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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마음으로 쳐들어 온 삽화

Joyfule 2023. 10. 27. 16:48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마음으로 쳐들어 온 삽화



기억의 깊은 우물 속에 있던 것들이 뜬금없이 내 마음속으로 쳐들어오는 때가 있다. 세상의 웃음거리가 된 대도라고 불리웠던 늙은 절도범이 내게 말했었던 그의 어린 시절 한 삽화였다. 추운 겨울날 꼬마였던 그는 동네 골목 구석에서 가마니속에 들어가 잔 적이 있다고 했다. 아침에 쓰레기를 버리러 온 동네 아줌마들이 오줌까지 싸서 김이 피어오르는 가마니 속에 들어있는 그를 보고 안타까워 혀를 찼다고 했다. 그는 배가 고프면 깡통을 들고 구걸을 했다고 했다.

그가 열서너살 무렵 그를 사랑해 주던 지게꾼 할아버지가 있었다고 했다. 그 지게꾼 할아버지를 우연히 마주칠 때 마치 자기 손자를 보듯 눈빛이 그렇게 따뜻하더라고 했다. 어쩌다 길가에 앉아 지게를 놓고 쉬는 그 할아버지를 보면 푸근하고 그냥 좋았다고 했다. 그 할아버지는 그가 좋지 않은 짓을 하면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그렇게 하면 못쓴다고 달랬다고 했다. 그에게서 들은 작은 사랑의 기억이었다. 아이일 때 받은 사랑 한 모금은 평생 동안 기억에 남는지도 모른다.

내가 열살전후 쯤이었던 것 같다. 방학이면 강원도 깊은 산골에 있는 할머니의 초가집에서 있곤 했다. 그 시절 여름이면 젊은 전도사들이 시골의 작은 예배당에서 마을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노래를 가르쳐 주기도 했다. 그런 전도사가 헤어질 무렵 나를 꼭 안아주었던 따뜻한 사랑의 기억이 칠십이 넘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나의 영혼 속에 남아있다.

이웃과 작은 사랑을 나누는 게 윤기 있게 사는 방법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남을 향한 작은 미소도 목말라하는 사람에게 냉수 한 잔을 주는 것도 사랑이다. 변호사를 하다 보면 도와달라는 구조신호를 받는 경우가 많다.

요즈음 불쌍한 영혼을 가진 열 네살의 소년이 내 마음의 창가에 다가와서 살려달라고 날개를 푸드덕거린다.

간접적으로 얘기를 들었다. 열 네살의 소년이 감옥에 있다. 주차장에 있는 문이 잠기지 않은 차를 몰고 다니다 버리고 도망갔다. 차 안에 동전이나 작은돈이 있으면 그걸 가지고 가서 게임을 했다. 거기에 재미를 들여 수십번 그 짓을 하다가 걸린 것 같다. 막 일을 하는 아버지와 베트남 출신의 엄마를 가진 아이였다. 그 아이의 회색빛 인생이 대충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아직 철이 없는 그 아이가 삶의 시궁창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사람을 돕다가 실패한 적이 많다. 재심을 해서 대도라고 불리던 상습절도범을 석방시켰을 때 너무 주관적이고 감상적이었다. 세상은 자기식대로 온정이라고 하면서 물질을 베풀고 그를 우상화했다. 나는 그의 본질을 보려고 하지 않고 낭만적으로 설정한 그를 만들었다. 그는 철저히 추락했고 나는 거짓말쟁이 위선자가 됐다.

지난해에도 또 다른 실패를 맛보았다. 감옥에 있던 살인범이 있었다. 오랜 세월 면회 오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는 주위에 흉기로 인식될 정도로 난폭한 인물이었다.

대개 사랑할 줄도 사랑을 받을 줄도 모르고 큰 사람들이 그랬다. 그가 내게 도와 달라고 편지를 보냈었다. 자기가 아는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절실하게 도움을 청했다.

나는 그에게 성경 속 시편 23장을 천 번을 공책에 써서 보내라고 요구했다. 그래야 도울 수 있다고 했다. 그건 내가 배운 기도의 한 방법이었다. 그렇게 기도하면서 그의 영혼이 구원됐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가 공책에 그걸 다 써서 보냈다. 나는 그가 자신의 모습을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석방이 됐다. 그는 계속 나에게 의지하는 것 같았다. 나는 감상적으로 내 생각으로 돕지 않기로 했다. 그런 사람들의 비틀린 영혼을 조금은 알기 때문이다. 그는 내게 방을 얻어주기를 원하고 생활비를 주기를 원했다. 거지근성이었다. 나는 그가 노숙자가 되더라도 그 영혼이 살아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도 없으면 노숙자가 되는 데 그는 왜 아니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단호하게 그의 요구를 거절하니까 그는 목을 매고 죽어버렸다. 화장터에서 그를 태우면서 씁쓸한 마음이었다. 돕는다고 하면서 또 실패했다. 영혼도 그분이 관여하지 않고는 고쳐지지 않는 걸 알았다.

열 네살짜리 아이가 다시 나의 마음창가에서 도와달라고 날갯짓을 하고 있다. 도와야 할지 말지 어떻게 돕는 게 좋을지를 기도하고 있다. 그러다 오늘아침 문득 마음으로 쳐들어온 광경이 대도라는 상습절도범을 무료변호할 때 그에게서 들은 삽화 한 장면이었다. 거지아이였던 그를 따뜻하게 품은 지게꾼 할아버지가 마음에 들어오는 건 하나의 계시일까? 열네살 아이의 할아버지가 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내 판단 내 생각으로는 일하지 않기로 했다. 그 분이 나의 마음을 움직이면 시키는 데 까지만 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