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보내며 - 김동삼
유난히도 심했던 가뭄에 농심마저 말라버리나 했다. 사람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서로 뭉치는 영악한 동물인가 보다 흩어짐이 아닌 하나로의 뭉침. 그래서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 한 것은 아닌지.......
그러한 가뭄 속. 고사리 손에서부터 어려운 농촌을 돕자는 마음의 정성이 이어져 성금을 모아 샘도 파고 양수기도 보내고 하여, 모내기를 하는 모습을 보며 이것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늘 지상을 어지럽게 하던 정쟁의 소용돌이도 잠시 멈추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그렇게 한 고비를 넘기고 장마가 이어지면서 들녘의 푸르름은 더해갔고 비알밭 황토마저 푸르름으로 변할 때야 비로소 지난 시름을 잊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 그제의 일상으로 돌아온 느낌이다.
그 따갑던 팔월 땡볕도 처서를 지나고 나니 조석의 날씨가 제법 서늘한 느낌이 든다. 참 절기란 누가 만들어 놓은 것인지 신통하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제천 시내를 동서로 갈라 흐르는 하소천 변에는 예년과 다름없이 해바라기 꽃이 활짝 피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아이들 손을 잡은 엄마의 웃음 같이 활짝 핀 해바라기 꽃길 1킬로미터 정도의 구간은 많은 사람들이 사진도 찍고 산책도하는 명소가 되어있다.
해바라기는 지독한 가뭄에도 하천변이라 그런지 잘 자라 주었다. 군데군데 옥수수 이빨 빠지듯 썰렁한 곳도 보이지만 밀집해 있는 것 보다 더욱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은 공간의 미가 있어야 군락의 미도 살아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 이곳은 하천변의 쓸데없는 땅이었는데 공기청정효과가 높다는 해바라기를 파종한 것이 예상치 못한 시민들의 반응과 외지 관광객이 몰려 명소가 되어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인가 보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때였던 70년대 학교에서는 각 동네마다 향우반이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4-6학년 고학년들을 동네별로 모아 매주 일요일 새벽이면 동네 안 길도 청소하고(조기청소) 초여름이면 코스모스 같은 꽃을 심기도 했다. 대부분 덩치가 큰 6학년에서 향우반장을 맡았고 연락원도 맡았다. 향우반장은 아이들이 모이면 청소구역을 분할해주고 총 감독을 하였고 연락원은 안 나온 아이들의 집을 다니며 나오도록 독려하는 임무를 맡았다. 아마 내가 인생 처음으로 맡은 공식감투가 연락원이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연락병이라고도 했는데 남들보다 좀더 일찍 일어나 아이들을 불러 모으곤 했다.
우리가 심은 코스모스는 무럭무럭 자랐고, 어른들께서 도로 부역을 하시면서 주변의 풀을 깎아 주시곤 하여 가을이면 그 꽃길이 집 앞에서 시내까지 이어졌다. 그때야 그 꽃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나의 감정은 무디었던 것 같다. 단지 여덟 닢짜리 꽃을 뜯어 한 닢 건너 한 닢을 따내고 하늘로 던지면 팔랑개비 돌듯 빙글빙글 돌며 떨어지는 모습을 즐기곤 했던 기억밖에는 없다.
그러한 꽃길은 언제인가부터 향우반이라는 조직이 없어지면서 마을 부녀회원들의 몫이 되었다. 공직 생활을 시작하던 82년도. 마을 안 길의 꽃길조성과 도로변제초작업에 많은 주민들이 새벽 부역을 하기도 했고, 어느 마을이고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꽃길은 잘 가꾸어져 왔다.
비록 잘사는 농촌은 아니었지만 가을이 되면 아름다운 꽃길과 도로변, 곡식들의 황금물결이 어우러진 농촌의 모습은 참으로 정겹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깎여진 도로변의 꽃길. 금방 머리를 자른 단발머리 소녀의 머리에 꽃핀을 꽂아놓은 것처럼 단정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나는 그때부터 가을꽃들에 대한 매력을 느꼈다. 코스모스 꽃 하늘거리는 길을 따라 출장을 다니는 기분이란 소풍 나온 어린 시절의 기분이었고, 아담한 농촌집 마당에 피어 담 밖을 내다보는 해바라기는 아낙의 웃음처럼 화사해 보였다. 밭에 일하러간 이장님을 만나러간 산골짝 밭두렁에 핀 한 무더기 들국화. 강한 향으로 유혹을 해대는 데는 아마 누구도 가던 발길을 멈추지 않고는 못 배기리라.
음지쪽 산비탈, 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연보라 구절초는 마치 어린 소녀의 우수 어린 눈빛을 연상케 하곤 했다 요즘은 농촌을 다녀봐도 잘 가꾸어진 꽃길을 보기가 힘들다. 언젠가 심었다가 손길이 끊겨 야생으로 지금까지 살아오는 간간이 보이는 꽃무더기를 볼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꽃을 보며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정작 가꾸기에는 인색한 것 같다. 그 만큼 우리 마음이 황폐해 졌음일까?
온통 잿빛도시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철마다 길가에 진열해 놓는 화분 속의 꽃이고, 생활의 공간에서도 기껏해야 집들이 때 들어온 화분 몇 개를 볼 수 있을 따름이다 작은 화단을 가꾸는 재미란 농사를 짓는 것처럼 보람을 느낄 수 있다. 풀을 뽑아주고 물을 주고 벌레도 잡아주고 작은 몽우리가 커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활짝 핀 꽃을 맞는 아침은 좋은 하루를 예감하기도 했는데.......
아파트라는 시멘트 덩어리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눈꼽 떼며 나와 새벽길을 달리고 어스름 저녁나절 도로변에 꽃이 있는지 조차 모르고 지나쳐 다시 비둘기집 같은 그런 공간을 찾는 것이 오늘의 생활 현실이다 잠시라도 노란 파일의 무더기와 하루 종일 껌벅이는 사각의 모니터, 조그만 책상 위에서 깨알 같은 사전을 찾아야하는 일상에서 탈피하여, 흙먼지 일고 발 끝에 돌맹이가 차이는 그런 도로변에 먼지 뿌옇게 씌워진 코스모스를 만나면 덥썩 안아주고 싶다. 아담한 토담너머에서 활짝 웃어주는 해바라기를 만나면 몇 마디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은 계절이다. 여름의 끝에 서서 유난히도 가뭄이 심했던 어려운 때가 있었음에도 풍요해 보이는 들녘과 해바라기의 활짝 웃는 모습을 보며, 잠시 지난 가뭄과 장마를 잊고 꽃처럼 웃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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