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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억울함에 대하여

Joyfule 2024. 3. 3. 22:07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억울함에 대하여


고교 동창생이 구속 된 적이 있었다. 그 부인이 찾아와 변호를 부탁하면서 한마디 툭 던졌다.​

“같은 학교를 나왔는데 우리는 왜 이런 거야?”​

억울하다는 것이었다. 변호사인 나와 비교가 된 것 같았다.​

또 다른 고교 동창이 있었다. 학교를 다닐 때 그는 잘생긴 데다가 운동도 잘하고 주먹도 강했다. 그는 재벌집 아들인 동창에게 잘 했다. 그 인연으로 그는 재벌가의 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다. 몇 년 후 그가 목이 잘렸다. 회사 내에서 횡령이 있었다는 것이다. 횡령한 돈으로 룸쌀롱을 드나들면서 재벌가의 아들같이 행동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

그 몇 년 후 그가 외판사원이 되어 초라한 모습으로 나의 사무실에 나타났다. 그를 사무실 근처의 음식점으로 데리고 가서 냉면을 먹는 중에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재벌 아버지를 둔 그 친구나 나나 뭔가 달라? 같은 학교를 나왔잖아? 공부도 내가 잘했고 싸움도 잘했어. 그런데 그 친구는 꽃길만 달리는데 왜 나는 이렇게 망한 거야?” ​

그는 억울하다고 했다. 바른말을 해 줄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같지 않아. 학교나 공부 그리고 주먹이 인생을 결정하는 건 아니야. 각자 주제를 알고 자기 길을 가야 해. ”​

나는 그와 얘기하다가 진짜 억울한 사람이 떠올랐다. ​

교도소 지붕에 흰 눈이 소복이 덮인 겨울 어느 날 징역을 이십년째 사는 그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내가 파악한 사건의 내용은 대충 이랬다. 집단 싸움이 일어나고 그 와중에 사람이 죽었다. 형사들은 싸운 사람 중 한 명을 살인범만들기로 했다. 현장에 함께 있던 일곱명 정도를 협박하고 회유하면서 형사들이 찍은 인물의 증인으로 만들었다. 증인들의 입이 하나로 맞추어졌다. 형사들은 살인범으로 만들기로 한 인물을 반죽음이 되도록 두들겨 팼다. 그는 보호자가 없는 거지 출신이었다. 형사들은 일단 자백하고 검사님이나 판사님 앞에 가서 부인하면 살려줄 거라고 회유했다. 매에 못이긴 그는 형사들이 만든 조서에 손도장을 찍었다. 그는 검사에게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고 했다. 담당 검사는 경찰에서 자백하고 이제와서 그러냐고 하면서 책상 위에 있는 길다란 자로 그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법원의 판사는 사무적으로 그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그의 평생징역생활이 시작됐다. 그의 재심은 불가능했다. 조작된 수사라고 말해줄 사람이 없었다. 사건기록이 폐기되고 가자 증인들의 행적을 찾기도 불가능했다. 찾아도 그들은 진실을 말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

“억울해서 교도소에서 일하는 목사나 신부 그리고 스님에게 말하면 모두 자기 관할이 아니라고 도망을 가요. 하나님이 있다고 하는데 나 같은 억울한 놈이 있는 거 보면 그거 다 거짓말이예요. 하나님이 진짜 있다면 그건 사람도 아니지.”​

그의 억울함은 표현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닌 것 같았다.​

그때부터 몇 년이 흐른 어느 날 그가 불쑥 나의 사무실로 찾아왔다. 만기석방이 됐다는 것이다. 그는 성남에 방 하나를 얻어 살면서 철물공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를 사무실근처의 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감옥에서 그는 된장찌개를 사 먹어 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었다. 그가 밥을 먹으면서 이런 말을 했다.​

“모란시장에서 쌀 한봉지와 김치, 콩자반, 무말랭이를 사다가 반찬으로 먹는데 한 달 생활비가 몇 만원 안들어요. 힘들다고 안해서 그렇지 쇳물 다루는 공장에 가니까 일자리가 널렸어요. 저녁에 쓰레기가 가득한 성남 뒷골목을 매일 산책해요. 더러운 골목이라도 걷는 게 얼마나 행복인지 몰라요. 감방 안에서는 비오는날 높은 담벽아래 흙바닥을 걷고 싶어도 못걸었죠. 걷다가 부부싸움을 하는 걸 봤어요. 감방 안에 혼자 있을 때는 말할 사람이 없는데 저 부부는 싸움 조차도 행복이라는 걸 모르는 거 같아요. 저는 이제 세상이 그저 행복하고 감사해요.” ​

극한의 억울함이 감사와 행복으로 바뀐 걸 나는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변화시켰을까.​

나는 변호사생활을 하면서 불공정과 억울함으로 가득 찬 세상을 봤다. 단번에 나쁜 세상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좋은 세상이 떠오를 것도 아니었다. 분노하면 살 수가 없었다. 십자가를 지듯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어떤 혼탁한 사회에서도 바른 영혼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있다. 그가 좋은 사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