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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버킷리스트에 쓸 게 없다

Joyfule 2023. 6. 20. 09:33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버킷리스트에 쓸 게 없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오랫동안 일한 의사의 얘기를 들었다. 그는 천명가량의 죽음을 선고했다고 했다. 

그는 삶의 종점에 이른 사람들의 마지막 소원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사람이 한이 서린 채 유언을 하고 고개를 떨구는 장면이 많은데 제가 본 건 그렇지 않았어요. ‘해 볼 거 다해 봤다. 후회없다’라고 하면서 죽는 걸 많이 봤어요. 그리고 죽는 사람들의 마지막 소원도 사소한 것이었어요. 노숙자로 살아왔는데 교회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분도 있었구요. 무용가가 죽기 전에 공연을 보고 싶다고 하기도 했어요. 술 좋아하던 분은 마지막으로 술을 한잔 마시고 싶다고 하고 바둑을 좋아하던 분은 친한 사람과 마지막대국을 하고 싶다고 했어요. 매일 산책하던 길의 카페에서 향기좋은 커피를 한잔 마셨으면 하는 것도 있었죠.”

인간이 마지막으로 원하는 건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이 많은 것 같았다. 더 출세하고 더 돈을 벌고싶은 소원은 없는 것 같았다.

실버타운에서 일년 동안 노인들과 밥을 같이 먹으면서 그들을 보아왔다. 실버타운도 과정이 느릴 뿐 호스피스 병동과 공통점은 죽어감이 아닐까. 범위를 넓게 잡으면 인간은 태어나면서 죽어가는 과정이다. 정년퇴직으로 하고 일에서 밀려난 노인들을 보면 정서적인 허기를 느끼는 것 같다. ‘내가 아니면 안돼’라는 생각으로 일을 해 왔는데 그가 아니라도 세상은 잘 돌아갔다. 거기서 마음의 공허를 느끼는 것 같다. 그 마음을 메꾸기 위해 골프를 치고 악기를 배우고 해외여행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그들 마음의 빈 공간은 채워지지 않는 것 같다. 노후의 골프와 악기, 해외여행 ,명상, 독서같은 것들이 정말 그들이 원하는 것일까? 수십년동안 공무원으로 아니면 교사로 근무했던 분들은 같이 세월을 보내온 자기의 책상과 서랍이 그 자신이었던 것 같다. 그들의 영혼은 어쩔 줄을 몰라 허둥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십대 초쯤 나는 노년까지 내게 성취감을 줄 즐거운 것이 뭘까 생각했었다. 전문직이라도 일정한 나이가 지나면 하던 일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 때 일선에서 물러난 칠십대 중반의 신부님을 만나 물어 보았다.

“지금 무엇이 늙은 신부님을 행복하게 합니까?”

평생 독신에 일선에서 물러나 은퇴한 신부들이 사는 곳에 있는 분이었다. 그는 신중한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

“나이 칠십을 넘은 지금까지 신학을 공부해 왔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야 어렴풋하게나마 무엇인지 알 것 같아요. 굳이 표현하자면 약간의 지혜를 얻었다고 할까. 요새 와서는 이런 상태가 조금이라도 오래갔으면 하고 소망해 봅니다. 알지 못하고 십년을 사는 것 보다 느끼면서 하루를 사는게 더 좋은 거라고 생각하니까. 젊어서는 미망과 유혹에 수시로 마음이 들끓었죠. 나이든 이제와서야 맑은 물처럼 내면이 잔잔해지는 걸 느껴요. 정말 이런 상태가 계속 됐으면 좋겠어요. 그렇지만 하느님이 언제라도 데려가시면 할 수 없는 거죠. 밤 늦게까지 공부하다가 불려가면 내일 아침에는 그곳에서 하느님한테 직접 배우고 공부하면 되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이예요.”

깊은 의미가 담겨있는 대답 같았다. 세월은 어느새 나를 그 노년의 신부 나이로 떠내려 보내고 있다. 요즈음 나는

‘내가 정말 원했던 게 뭐였지? 그리고 지금은 뭘 원하지?’라고 내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소년 시절 행복에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명문중고등학교를 가야하고 명문대학을 가야 행복할 것이라는 세상이 만들어준 행복의 조건이었다. 나의 경우는 본능적으로 그때그때 순간의 소소한 즐거움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쓴 편이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만화와 영화를 볼 때 행복했다. 만화방을 순례하고 변두리 삼류극장의 컴컴한 구석에서 찰리 채프린의 무성영화를 봤다. 극장주 아들과 친구인 관계로 나는 공짜로 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었다. 극장 휴게실에서 공부하면 더 잘 되는 것 같았다. 중고등학교 시절도 그때그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그냥 저지른 편이다. 음악감상실도 가고 호프집도 갔다. 무전여행을 하기도 했다. 그냥 입시에만 매몰되어 살면 나무에 매달린 텅 빈 벌레껍데기 같이 될 것 같았다.

대학시절은 고시를 핑계 삼아 전국사찰을 유람했다. 거제도 해금강 암자에서 시작해서 팔공산의 염불암, 문경의 사불산 대승사, 가야산의 원당암, 태백산의 청원사등 여러 사찰을 다니고 얼어붙은 강위에 눈이 하얗게 쌓인 북한강가의 방가로에서 한겨울의 낭만을 즐기기도 했다. 젊은 감성이 있을 때 밤하늘을 흘러가는 은하수를 보고 계곡의 맑은 물이 흘러가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나중에 그런 아름다움을 되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오래된 절인 문경 대승사의 요사채 구석방에 묵을 때였다. 한여름 밤 두시경 장지문을 열어둔 채 촛불 앞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원인 모를 어떤 환희가 나를 감쌌다. ‘지금 이대로의 상태로도 난 평생 행복할 수 있어’라는 충만감이 드는 것이었다. 행복은 고시합격이라는 조건을 성취해야만 오는 게 아니라 지금 그대로 충분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군대생활을 하고 변호사를 하고 공직을 거치면서도 나는 매순간 이런 일들이 지금 현재 내게 즐거움을 주나?를 기준으로 생각했다. 출세나 돈 명예보다 인생 마지막까지 내가 즐거울 일을 찾았다. 원하는 게 없이 죽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할까. 조금의 여행비만 마련되면 세계를 흘러다녔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눈이 건강할 때 읽고 싶은 책들을 많이 읽었다. 늙어서 갑자기 어설프게 뭔가 시작하지 않기 위해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그리고 잘 할 수 있는 게 뭔지를 찾았다. 오늘은 양양쪽 바닷가 마을로 가서 ‘섭국’을 먹었다. 홍합으로 만든 국이다. 삼척부근의 녹색 보석같은 바다를 내려다 보면서 산책했다. 나는 버킷리스트에 쓸게 없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