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모르는 99가지 - 이재현
9. 똑똑한 여자 대 현명한 여자
당신은 혹시 주변 사람들에게서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원래 남 칭찬에 인색하기로도 유명하지만
한편으로는 남 똑똑한 꼴도 못 본다.
지가 알면 뭘 얼마나 안다고, 꼴을 떨어요 꼴을.
그래 그래. 너 잘 났다 잘 났어!
누가 좀 나서서 한 마디 아는 얘기 좀 했다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입을 막고 이렇게 씹는 것이다.
다만 예외가 있다면 공부 잘하는 아이들에게
아유, 고놈 참 똑똑하기도 하지! 라는 립 서비스성 칭찬뿐,
아이들이 암만 방방 떠봐야 바보 어른에게라도 적수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똑똑하다라는 말의 정확한 의미는 생긴 모양이 똘똘하다거나 보기에 영리하다라는 뜻으로
영어로는 clever, wise, bright 등의 의미와 비슷하다.
하지만 똑똑하다는 말에는 아는 것은 많지만
깊이가 없다거나 교활하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고,
우리가 실제 쓰는 경우에도 진짜 상대방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내뱉기보다는
비아냥거리거나 웃기지 말라는 뉘앙스로 쓰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 말의 어의가 이렇게 바뀐 배경에는 공자님의 영향이 크다.
남 앞에 나서는 것은 결례이고 현명한 자는 함부로 말을 하지 않는다는 뭐 그런 이유이다.
이런 해석 말고도, 똑똑하다는 말은 똑똑한 척 한다는 질책의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그러니까 똑똑하지도 않은 자식이 똑똑한 척 나설 때
그 인간을 만장하신 가운데 똑똑하다고 선언해 줌으로써
역설적으로 사람을 병신으로 만드는 화법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간에 (자신이 정말로 똑똑하더라도)
자신의 똑똑함을 과시하거나 똑똑한 척해서는 별로 득될 게 없다.
여자라면 더욱 그러하다.
요즘 드라마를 보면 이른바 똑똑한 여자들이 엄청나게 많이 나온다.
얼마나 말을 잘 하는지, 얼마나 칼 같은지 기가 막힐 정도다.
그러나 이 사회는 아직 똑똑한 여자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여자가 나대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이다.
남성 우월주의가 여전히 판치는 마당에 자신의 똑똑함을 과시하다가
좌절에 빠진 여자들을 나는 많이 보았다.
똑똑한 여자가 되기보다는 현명한 여자가 되도록 하라.
똑똑한 여자보다는 현명한 여자의 모습이 훨씬 더 아름답게 보인다.
현명한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을 뜻한다.
경망스럽지 않고 때를 기다릴 줄 알되 때가 오면 놓치지 않는 사람.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과시하지 않아도 남들의 시선을 끌게 마련이다.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하듯이 사회생활에도 테크닉이 필요하다.
똑바로 가기 어렵거든 돌아서 가라.
아직은 돌아서 가는 것이 현명할 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