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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종

Joyfule 2020. 1. 14. 08:49


 

       여호와의 종

 

 

3. 제사장으로서의 「여호와의 종」


먼저 그 『종』이 받은 고난의 특성이 무엇인가 살펴보자. 제2의 「종의 노래」(사 49:1-9)에서 「여호와의 종」은 곧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사 49:7)라고 했다. 제3의「종의 노래」(사 50:4-11)에서는 그의 수난의 도는 더욱 높아 간다.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고 내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였느니라”(사 49:6)

제4의 「종의 노래」에서는 그 수난의 도는 한층 더 깊어지며 따라서 그의 수난은 단순한 선지자의 순교적인 것이 아니라 제사장으로서의 대속적인 것임을 완전히 드러낸다.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음으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 후에는 그가 열방에 뿌릴 것이며 열왕은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사 52:14, 15)

『그가 열방에 뿌릴 것이며』라는 이 말씀은 제사장들이 물이나 피를 뿌려 이스라엘의 자녀들이 죄를 씻는 그 속죄 사업을 그『종』은 몸소 자기의 피를 뿌림으로써 성취할 것임을 유감없이 보여 주는 말씀이다. 그 동사 『뿌릴 것이며』라는 말은 학자들간에 지금까지 많은 논란이 있다.

우리 한국 개역성경에는 미국 개정 표준역성경(R.S.V)의 번역을 따라서 “열방을 놀랠 것이며”라고 구역을 고쳐 버렸다. 그 술어 『뿌리다』의 뜻을 살펴보기로 하자.

그 동사 『뿌릴 것이며』(우리 한역「열방을 놀랠 것이며」)의 히브리 원어인 「야쩨」는 어근 「나쨔」(뿌리다)의 불완전형(미래를 표시함)이다. 이 동사의 모세의 율법서와 기타 역사서보다 예언서에서 흔히 사용되어 있는 말로 제사장이 물이나 기름, 혹은 피를 뿌림으로 죄를 속하는 의식적 용어이다. 라틴 벌겥(Vulgate)이나 수리아 역본(Syriac)에도 각각「뿌리다」라는 말로 번역되어 있다. 아람 역본인 탈굼(Targum)은 장차 메시야가 나타나서 그의 왕국을 세우고 모든 이방을 물 뿌리듯 던져 버릴 것으로 이해했는데 이것은 물론 당시의 히브리 랍비들의 메시야관인 영향의 일면을 보여 준다.

라틴 교부들은 물론이요 또 지금껏 인류학자들인 루터, 칼빈, 헹스텐벍, 죠세프 알렉산더 같은 여러 학자들도 다 “뿌리다”는 이 단어를 문자 그대로 이해했고, 피흘려 대속하실 메시야의 예언으로 해석했다.

B.D.B 히브리어 사전이 이렇게 그 다른 어근을 추측케 된 동기는 아랍어에서 그 근거를 발견해서가 아니라 사실은 헬라 70인경의 번역에서 온 것이다. “열방에 뿌릴 것이며”로 번역되어야 할 히브리어「야쩨」가 70인경에는 「도마손타이」, 「놀라게 한다」로 되어 있는 것이 문제의 발단요, 오늘의 미국 표준개정역(R.S.V)을 비롯하여 우리 한국 개역성경에까지 그 영향을 미치게 한 근거가 된다. 우리가 가진 히브리어 성경의 「야쩨」에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라 헬라 번역인 「도마손타이」에 잘못이 있다는 것이다.

제4의「종의 노래」의 서론(사 52:13-15)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이 「야쩨」는 「여호와의 종」이 장차 자기의 피를 뿌려 만민을 대속할 제사장으로서의 「종」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 준다.



4. 왕으로서의 「여호와의 종」


『종』이란 말이 왕에게도 사용된 것은 구약의 도처에서 본다(삼하 3:18, 겔 34:28, 학 2:23, 시 89:4, 렘 27:6 등등).

「여호와의 종」의 4대시에 있어서도 『종』은 선지자와 제사장으로서만 아니라 왕으로서의 면모도 언제나 갖추어 표현됨을 본다.

