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학원을 삼십년 운영하던 그가 학원 문을 닫아버렸다는 기사를 봤다. 대형버스 사십대가 매일 학생을 실어 나르던 대형학원이었다. 문을 닫은 원인은 스트레스라고 했다. 그는 누가 원장인 자기 방문을 노크하면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고 했다. 학부형에게서 항의가 들어오고 싸움이 붙고 누가 그만뒀다고 하는 소리를 매일 듣는 일상이었다. 그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피폐해졌다. 그는 아내와 강원도의 깊은 산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사과나무를 심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회사원이던 그의 아들들도 모두 사과를 심는데 합류했다. 신문에 난 독특한 기사였다. 돈이 들어와도 인간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모든 게 싫어지는 것 같다. ‘스트레스’라는 단어가 가슴에 날아와 꽂혔다.
현직 변호사인 나는 동해의 바닷가마을 석두골에 갑자기 왔다. 그냥 파도가 치고 갈매기가 우는 포구마을로 가서 살고 싶었다. 벌써 일 년이 지났다. 숲에서 나와야 그 숲이 보이듯 내가 살아왔던 모습이 보였다.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사람들은 돈을 내고 변호사를 샀다. 매일같이 사무실을 찾아와 죽치기도 하고 밤에도 끝없이 전화를 해대는 사람이 있었다. 돈의 위력은 대단했다. 나는 그 힘 앞에 무기력해졌다. 터무니없는 얘기를 한없이 들어주기도 했다. 무리를 해서라도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서비스를 해 주고 싶었다. 같이 사무실을 쓰던 착한 변호사가 있었다. 형사변호를 맡긴 의뢰인이 매일 같이 찾아왔다. 신경이 약한 그는 같이 연민 피로가 심했던 탓인지 어느 날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 가기도 했다. 법은 어떤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다. 양편으로 나뉘어 싸우는 구조에서 한편은 질 수 밖에 없다. 변호사는 욕을 먹는 직업이었다. 이겨도 칭찬받지 못했다. 준 돈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살인, 폭력, 사기, 절도등 범죄인들 중에는 인간이 아닌 파충류의 영혼을 가진 경우도 있다. 범죄 자체가 상식과 무관한 행위였다. 자기 마음에 드는 판결이 선고되지 않았다고 변호사 사무실에 불을 지른 경우도 있었다. 회칼에 찔린 경우도 있었다. 그런 게 전문직 이면의 어두운 그림자라고 할까.
많은 아이들이 전문직이 되거나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오늘도 학원을 몇 개씩 다니면서 좋은 대학에 목을 매고 있다. 사랑하는 나의 손녀도 학원을 다니느라고 할아버지를 볼 시간이 없다고 한다. 며칠 전 대기업의 임원을 하고 정년퇴직을 한 고교동기한테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회사원 생활은 일종의 노예였어. 아니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주인의 손에 든 고기 조각 한 점을 쳐다보며 꼬리를 흔드는 개와 비슷한 처지라고 할까. 그런데 문제는 그런 자리도 없어서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는 거지.”
그 친구도 평생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 같았다. 그걸 견뎌내야 가족의 입에 밥이 들어가는 것이다. 친척 중에 대기업 사장을 한 분이 있다. 그가 이런 말을 했었다.
“군 복무를 마치고 입사시험을 치고 회사로 들어와 평생을 보냈어. 지나고 생각해 보면 섬뜩할 때가 많았어. 회사원으로 살아남으려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지 말아야 할 때가 많았어. 오너가 까라면 까야 하고 불법이라도 하라면 해야 했던 거야.”
우리 시대 성공한 사람의 내면 풍경이었다. 그역시 삶이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명문학원 원장이 스트레스를 벗어나기 위해 강원도 산골에서 사과나무를 심듯 나도 동해 바닷가에서 글 밭을 일구고 있다. 스트레스는 자신을 망가뜨리는 바람과 비 같은 것이 아닐까. 비바람이 불면 남의 집 처마 밑으로 피하는 것도 선택이 아닐까. 스트레스 받는 서울의 직장을 그만두고 툭 트인 바다로 나와 어부가 된 사람도 있다. 산자락에 작업실을 만들고 도자기를 굽는 사람도 있고 악기를 제조하는 사람도 있다. 진흙 속에 묻혀 살면서 그 진흙으로부터 벗어 나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본다. 신은 하나의 상처를 만들 때 치유의 기름을 함께 마련하고 계시는 게 아닐까. 새벽 어둠 저쪽 수평선에서 붉은 기운이 번지면서 푸른 하늘이 나타나는 걸 볼 때 나는 바다에서 건너오는 기운을 받으며 충만하다. 잔잔한 피아노 소리가 흐르는 작업실에서 겨울 바다위에 뜬 뿌우연 보름달을 보면서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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