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모르는 99가지 - 이재현
8. 친구냐, 그저 아는 사람이냐
미안하지만 이건 내 얘기다.
여러분들도 이런 뼈아픈 경험이 있을지 모르겠다.
벌써 몇 년 전 이야기인지 생각도 잘 나지 않는다.
어느 날인가, 저녁을 먹고 나서 TV를 보고 있는데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며 좀 와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미처 조문 한 마디도 못하고 그래, 알았다. 내 갈게~ 하고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짜식의 고향은 충청북도 증평이었고,
솔직히 밤 9시가 다 된 시간에 거기까지 내려갈려니 좀 귀찮았다.
나는 결국 미적거리다가 에이, 내일 가지 뭐! 하고 자리에 누워버렸다.
그러나 나는 그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짜식의 집에 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친구 집에 초상이 났는데도 멀다는 이유로 가지 않았다는 얘기다.
얼마나 세월이 흘렀을까?
우리는 대학 신문사 후배들의 모임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짜식은 나를 외면하고 있었다.
나도 입을 열지 못했고 그도 나와는 얘기를 피하는 눈치였다.
그 자리가 2차였던가, 3차였던가 하여간 어지간히 퍼마신 후에
나는 술이 취했다는 것을 빌미로 그에게 다가가 그 때 내가 가지 않았던 것을 사과했다.
짜식은 어렵게 입을 떼었다.
밤새도록 너를 기다렸다고. 그런데 오마던 너는 오지를 않았다고.
나는 얼마나 미안했던지 눈물을 흘리며 엎드려 내 죄를 빌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사과하고 또 사과했다.
그는 내 사과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우리 사이에는 이미 건널 수 없는 골짜기가 생긴 후였다.
그렇게 해서 나는 한 친구를 잃어버렸다.
이무영과 같은 소설가가 되고 싶다던 친구였으며 언제나 겸손하고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 같잖은 재주를 인정해 주던 친구를.
지금도 그 친구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우리들이 흔히 얘기하는 친구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는 그저 가끔 만나서 시간이나 죽이는 사람이고,
또 하나는 인생의 동반자로서 무슨 얘기라도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다.
친구가 많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친구가 없는 사람은 불행하다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이다.
당신은 혹시 진정한 친구를 그저 아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만나고 아쉬운 소리나 해대는 대상자로만 보고 있지 않은가?
친구를 잃는다는 것은 인생의 한 부분을 망치는 것과 같다.
친구는 부모나 형제들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민을 들어주고 도와주며
때로는 나 대신 피박을 맞아주기도 한다.
그런데도 친구를 제대로 대접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심심하면 돈이나 꾸고 자신도 모르게 그의 인격을 모독하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보다는 만나서 자기 얘기만 떠들어댈 때
당신의 친구는 당신을 그저 아는 사람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세상이 살벌해지면서 사람다운 사람이 사라져가고 있는 요즘
친구의 소중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여자들 사이에는 우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들 한다.
우정이 꼭 필요한 결정적인 순간에는 슬금슬금 뒷걸음을 친다는 것이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말 그런가?
그렇다면 해결은 당신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