이사야 42:1 이하의 「여호와의 종」이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는 어구를 주해하면서 이 말은 선지자로서의 임무를 표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말이 「미샤벧」이라는 낱말이 사무엘상 8:9과 11절에 왕이 「다스리다」라는 뜻으로, 10:25에는 왕이 「제도를 베푼다」는 뜻으로 사용되어 있음으로 보아 짐작할 수 있다.

더욱이 이사야 42:7에 「여호와의 종」이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하는 말씀은 확실히 그 『종』의 면모는 왕의 그것에 흡사함이 분명하다.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며”(사 42:4), 또 “이방의 빛(사 42:6)이 되게 하며”, “기쁜 소식을 전할”(사 41:27) 그 “학자의 혀”를 받은(사 50:4), 선지자는 곧 또한 「다스리고」「제도를 베풀어」「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는」권위의 행사 자인 왕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제1의 「종의 노래」는 선지자이며 동시에 왕인 그『종』의 풍채를 보여 준다.

우리는 또 제4의 「종의 노래」의 서곡(사 52:13-15)에서 왕으로 서 그「종」의 영화의 절정을 본다.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열 왕은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라.?

이 「종의 노래」의 결미(사 53:12)에서 또한 수난의 제사장이었던 그가 승리자 왕으로서 새 막을 여는 장면을 본다.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 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할 것을 나누게 하리라?

이사야 53:9에 있는 히브리어의 전치사「에트」(חא : 같이)를 탈굼과 70인경의 역자들은 공히 그것을 단순한 목적격으로 표시하는 기호로 취급하고 새로이「무덤」(ידבק, 「키프로」)이란 낱말 앞에 히브리 원어에 없는 전치사를 각각 보충함으로 (70인경은 αντι, for, 탈굼은 ל, to) 다음 같은 엉뚱한 번역을 만들어 그 『종』의 왕의 모습을 세우려 했다. 즉, 우리(한국역)에,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사 53:9)”라고 되어 있는 구절이 다음 같이 반대의 뜻으로 번역되어 있다.

<70인경>

“내가(여호와의 종) 악인을 그의 무덤에 던질 것이요.”

<탈굼>

“그가(여호와의 종) 악인을 「게헤난」에 던질 것이요.”

이렇게 그들은 원문을 굽히려 치면서 까지도 「여호와의 종」에게서 왕의 모습을 찾으려 애썼다. 스가랴 3:8절의 그 『종』과 『다윗의 가지』와의 관계이다. 「다윗의 가지」란 항상 장차 나타날 다윗의 위를 견고케 할 왕에 대한 예언이었는데 「여호와의 종」은 곧 스가랴 선지의 예언한 왕의 위에 앉을 이 「다윗의 가지」였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이라

내가 내 종 순(혹은 가지)을 나게 하리라?(슥 3:8)

이 스가랴의 예언에 대하여 구약 학자 마틴 와인가든(Martin, J. Wyngaarden)은 이렇게 지적했다. “스가랴의 예언에 나타난 ‘내 종 순’ (혹은 가지)은 분명히 다른 초대 예언자들에게서 끌어온 말로서 「내 종」이란 말은 이사야의 「여호와의 종」의 노래에서, 또 ‘순’(가지)은 이사야 4:2과 11:1절과 예레미야 23:5과 33:15절에서 끌어왔다.

분명히 스가랴 3:8에 앞으로 나타날 ‘그 종-순’은 이사야 53장의 「여호와의 종」과 동일한 인격임은 스가랴 3장 9절에 ‘그 종-순’으로 말미암아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하심을 보아 알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때에 이사야의 「여호와의 종」은 곧 훗일에 나타나 다윗의 위를 견고케 할 그 왕 ‘다윗의 가지’였다.

우리가 고찰해 온 「여호와의 종」이 때로는 개인인지 집단체인지 분별하기 어려운 때도 있으나 결국 그 『종』이 가리켜 보이는 최고봉은 대선지 자시오, 대제사장이시오, 만 왕의 왕이 되시는 모든 언약의 성취자 그리스도에 이루어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