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요
태국의 재래시장 구석의 허름한 비빔국수집 같았다. 이십대쯤의 여성이 구석의 화덕 앞에서 길다란 손잡이가 달린 검은 국자 ‘웍’에 기름을 두르고 야채와 국수를 볶는다. 화덕에서 거세게 피어오르는 불길에 ‘웍’을 이리저리 뒤집으면서 불맛을 집어넣고 있다. 오고가다 들어온 사람들이 탁자에 앉아 그녀가 능숙하게 만드는 비빔국수를 기다리고 있다.
어느날 그녀는 고급호텔의 셰프에게 스카웃 된다. 그 셰프는 재벌이나 고관들의 파티 때 음식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쇄도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그가 만든 음식은 거의 예술작품이었다. 셰프는 스카웃한 그녀에게 희망을 물었다. 그녀는 자기를 채용한 셰프같은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셰프는 자기의 지난날을 간단히 이렇게 얘기해 주었다.
“나는 유년시절을 식모인 엄마와 함께 부자집에서 살았지. 그때 부자들은 우리와 다른 음식을 먹는거야. 그래서 그들의 음식을 먹어보고 싶어 몰래 냉장고 안에 있는 캐비어를 꺼내 먹으려고 하다가 들키는 바람에 놀라서 바닥에 떨어뜨렸지. 나는 그들과 같이 특별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었어. 그 야망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거야.”
그와 같은 존재가 되기 위해 그녀는 강도 높은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팔에는 스테이크를 굽다가 입은 화상이 얼룩져 있고 체를 썰다가 벤 자국들이 손가락에 지렁이같이 붙어 있었다. 드디어 실력을 인정받은 그녀는 스승셰프와 함께 부자들의 호화로운 파티에 출장 나가 음식을 만들게 된다. 유명인사들은 스승셰프를 칭찬하고 함께 사진을 찍곤 했다. 팔짱을 끼고 미소를 짓는 스승 셰프는 성공한 특별한 존재 같았다.
어느 날 셰프가 무서운 얼굴로 호텔 주방으로 들어와 그녀를 포함한 아래 셰프들을 도열시키고 소리쳤다.
“스테이크용 고급 고기와 푸아그라를 먹은 게 누군가?”
아래 셰프중 한 사람이 슬며시 손을 들었다.
“왜 그랬나?”
주방장이 무서운 눈길로 물었다.
“저희들은 맨날 부자를 위해 최고급 요리를 만들기만 했습니다. 우리들이 만드는 요리를 우리가 먹을 권리는 없는 겁니까?”
“나는 너를 사용해서 부자들이 먹는 최고의 상품을 만드는 것이다. 너는 내가 만드는 그런 고급음식을 먹을 자격이 없다. 네가 그걸 정 먹고 싶다면 돈을 내고 사 먹어라. 그러면 내가 팔지. 내 음식을 훔쳐먹은 죄로 너를 해고한다.”
스카웃 된 그녀는 조용히 그 광경을 지켜 보고 있었다. 스승셰프가 만든 최고의 음식은 그 임자가 따로 있다는 얘기였다. 그녀는 계속 부자들의 파티에 출장 가서 그 구석에서 긴장한 채 요리를 만든다. 파티는 흥청망청 벌어지고 있었다. 비슷한 또래의 부자집 젊은이들이 끼리끼리 마약을 하고 섹스를 하며 난잡하게 놀고 있었다. 그들은 스승셰프가 만든 음식의 가치를 모르는 것 같았다. 고마워 하지도 않았다. 스승 셰프는 멋진 옷을 입혀놓은 부자집에서 기르는 원숭이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원숭이에게 사람이 입는 옷을 입혀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고 원숭이가 사람이 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 원숭이는 부자인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스승셰프가 혼을 집어넣어 만든 음식은 그걸 모르는 부자들에게는 돼지 앞에 던져진 진주일 뿐이었다. 파티장 구석의 스승 셰프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다. 시장통의 국수가게 화덕 앞에 있던 자신이나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었다. 어느 날 그녀는 자기가 일하던 시장통 허름한 가게의 화덕 앞으로 돌아왔다. 그곳이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였다. 그러면서 그녀는 스승셰프가 마지막에 한 말을 떠올린다. 깨진 병 속에서 튀어나와 바닥에 흩어진 캐비어를 맛보니까 부자들이 먹는 음식도 별 맛이 없더라고. 어젯밤 챈널을 무심히 돌리다가 넷플릭스에서 보았던 태국 영화의 내용이었다. 영화가 던지는 은밀한 메시지가 잔잔한 감동의 물결을 따라 내면으로 흘러들었다. 나도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나 자신이 그리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아는데 수십년이 걸렸다. 재벌회장들이 재판을 받는 법정에서 사원들을 머슴으로 생각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말하는 그 역시 특별한 존재가 아닌 것 같았다. 잠시 돈 보따리를 가지고 있다가 그게 없어지자 바람빠진 풍선같은 존재로 변했다. 특별한 계급은 없다. 진부한 일상에 만족하면서 그냥 보통 존재로 살아가는 게 편안한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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