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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당신에게 성령이 찾아오시지 않는가?

Joyfule 2018. 3. 18. 00:40

 

 

왜 당신에게 성령이 찾아오시지 않는가?

 

영접기도를 하고 주일성수를 하는 크리스천들은, 교회지도자들에게서 자신 안에 성령이 들어와 계시다는 말을 들어왔을 것이다. 그러나 전지전능하신 성령이 안에 계시다면, 이렇게 무능하고 무기력하게 살고 있을 턱이 없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약속의 민족이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천국행을 믿어 심지 않았다. 특히 종교지도자들이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보임으로서, 자신들의 신앙심을 다른 이들에게 자랑하고 드러내기에 바빴다. 그러나 그들이 마귀의 자식이며 죄다 지옥의 불에 던져졌다는 것은 여러분도 잘 아실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성령이 계신 증거나 변화, 능력과 열매가 없는데도, 목회자들이 말하는 대로 천국의 자격이 주어지는 성령이 사람일까? 그 답은 성경에 있다. 사도행전에서 나타난 성령의 사람들을 보라. 이런 능력이 당신에게 있는가? 없다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는 성경을 자의적으로 비틀어서 아전인수식으로 해석을 하면서, 신학자의 주장을 예수님의 말씀위에 두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그러므로 누구 말이 맞는가 하는 것은, 당신이 심판대 앞에 서면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때는 더 이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래서 오늘은 왜 당신에게 성령이 오시지 않는지 그 이유를 찬찬히 살펴보고 싶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

 

교회에 다니는 크리스천들은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다. 그래서 주일성수에 갖가지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한다면서 그 근거로 들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배의식에 참석하고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사랑의 잣대로 보시는 분이 아니다. 마치 남편이 아내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생활비를 벌어다 주고 잠자리를 같이 한다고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행위가 아니라 마음속으로 아내를 사랑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얼마든지 마음을 속일 수 있지만 하나님은 속일 수 없다.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동자로 당신의 속내와 동기, 목적을 날카롭게 살펴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22:37,38)

 

우리에게 주신 계명 중에 가장 크고 중요한 것이,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신 명령이다. 목숨을 다해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쉬지 않고 하나님을 찾으며, 하루 종일 하나님의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고, 예수님은 항상 깨어서 기도하라고 명령하신 이유이다. 그래서 당신은 하나님을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 계신가? 많은 이들이 종교적인 의식과 신앙행위를 하고 있지만, 정작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 인색하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기도와 말씀으로 만나야 한다. 기도란 하나님과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통로이며, 성경말씀도 머리에 저장하는 지식이 아니라 가슴으로 내려오는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찬양하고 감사하며 회개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가 하나님을 만나서 교제하는 기도가 될 것이다. 또한 규칙적으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수시로 성경을 읽는 습관을 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크리스천들은 돈을 벌어 쌓아두고, 육체의 쾌락을 즐기는 즐거움에 빠져서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목숨을 다해 사랑하는 자녀이겠는가?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자녀들에게 관심조차 없는 이유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는 종교주의자가 되는 것이 신앙의 목표로 가르치고 있으니 기가 차는 일이다. 그래서 당신이 무능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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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행위에 희생을 드릴 생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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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어떤 자매가 기도훈련을 하러 영성학교에 왔다. 그래서 필자는 그녀에게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물어보니 아무런 문제가 없단다. 그래서 칼럼을 읽어보았느냐고 하니까, 어머니가 권유해서 그냥 왔다고 한다. 그래서 필자는 웃으면서 자매에게, 아마 밤이 되면 집에 돌아갈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그 자매는 아니라면서 반색을 하였다. 자신은 기도훈련을 할 결심을 하고 찾아왔다면서 말이다. 그러나 몇 시간이 지나서 저녁이 되자, 이 자매는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인사를 하러 왔다. 그래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겸연쩍게 웃으면서 자신은 통성으로 기도하여야 하는데, 소리를 내지 않고 기도하는 게 자신의 방식과 달라서 그런단다. 그래서 필자는 성경의 기도방식은 쉬지 않고 기도하여야 하는데, 어떻게 하루 종일 통성으로 기도할 수 있냐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그 자매는 아무 말도 못하고 꽁무니를 뺐다. 결국 자매는 그 밤에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모든 크리스천들이 기도하는 방식이 성경적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방식, 자신이 맘에 드는 방식, 자신이 원하는 방식을 고수한다. 그래서 새벽기도회에 가서 10여분 자신이 원하는 기도목록을 외치는 기도습관을 들인 사람은 다른 기도를 할 생각이 없다. 또한 알 수 없는 음절을 무한 반복하는 방언(?)기도를 하는 사람은 자신의 기도가 최상의 방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방언은 대부분 자의적인 방언이거나 귀신이 주는 방언이다. 그러나 이런 기도방식은 오랫동안 편하게 기도할 수 있어서 많은 이들이 이런 기도를 선호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규칙적인 기도생활을 할 생각조차 없다. 이는 하나님을 만나고 싶지 않는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성경의 방식대로, 쉬지 않고 기도하고 전심으로 기도하는 것을 권유하면 많은 이들이 뜨악해하며 도망치기 바쁘다. 이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희생을 감수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다수의 크리스천들은 돈을 버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여가 시간이 나도 TV를 보거나 친구를 만나고 인터넷 게임이나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지만, 정작 하나님을 만날 시간을 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렇게 기도하는 일에 희생하고 싶지 않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찾아오시겠는가? 이런 모습이 대다수의 목회자은 물론, 거의 모든 크리스천에게 만연한 현상이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에 희생을 감수할 생각이 없는데, 하나님이 찾아오시겠는가? 기가 막힌 일이다.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을 불렀나니(65:1,2)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생각을 따라 패역한 길을 가는 백성을 불렀지만, 아무도 하나님을 찾아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우리네 교회와 교인들이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혼이 건조하고 냉랭하며, 무능하고 무기력한 믿음으로 고단하고 팍팍하게 살아가는 이유이다.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