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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우리네 교회의 영혼구원방식은 다르다.

Joyfule 2017. 2. 11. 11:09

 

 

 

     예수님과 우리네 교회의 영혼구원방식은 다르다.

 

 

우리네 교인들의 영혼구원방식은 사영리가 적혀있는 쪽지를 들고, 전도대상자에게 접근해서 호감을 보이면 쪽지에 적힌 내용들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그래서 그가 동의한다고 말하면 소위 영접기도라는 것을 한다. 그래서 전도대상자가 아멘이라고 말하면, 천국에 들어가는 믿음이 있다면서 구원을 받았다고 선포한다. 그리고는 어떤 죄를 짓더라도 구원의 자격이 소멸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예수님의 사랑이 어떤 상황에서도 손을 놓지 않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빼놓지 않는다. 그랬다면 필자도 좋겠다. 그랬다면 필자도 30여년 전에 이미 구원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구원을 받기는 받았다는데, 그 때부터 처참한 불행의 수렁에 빠져 자살하는 사람이 부러운 처지에 있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하나님이 필자를 구원해주시고 나서 땅바닥에 내팽개치지 않았으면 그렇게 고통스럽게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 생각은 자유이고, 착각하는 것도 자유이다. 그래서 필자는 성경에서 약속한대로 일어나지 않으면 구원을 인정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성령의 사람만이 천국의 백성이라고 하셨다. 성령의 사람은 성령의 증거와 변화, 능력과 열매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놀라운 영적 능력을 지니고 귀신을 쫒아내고 고질병을 고치는 등의 기적과 이적을 보이면서,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도구로 쓰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사영리 쪽지를 읽어주고, 그 내용에 동의하면 구원을 얻은 거라고? 이렇게 쉬운 구원은 좋긴 하지만, 구원을 받은 교인들의 영혼은 건조하고 냉랭하며 무능하고 무기력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고단하고 팍팍한 삶을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자녀의 삶과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의 삶과 전혀 구별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은 예수님과 사도들의 영혼구원방식을 찬찬히 살펴보겠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4:18,19)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9:35)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11:5)

 

예수님과 사도들의 복음전파방식은 독특하다. 귀신을 쫒아내고 질병을 고치시면서 복음을 전파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네 교회는 귀신을 쫒아내고 질병을 고치지 않고, 그냥 사영리 쪽지를 읽어주며 영접기도를 하는 것으로 대체하게 되었는가? 왜 그런지 아는가? 바로 성령이 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본적인 지식과 인간적인 노력으로 전도를 하고 있다. 성령이 없는 사람이 전도해서 교회의자에 앉혀놓아도, 그들 역시 어쩔 수 없이 성령과 상관없는 사람일 뿐이다.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성령의 사람이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잊지 마시라. 예수님과 사도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쫒아내고 고질병을 고치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눈으로 보여주면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는 성령의 능력이 없이 인간적인 노력으로 자신의 의를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교회에 다니고 주일성수를 한다고 구원을 받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천국백성이 되는 데 말이다.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26:16~18)

 

위의 구절은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예수님께서 사도바울에게 지시하신 말씀이다. 그 내용은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악한 영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로 데려오라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악한 영에 시달리고 있으며 사탄에게 눌려 있는 사람들에게서 건져내주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물론이고 사도들은 죄다 귀신을 쫒아내고, 귀신들이 잠복하여 불구와 고질병에 걸린 사람들을 치유시키고 회복시키면서 복음을 전파하고 전도하였다. 이렇게 전도란 악한 영의 포로로 잡힌 영혼들을 건져내어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일이다. 그런데 어떻게 사영리 쪽지를 읽어주고 영접기도로 끝난다는 말인가?

 

여기에 의문이 드는 게 하나 있다. 바로 귀신들린 사람에 대한 성경의 언급이다. 성경기자들은 예수님과 사도들에게 찾아온 사람들 중에서 귀신들린 사람이 많았음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시대에는 귀신의 존재조차 무지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귀신이 존재하거나 귀신에 들렸다는 것도 인정하지 않는다. 크리스천조차도 성경에 언급한 귀신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삶의 현장에서 귀신의 정체를 아는 사람도 거의 없고, 귀신의 공격을 알아채고 물리치는 이들은 더더욱 없다. 그들은 거룩한 교회에 귀신이 어떻게 들어오고, 하나님의 자녀에게 어떻게 귀신이 범접하느냐면서, 귀신에 대한 말문을 막아버리기 일쑤이다.

그렇다면 예수님 시대에 우글우글하던 귀신들이 도대체 어디로 가버렸는가? 성경기자들이 귀신들린 사람인 것을 알아챈 것은, 예수님과 사도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그 사람의 증상을 알게 되었을 게 분명하다. 귀신을 쫒아내는 말을 통해서 귀신들린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필자 역시 귀신을 쫓아내고 고질병을 고치면서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훈련을 하는 사역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기도훈련을 시작하고 나서 자연스럽게, 훈련을 요구한 사람들 중에 정신질환이나 고질병의 상당수가 귀신들이 잠복해서 공격하는 증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성령이 내주하시고 성령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야, 비로소 귀신의 존재를 발견하고 귀신들을 쫓아내면서 고질병을 치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네 교회에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고질병을 고치면서 복음을 전파하고 영혼구원을 하는 전도방식을 시행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인본적이고 세상적인 방식으로, 사영리 쪽지를 읽어주고 영접기도를 하는 방식으로 전도하고 있다. 그들에게 성령의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성령의 능력이 없다는 것은 성령이 내주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성령이 없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령의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이 계시다는 자기확신과 자기암시 등의 심리적인 마음의 상태로 성령의 내주를 착각하고 있다. 그들의 자기암시의 결과는 심판대 앞에 서보면 알게 될 것이다. 참으로 두렵고 끔찍한 일이다.

 

출처 : 다음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