과 오십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것은 잊었다.

 

혼돈스럽던 구한말 시대와 일제강점기의 암흑 속에서,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해준 선교사들의 피와 눈물과 땀으로 한국 교회가 세워졌다. 돌아가신 장모님은 흙벽돌로 지은 자그마한 교회를 가시려고, 캄캄한 새벽과 한밤중에 어두운 산과 호젓한 들판을 홀로 다니셨다고 고백하셨다. 그분들이 눈물의 기도가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이유이다. 그러나 배가 불러진 교인들은 기도하는 것을 잊었다. 성령께서는 필자에게, 예전에 기도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기도하지 않는다고 하셨으며, 교인들의 대부분이 기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실제로 우리네 교인들이 규칙적으로 기도하는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설령 기도한다는 이들조차 기도하는 내용도 하나님의 뜻하고는 거리가 멀다. 자신의 유익과 삶의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내용이 전부이다. 그 어디에도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서, 간절히 그분의 이름을 부르고 경배하며 감사하고 죄를 회개하는 기도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우리네 교회에 하나님이 떠나셨다. 그래서 지금의 교회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경멸과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 되었다. 목사는 먹사로 불리고, 기독교는 개독으로 불린다. 그리고 평신도는 병신도가 되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 사람으로부터 욕을 먹는 빌미를 제공해 준 게 누구인가? 바로 교회지도자와 교인들이다. 대다수의 목사들은 자신들의 배를 채우려고 교회세습과 집요한 헌금강요로서, 그들의 목적이 중대형교회의 담임목사가 되는 목회성공을 위해서이다. 평신도들도 다르지 않다. 세속적인 축복을 누리고 성공하여서 부자가 되는 게 교회마당을 밟는 이유이다. 그 어디에도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조차 없다. 그래서 교인들의 귀를 가렵게 하는 덕담과 위로, 격려와 축복을 쏟아부어주는 설교를 잘하는 이들이 대형교회의 담임목사로 세워진다. 교인들은 너도 나도 자신들이 듣고 싶어 하는 달달한 설교를 찾아다니며 듣고 은혜를 받았다며 지폐를 헌금바구니에 집어넣는다. 그래서 죄와 심판, 지옥과 귀신에 대해서 말하는 목사들을 찾아볼 수 없다. 교인들이 듣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네 교회를 떠난 지 오래되었다. 구약시대에 이사야와 예레미야, 호세아 선지자들을 불러 이스라엘의 멸망을 선포하며 회개를 촉구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귀를 간질이는 예언을 하는 거짓선지자의 말을 듣기 좋아하고, 죄와 심판을 선포하며 회개를 촉구하는 참선지자들을 옥에 가두거나 돌을 던져 죽여 버렸다. 그 악독한 대가가 무엇인가? 나라는 망하고 성전은 무너지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서 압제와 중노동의 삶을 살다가 이 땅을 떠나갔다.

 

우리가 잘 먹고 잘 살게 된 것이, 오천년 역사에서 고작 오십년에 불과한 기간이다. 우리가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고도 이렇게 쉽게 은혜를 잊을 수 있는가? 기가 막힌 일이다. 성령께서 필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불씨라고 하셨다. 우리 영성학교 식구들만이라도 기도의 불씨를 꺼뜨리지 말고 작은 불길이라도 일으키자. 그래야 우리가 살고, 우리 가족이 살고, 우리나라와 민족이 살지 않겠는가? 성령께서 우리나라와 민족이 사는 길은 기도뿐이라고 하셨다. 기도하는 일이 힘들더라도, 기도하지 않으며 사는 길은 저주와 재앙뿐이다. 어찌 우리 형제와 자녀들이 마귀에게 포로로 잡혀서 피눈물을 흘리며 고통당하는 것을 눈 뜨고 보겠는가? 우리네 교인들이 한명도 기도하지 않더라도, 우리만이라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분을 찬양하고 경배하자. 그래야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어떻게 잡은 축복인데, 이렇게 허망하게 떠나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