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두 건달의 독백
변호사를 하면서 이름이 알려진 내 나이 또래의 조직폭력의 두목급들을 여러 명 만났다. 그들의 과거 얘기를 들어보면 요즈음 중고등학교 일진 아이들과 비슷한 면이 있다. 어려서부터 싸움선수들인 것 같았다. 서방파 두목으로 전설적인 이름을 날리던 김태촌씨는 어린 소년 시절부터 싸움을 잘하기 위해 열심히 샌드백을 두드리고 깡을 키우기 위해 스스로 극기 훈련을 했다고 했다. 우리 세대도 어려서부터 주먹을 쓰는 친구도 있었고 공부를하는 친구도 있었다. 인생의 방향이라고 할까. 드라마 모래시계에 나오는 조폭 두목의 모델로 알려진 사람도 서방파의 김태촌과 어깨를 겨루면서 자랐다고 했다. 그는 사업으로도 성공을 했다. 어느 날 그가 내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무서워 보이던 검사 출신이 변호사가 되면 의외로 참 약해지는 것 같아요. 큰 가방에 억대의 돈다발을 넣어 가져다 주면서 ‘존경합니다. 검사님. 잘 부탁드립니다’하고 고개를 숙이면 호방한 척하면서 큰소리치고 형님 노릇까지 하죠. 아무리 전관이라도 검찰이나 법원에서 그의 말을 다 들어주겠습니까? 그건 아니죠. 사건이 끝나고 내가 사무실로 찾아갑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 있는 그의 배를 훅 밀어버리면 단번에 얼굴이 허얘지면서 준 돈을 다 토해내는 거예요. 다들 그래요. 왜들 그렇게 약해빠졌는지 몰라. 내가 언제 돈을 돌려달라고 했나? 그런 약골들이 어떻게 검사를 할 때 그렇게 허세를 부렸는지 몰라.”
그게 그들의 생리고 세상을 사는 방법이었다. 그들은 주먹과 칼로 말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변호사를 천직이라고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해 왔다. 사람마다 직업관이 다르겠지만 나는 변호사의 투사적 성격을 좀 더 중요시했다. 혼자 세상과 싸울 용기가 필요했다. 그렇게 하려면 신념도 육체도 강해야 했다. 그런데 나는 어려서부터 그렇지 못한 것 같았다.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였다. 어머니는 내가 둔 하고 물러 터졌다면서 유도 도장에 보냈다. 사범에게 아이가 강해지도록 하루에 스무 번은 패대기쳐달라고 부탁까지 했었다. 나는 나름 노력은 했다. 그래도 힘과 운동신경을 타고난 아이들 앞에서 절망했다.
운동을 잘하는 아이들은 나를 가지고 노는 것 같았다. 남한테 얻어맞는 약자가 되지 않기 위해 태권도 도장에도 갔었다. 수은주가 영하 십도 아래로 내려가는 얼어붙은 겨울에 여섯시간씩 샌드백을 발로 차면서 연습을 하기도 했다. 그 쪽으로는 노력을 해도 안 되는 것 같았다. 싸움선수인 동네 건달 아이들과 도장에서 맞붙어 싸우는 자유대련 시간이 되면 내 공격을 능숙하게 피하면서 들어오는 그들의 옆차기 한 방에 벽에 부딪치면서 나가떨어져 며칠을 끙끙 앓기도 했다. 뼈 자체가 약한 내가 원망스러웠다. 남을 때렸다가는 내 손의 약한 뼈가 다 부서져 버릴 것 같았다. 노력해도 안되는 건 안 되는 것 같았다.
세상은 근육질의 힘이 다가 아닌 것 같다. 작달막하고 약한 사람들이 조직폭력배들을 주눅 들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아는 한 조폭 두목은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암송했다. 어느 날 그가 그렇게 된 자신의 체험을 이렇게 얘기했다.
“혈기 왕성하던 이십대 저는 교도소에서 징역을 살고 있었어요. 어려서부터 운동과 싸움으로 단련이 됐고 몇번 들어갔다 나오니까 감옥생활에도 이력이 났죠. 저는 서방파 김태촌 형님의 다음 서열이었으니까 교도소 내의 공장을 꽉 잡고 있었죠. 그런데 어느 날 예순일곱살 먹은 목사가 공장에 배치됐어요. 심심하기도 하고 군기도 잡을 겸 그 영감에게 어떻게 목사가 이런 데를 왔냐고 하면서 앞으로 똑똑히 잘하라고 으름짱을 놓았죠. 그 양반 생긴 게 아주 작달막하고 볼품없는 늙은이였어요. 내 공갈에 그 영감이 ‘저는 긴급조치 위반으로 들어왔습니다. 앞으로 일 잘하겠습니다’라고 공손하게 대답하더라구요. 그렇게 그 영감의 감옥생활이 시작됐어요.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내가 몽둥이를 들고 기계를 탕탕 치면서 ‘일하는 정량을 채우지 못하면 알짱 없어, 내 말이 아니꼬운 새끼는 한번 앞으로 나와봐’라고 하면서 겁을 줬어요. 그랬더니 그 영감이 앞으로 나와서 나를 똑바로 쳐다 보는 거예요. 저는 순간적으로 당황했죠. 기만 죽일려고 했는데 그 영감이 진짜 나왔으니까요. 영감을 한바탕 두들겨 패야 하는데 그 영감 한방만 맞아도 그대로 뻗어버릴 것 같았어요. 내가 순간 고민을 하는데 그 영감이 말을 하더라구요. 호랑이 같은 진짜 강한 짐승은 점잖지만 약한 개는 사람을 보면 으르렁거린다고. 인간도 진짜 강한 사람은 으르렁거리지 않는다고 하는 거예요. 저는 그 영감에게 웃기지 말라고 하면서 일단 모두 해산시키고 화장실로 갔어요. 빌빌대는 그 영감을 패 죽일 수도 없고 화가 나더라구요. 그래서 화장실에 가서 잠시 분을 삭이고 나오는 데 그 영감이 떡 버티고 서서 나를 바라보는 거예요. 나는 눈에 살기를 잔뜩 모아 그 영감을 째려봤죠. 그랬더니 그 영감이 나보고 정말 강해지려면 성경을 보라고 점잖게 말하는 거예요. 나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인상을 쓰면서 갔어요. 건달로서의 자존심은 있으니까 바로 성경을 보지는 못했어요.
어느 날 밤 감방안에서 성경을 베고 자는 사람이 있더라구요. 낮에는 쪽팔려서 빌려달라고 하지 못하다가 한 밤중에 그걸 빼서 봤어요. 도대체 뭔 소리가 있나 하고 아무 데나 펼쳤죠. 뭔소리가 있나 보니까 노하기를 더디하라는 거예요.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가 성을 빼앗는 것 보다 낫다고 하더라구요. 가만히 생각하니까 제가 그때까지 ‘욱’하는 성격 때문에 감옥을 드나들었더라구요. 하여간 그때부터 마음을 조금씩 잡았죠.”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때려죽일 근육의 힘보다 맞아죽을 각오의 신념이 더 강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는 저항하지 않았다. 십자가 위로 올라가 양팔을 벌리고 옆구리로 찌르고 들어오는 창을 받아들였다. 한 건달 출신의 입을 통해 진짜 강해지려면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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