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찌어다
김요한 선교사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찌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찌어다”(대상 16:11)
기도를 찬양으로 시작하라고 합니다.
처음 신앙을 시작할 때에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
노래 부르기를 먼저 하란 말인지 그저 멍멍합니다.
나 같으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으면 아직 기도할 때가 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계심과 창조하심 그리고 구속하심과 여전히 살아계심을 인정하지 않고
‘할렐루야’ 할 수 없고, 그 분이 나를 위해 이룩하신
대속의 은총과 사랑을 알지 못하고 ‘알렐루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노래하며 그 모든 기사를 말하는 것(묵상하는 것, 대상 16:9)은
기도에 앞서 매우 중요한 과정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하나님께 올리면 찬송이 되고,
사람들에게 말하면 전도와 간증이 됩니다.
이때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므로 성령의 임팩트가 일어납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제 하나님께 나아가고 간구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과정을 하나님의 임재와 실재,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의 묵상과 고백, 성령의 감동,
진리를 따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열심 등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많은 말씀이 그리스도의 피와 십자가와
성령의 임재하심을 증거 하시지만 구분을 하자면 그렇다는 이야깁니다.
그 다음엔 본격적으로 하나님과 그 능력을 함께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만 구하면 기도가 너무 묵시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능력만 구하면
역동적이긴 하지만 좀 거친 인간성에 의해 남에게 상처를 많이 주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도 구하고 그 분의 능력 또한 함께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고전 4:2)에 있다고 함은
하나님은 그 능력과 함께 임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빌 4:13)
주님은 가만히 계시는 분이 아니라 능력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여호와 자신의 빛과 구원과 생명의 능력이라고 외칩니다.(시 27:1)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존재(who)도 되시고 능력 곧 기능과 역할(what)도 되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시아에서 환난을 당해 거의 초죽음이 되었을 때에
‘나는 하나님만 믿는다.’ 하지 않고 ‘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하나님만 의뢰한다.’ 고 말했습니다.
마리아에게도 수태를 알리는 말씀과
능치 못할 것이 없는 능력이 함께 임했습니다.(눅 1:37)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를 따라 나아가는 우리에게
얼굴을 향하시는 하나님은 능력이 한이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그 분과 그 분의 능력을 함께 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