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의식에 참석하는 것이 예배라는 거대한 미혹
당신이 교회에 나와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예배에 참석하여야 한다는 것일 게다. 특히 주일예배를 빠짐없이 참석해야 한다는 권면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왔을 것이다. 그래서 피치 못하게, 주일예배에 빠지게 되면 하늘에서 벼락이라도 맞을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주일 새벽기도회에 참석하거나, 타지에 가더라도 주일예배를 꼭 참석하곤 한다. 주일예배에 참석하고 나서는 주일을 잘 지켰다는 안도감을 갖는다. 그래서 우리네 교회에서는 예배에 성공해야 인생에 성공한다는 비성경적인 말을 쏟아내고 있다. 이 같은 종교적인 신앙생활이, 우리네 교회가 얼마나 거대한 미혹에 휩싸여 있는지 잘 말해주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경에는 우리네 교회에서 시행하는 예배의식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배라고 하신 적이 없다. 그렇다고 필자가 우리네 교회의 예배의식이 비성경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필자도 주일에 예배의식을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네 교회에서 시행하는 예배의식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껍데기 행사일 뿐이지, 그 자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그 얘기를 좀 하고 싶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1,2)
위의 구절에서는 성경에서 말하는 예배의 정의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위에서 말하는 예배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라트레이아’로 제사라는 뜻이다. 구약시대의 제사법은 짐승을 죽여 태워서 드리는 제물이 필요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단번에 죄의 용서함을 받는 통로가 열렸으므로, 더 이상 소나 양을 죽여서 제물을 드리는 제사법이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우리가 살아있는 제물이 되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명령하고 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가 무엇인가? 그게 교회에서 시행하는 예배의식에 꼬박꼬박 참석하여 헌금을 드리는 행위인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사1:11~15)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히10:1~8)
하나님은 소나 양을 제물로 드리는 제사의식을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성경 곳곳에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러한 율법의 제사법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지키라고 명령하신 것이 아닌가? 그런데 왜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는가? 그 이유는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이 평소에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려 주신 이유이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구약시대의 제사법의 의미를 망각한 채, 새로운 제사법인 교회에서 예배의식에 참석하는 것으로 자신의 종교행위를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명령하신 제사법조차, 드리는 사람들이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게 살고 있다면 그 제사를 받지 않으시겠다고 명령하셨는데, 우리네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의식은 성경에도 없는 의식이며 교회에서 관습적으로 만들어진 종교의식일 뿐이다.
물론 찬양과 기도, 헌금, 설교시간이 비성경적이며 무의미하다는 게 아니다. 필자가 말하는 요지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교회의 예배의식에 참석하면 하나님이 받아주시는 예배가 되는 것이지, 평소에 하나님을 까마득히 잊고 살다가 교회에서 정한 예배시간에 허겁지겁 찾아와서 교회의자에 앉아 있는 게 무슨 의미냐는 것이다. 물론 자신들은 평소에도 그렇게 살고 있다고 항변할 것이다. 그래서 교회에서 정한 기도회에 참석하거나 각종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행위 역시 예배의식에 참석하는 종교행위와 무엇이 다른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마음이 하나님께 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쉬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전심으로 성령의 내주를 간구하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깊고 친밀하게 교제를 나누고 싶어 한다. 또한 성경을 읽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삶에 적용하여야 한다.
또한 자기 마음대로 산 죄,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산 죄악을 날마다 회개하고 용서를 빌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싫어하는 생각과 성품, 말과 행동으로 짓는 죄악과 피터지게 싸워 이겨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인들은 이렇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할 생각조차 없이, 교회에서 시행하는 종교의식에 참석하고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예배의식에 참석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이라고 착각하고 있으니 기가 막히다. 이는 미혹의 영이 우리네 교회지도자와 교인들을 미혹시켜 영적 잠을 자게 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참으로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
'━━ Joyful자료실 ━━ > 신상래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도가 사라진 우리네 교회, 죄에 뻔뻔한 우리네 교인 (0) | 2019.11.20 |
---|---|
천국의 백성이 되는 자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0) | 2019.11.19 |
성령의 사람을 복제할 수 있는가? (0) | 2019.11.17 |
성령의 열매로 자신의 신앙을 분별하라. (0) | 2019.11.16 |
기도응답의 비결은 성경에 있다. (0) | 2019.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