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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연습

Joyfule 2018. 3. 31. 14:05

 

 [엄상익 칼럼]

고독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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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2시 나는 지하철역의 경노석에 앉아 자그마한 독서수첩을 읽고 있었다. 책을 읽다가 마음에 다가오는 구절들을 기록하고 소가 되새김을 하듯 이따금씩 다시 보아왔다. 그래야 영혼 깊숙이 각인이 됐다.

그게 뭡니까?”

바로 옆에 있던 등산복 차림의 남자가 궁금한지 내게 물었다. 내가 대충 설명을 해 주었다.

그렇군요, 나는 나이가 일흔 여섯 살인데 치매에 걸리지 않기 위해 텔레비전을 보더라도 자꾸만 머리를 써야 하는 프로그램을 봐야 해요.”

숫기가 없던 나는 예전에는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를 불편해 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제는 내가 다가가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의 얘기를 , 그렇군요하고 겸손하고 정중하게 들어주니까 그의 속마음이 금세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저는 육군 대령 출신 이예요. 군에서 나와서도 매주 관악산에 오르면서 몸을 단련하는 걸 게을리 하지 않았어요. 일도 찾아가면서 했어요. 지금은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세상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여러 가지를 보내고 있죠. 예전에 듣던 팝송들도 선별해 올리고 그래요. 하여튼 늙어가면서 좀 더 바쁘려고 노력하죠. 주변에 보면 나같이 연금으로 살아가는 친구들이 일찍 죽어요. 너무 편하면 빨리 죽는다니까요. 인간은 아등바등하고 정신없이 힘이 들어야 오래 사는 겁니다.”

그는 나보다 열 살이나 위인데도 외모는 오히려 젊어 보이는 것 같았다. 늙어서 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고 했던가? 그런 것 같았다. 그는 내려야 할 정해진 역이 있지만 나는 아무데서나 내려도 상관이 없었다. 나는 이따금씩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아무 역에서나 내린다. 그리고 낯선 동네를 혼자 산책한다. 그게 나만의 고독연습이고 늙어가는 법이다. 일본인 소노 아야코 여사는 인간은 늙어갈수록 점점 외로워진다고 했다. 친구도 가족도 점차 없어지고 마지막에는 홀로 남는다고 했다. 그런 때를 대비해서 낯선 동네를 혼자 산책해도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로 마음을 잡으라고 했다. 나는 그걸 실행에 옮겨보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한테서도 배웠다. 아흔 살의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며칠 전 육십대 중반의 아들이 걱정스러운지 이렇게 말했다.

세상을 살아보니까 나이 먹으면서 고독이 제일 뼈가 저리도록 힘들더구나. 누구나 어쩔 수 없는 거 아니겠니. 너도 고독을 잘 견뎌내고 오너라

그래서 나는 요즈음 고독을 견뎌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 ‘늙어가는 법이라는 책을 쓴 소노아야코 여사는 돈도 아끼지 말고 쓰라고 했다. 돈 때문에 궁상을 떨지 말라는 것이다. 돈이 없어질 때면 죽는다는 것이다. 혹 돈이 있어도 몸이 쇠약하고 정신이 혼미해지면 이미 그 돈은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가지고 있는 돈으로 가족과 즐겁게 먹고 마시는데 쓰라고 했다. 그러면서 강하게 한마디 한다. 노인이 되어 정말 돈이 떨어졌다고 가정하면 마지막 행진을 하라고 했다. 몸이 쇠약해지면 길을 가다가 어렵지 않게 저 세상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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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의 옆에서 만난 남자가 갔다. 그 다음의 신당역에서 내렸다. 조금 걷다가 보니 중앙시장이 나타났다. 한가한 걸음으로 재래시장안을 걷는다. 건어물집, 떡집, 족발 집, 칼국수 집, 과일 가게, 옷 수선 집 등이 나란히 있다. 가게 안의 모습들이 보인다. 김치찌개가 담긴 냄비를 앞에 놓고 마주앉은 부부도 보이고 혼자서 멍하니 텔레비전 화면에 시선을 보내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들 살면서 늙어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