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기뻐하라 (for the joy of the Lord)
김요한 선교사
“느헤미야가 또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예비치 못한 자에게는 너희가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의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 힘이니라 하고”(느 8:10)
금식은 해야 할 때가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감각이 둔해지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남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사라질 때는 금식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금식을 통해 하나님께 떼를 쓰듯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고기를 요구하는 것이나 왕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들의 요구대로 메추라기를 주시고 사울 왕을 세우도록 하셨지만
그 폐단은 고스란히 그들이 떠안아야 했습니다.
이와 같이 억지 금식으로 하나님께 죽겠다고 매달리는 것은 어릴 때의 신앙으로 족합니다.
예수님도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왜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느냐고
요한의 제자들이 따질 때에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데 왜 슬퍼해야 하느냐
다만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오는데 그 때는 금식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9:14-15)
이 말씀을 추적하면 결국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실감하고 있으면 그 신랑으로 인해 기뻐 뛰며 즐거워 할 일임을 말씀합니다.
느헤미야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을 때는 온 백성이
굵은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부르짖고 회개를 해야 했지만
학사 에스라가 있어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하므로 온 백성이 듣고 다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가 말하기를 여호와를 기뻐하라 아니 여호와를 즐겨라
그게 너희들의 힘이라고 외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이 임했다는 뜻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제대로 정착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죄 사함이 확증되자마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전환이 됩니다.
죄 많은 여인이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그 발을 씻으므로
주님을 사랑하는 행동으로 바뀝니다.
이게 죄 사함의 결과입니다.(눅 7장)
이럴 때는 금식할 필요가 없이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그 분의 사랑 안에서
마음껏 즐기는 것이 우리의 영육간의 건강이 됩니다.
오서 코치와 김연아가 포옹하는 장면을 보며 만약 김연아가 경기 중에 큰 실수를 했다면
그렇게 좋아하면서 코치의 품에 안길 수 없을 겁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죄를 이기고 새 생명을 얻으면
나도 모르게 김연아가 자신을 키운 코치의 품에 안기듯 우리도 그렇게 됩니다.
그리고 이게 우리의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