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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대통령들의 좋은 꿈

Joyfule 2024. 3. 5. 21:23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대통령들의 좋은 꿈


옛날에 썼던 메모지를 뒤적거리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부분이 있다. 김영삼대통령 초기였던 것 같다. 청와대에서 근무를 하는 친구가 모임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대통령이 저녁은 칼국수와 반찬 하나로 하라는 지시가 내렸지. 주방에서 난리가 났어. 반찬을 하나로 하면 김치인데 간장을 내놔야 하는 건지 아닌지를 놓고 말이야.”​

그 말을 듣고 내무부에서 근무하는 친구가 말했다.​

“전에는 안 그랬는데 장관 회식에서 갑자기 국수를 시키는 경우가 많아. 그러니까 밑의 직원들은 삼겹살을 먹고 싶어도 그걸 말하지 못하는 거야.”​

대통령의 말 한마디 행동하나가 미치는 영향이었다. 대통령들마다 이 나라를 어떻게 만들고 싶은 꿈과 의욕이 있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역사에 어떤 대통령으로 남고 싶은 소망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이 정치투쟁과 언론의 부정적 시각에 세뇌된 국민 여론 속에서 색이 바래기도 했다. 또 정치보복으로 역대 지도자들이 구름 위에서 땅의 진흙 바닥에 떨어져 허우적대기도 했다. 그들의 감옥행과 언론의 조소가 그런 것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역대 대통령들의 아름다운 점과 장점을 한번 살펴보고 싶다. 내가 네살 무렵 엄마한테서 우리대통령의 이름은 이승만이라고 배웠다. 독립운동을 하고 나라를 세운 대통령이었다. 냉전 시대 세계의 모든 나라는 미국과 소련 두 나라중 하나를 골라 줄을 서야 했다. 그게 현실이었다. 이승만대통령은 미국 쪽을 선택했다. 정치학자들이 그런 실용적 결정을 칭찬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검소한 대통령이었다.​

예산을 아끼기 위해 일제강점기 총독이 사용하던 건물을 경무대로 이름만 바꿔 그대로 사용하면서 커튼도 바꾸지 않았다고 한다. 영부인 프란체스카여사는 대통령의 구멍난 양말에 알전구를 넣어 기웠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들을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한 눈물의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경제적으로 독립시켰다. 내가 대학일학년 때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은 미국의 경제원조가 없으면 일년 예산을 편성하지 못하는 기형의 국가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가 외국에 손을 벌리는 구걸을 더이상 하지 않게 만든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부자나라의 기초를 만든 영웅이었다. 박정희대통령도 검소했다. 대통령 방에 있는 변기의 물통에 벽돌 두 장을 넣어두었다고 한다. 그만큼의 물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말이 나온김에 그 딸인 박근혜대통령에 대해서도 해명해 주어야 할 부분이 있다. 탄핵을 당하고 뇌물죄로 기소된 박근혜 대통령의 수사기록을 면밀히 살펴보았었다. 뇌물을 준 혐의로 구속기소된 국정원장의 변호인이었기 때문이다. 탄핵 당시 가짜뉴스와 유언비어가 매연같이 이 사회를 덮었었다.​

청와대 경내에서 굿을 한다느니 여성대통령의 침실 벽에 대형 거울이 달려있고 남자가 은밀히 드나든다느니 별별 얘기가 다 돌아다녔다. 수사기록을 통해 그 실체를 살펴보았다. 오래된 대통령의 침실은 방문의 나무가 뒤틀려 있어 열고 닫을 때마다 마찰음이 났다.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직원을 불러 문을 새로 달거나 수리하지 않았다. 직접 양초로 소리가 나는 부분을 문질러 부드럽게 했다. 우리 세대는 초등학교 시절 마루 바닥에 그렇게 양초를 문질러 거친면을 다듬기도 했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삶은 검소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국회의원시절 국회에서 직접 본 적이 있다. 내 눈으로 본 김대중 의원은 우수한 모범생 그 자체로 보였다. 위원회의 자기 자리를 떠나지 않고 심의하는 자료를 정독하고 있었다. 말을 아끼는 질문 하나하나가 정책의 핵심을 꿰뚫고 있었다. 사람이 구렁텅이에 빠지면 허우적대고 흔들리기 마련이다. 김대중대통령은 그런 때도 강인한 것 같았다. 그가 정보부에서 조사받을 때 식판의 밥을 나르던 수사관한테서 들은 얘기가 있다. 그 힘든 상황에서도 식판의 밥을 한 알도 남기지 않고 다 먹더라는 것이다. 사형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그는 자기에 대한 조서의 오탈자까지도 하나하나 수정하더라고 했다. 그는 금모으기 운동 같은 것으로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IMF금융위기를 넘겼다. 그리고 냉전 속에서 외눈박이가 되어버린 국민들에게 대북 문제의 본질을 얘기한 선각자의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에 이어진 강력한 리더쉽으로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경제발전으로 평가받으려고 했던 대통령이었다. 표를 계산하고 눈치를 보는 정치가 아니라 욕을 먹으면서 사회개혁을 주도한 대통령들이었다.​

나는 김상협총리의 평전을 쓴 적이 있다. 그 자료수집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명망이 높던 김상협 교수는 전두환 정권에서 총리가 되는 걸 사양하려는 자리였다. 전두환 대통령은 김상협 교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많이 배우고 훌륭한 분이 총리로서 마음대로 뜻을 펴십시오. 욕은 못배우고 군인 출신인 내가 다 먹을테니까요.”​

훌륭한 인재들을 불러 모은 전두환 대통령의 그릇이 보였다.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정책은 공산권을 우리의 시장으로 만드는 부국강병책이었다. 시대를 앞서가 남북연방까지도 고려하는 과감한 기획들을 나는 뒤에서 들여다 본 적이 있다. 그 시절 현대그룹의 이명박 사장은 러시아에 공장들을 세우고 고르바쵸프를 만나 많은 사업들을 따냈다.​

이명박 대통령은 원전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체면을 가리지 않고 그걸 설치하려는 국가 원수에게 끊임없이 전화를 걸어 세일즈를 한 대한민국 주식회사의 씨이오였다. 대통령의 체통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이익이 먼저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했다. 그의 연설마다 진정성과 열정이 있었다. 그의 영혼은 아름다운 평민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휴일이면 직원들을 보내고 직접 라면을 끓였다. 대통령이 되기전 문재인 변호사와 점심시간에 만난 적이 있다. 앞에 김밥과 과자를 놓고 먹으면서 그에게 진정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냐고 물었었다. 우리가 이렇게 잘살게 될 때까지 역대 대통령들 나름대로 다 역할이 있었다. 우리들은 두 눈뜨고 눈먼국민이 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외눈으로 자기편만 천사고 반대편은 악마로 몰아붙이는 것도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부정적인 것은 누구나 볼 수 있다. 그러나 장점은 좀 더 노력을 해야 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