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열 네살
열 네살 먹은 그 아이는 중학교 일학년 때 같은 반인 친구에게 운전을 해 보고 싶다고 했다. 둘은 문이 잠겨 있지 않는 주차장에 세워둔 차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핸들아래 열쇠가 꽂혀 있었다. 그걸 비틀어보니까 차가 몸을 부르르 떨면서 시동이 걸렸다. 신기했다. 차가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두 아이는 잠시 후 차를 큰 길가에 세웠다. 차에서 빠져나올 때 호기심에 콘솔박스를 열어보았다. 동전이 가득했다. 아이들은 그 동전을 가지고 나와 그걸로 게임을 했다. 왔다. 한번 재미를 붙이자 아이들은 그 장난을 몇번인가 계속했다. 마침내 아이들은 경찰에 체포됐다. 열세살까지면 범죄행위를 해도 처벌받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보다 한살 많은 열 네 살이었다. 담당 검사는 아이들을 구속 시키고 무면허운전과 특수절도죄로 기소했다. 법원은 아이들에게 국선변호사를 지정해 줬다. 며칠 전 했던 법률상담의 내용이었다. 열네살 그건 어떤 나이일까? 탈주범 신창원이 한 때 여론에 떠들썩 했었다. 나는 그의 변호인이었다. 그가 감옥 안에서 했던 말이 기억에 남아있다.
“열 네살 때였어요. 동네 아이들과 과수원에 들어가 복숭아를 몰래 따먹었어요. 나오는 길에 다른 아이가 그 집 카세트플레이어를 가지고 나온 거예요. 우리들 모두 지서에 잡혀갔죠. 그런데 나보다 한 살 어린아이들은 형사미성년자라고 다 내보내더라구요. 또 아버지나 어머니가 와서 지서 순경한테 빽을 쓰면 그 아이가 나갔죠. 나만 구속이 된 거예요. 교도관이 어린 나를 수갑을 채우고 철창에 대롱대롱 매달리게 했어요. 팔목이 끊어져 나가는 것 같았어요. 한 여름인데 재래식 똥통에 머리를 박고 있게 하는 거예요. 너무 힘들었어요. 엄마는 하늘나라에 있고 아버지는 나를 찾아오지 않았어요. 나는 그때부터 악질로 만들어졌어요. 그때 누군가 내게 애정을 조금만 줬으면 이런 괴물이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오래된 인기 드라마 ‘모래시계’의 모델이 된 조폭 두목의 변호를 맡았던 적이 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중학교 이학년인 열 네살 때부터 싸움만 하고 다녔어요. 패싸움도 했고 연장질도 했죠. 그러다가 잡혀갔어요. 검사실에서 조사를 받는 데 아버지가 온 거예요. 우리 아버지가 거의 아들뻘 되는 검사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아들을 살려달라고 한없이 비는 거예요. 나한테는 한없이 잘나고 훌륭한 아버지인데 검사한테 비는 걸 보니까 마음이 이상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때 다시는 아버지가 검사한테 무릎꿇고 빌지 않게 하겠다고 결심을 했었죠.”
열네 살이란 인생은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은 날 것의 냄새가 난다. 그 시절 나도 불량 학생에 속했었다. 내가 다니던 태권도장에 나오던 구두닦이나 당구장 종업원 아이들과 사귀고 이십대 초 건달들을 형이라고 부르며 따랐다. 그들 사이에서는 싸움을 얼마나 잘하느냐가 가치관이었다. 남의 물건을 슬쩍 하는 것도 절도가 아니라 그냥 장난에 불과했다. 청교도적인 도덕관념을 심어주지 않는한 대부분이 죄의식이 없었다. 평소 무섭던 엄마가 불량해져 가는 나를 보고는 갑자기 태도가 백팔십도 달라졌다. 엄마는 울면서 내게 빌고 또 빌었다. 애정의 끈을 놓지 않는 엄마에 의해 나는 서서히 키를 꺽어서 궤도를 수정하게 됐다. 내가 그런 시절을 겪어서인지 남의 자동차를 운전해 본 그 아이들의 열네살을 이해할 수 있다.
열네살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을 우스개소리로 북한의 핵보다 무섭다고 한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사춘기다. 그 나이에 누구나 잠시 넘어질 수 있다. 아이들은 애정의 끈으로 일으켜야 한다. 나는 국선변호사의 애정을 확인하고 싶어 아이 부모에게 변론문을 얻어 보내달라고 했다. 냉냉한 답이 왔다. 그 국선변호사가 자기가 변론문을 줄 법적 의무가 있느냐고 되묻더라는 것이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국선변호는 자칫하면 껍데기만 있고 알맹이는 없는 제도가 되어 버릴 수 있다.
아이의 부모에게 자동차의 소유자를 찾아가 자식을 대신해서 빌었느냐고 물었다. 그게 아들에 대한 또 다른 사랑의 모습이다. 아빠와 엄마가 구치소로 면회를가서 아이와 함께 울었느냐고 물었다. 애정의 끈을 놓지 않으면 아이는 살아난다. 나는 넘어져 봤다. 덕분에 좀 더 깊어졌다. 실수와 실패를 반복했다. 덕분에 조금은 따뜻한 눈이 됐다. 여러번 궁지에 몰렸다. 덕분에 나의 연약함을 알았다. 열 네살의 넘어짐은 그 바닥을 딛고 다시 일어서면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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