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바다 - 이복수
지난 6월 16일 아침 8시, 동해안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춘천을 출발하면서부터 내 마음은 서서히 상기되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은 아마 모처럼만에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시원한 바닷가를 달려가는 즐거운 상상이 나를 자극하였기 때문인지 모른다.
승용차가 대관령을 넘어 동해고속도로 옥계 부근을 지날 무렵 나는 바닷가 조망이 뛰어난 망상휴게소를 생각하였고 잠시 그 곳에서 쉬어 가기 위해 휴게소로 들어섰다.
오전 11시, 전망대 앞에 섰을 때, 시야 가득히 들어 온 동해의 광경은 한마디로 장관이었다. 코발트색 하늘과 쪽빛 바다가 맞닿은 긴 수평선... 그 너머 외로이 비상하는 흰 갈매기의 고단한 나래짓... 망망대해에 떠 있는 작은 어선들... 태백산맥의 등줄기를 타고 뻗어 내려온 산맥의 끝자락이 억겁의 세월 풍화와 침식작용을 통해 형성해 놓은 해안선의 기묘한 절경과 백사장 모래톱을 핥고 있는 흰 파도의 물결 등... 그것은 자연의 거대한 서사시였다. 나는 오래 묵은 체증이 뚫리듯 가슴이 확 트여 옴을 느꼈다. 나의 바다는 언제 보아도 광활한 하늘처럼 거칠 데가 없는 천의무봉의 존재로 다가왔다.
바다 쪽에서 불어온 해풍을 타고 바다 내음이 내 얼굴과 가슴을 스쳐 지나갔다. 아아! 바다 내음새... 그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맡아 온 고향 앞바다 냄새였다. 독특한 해조류 내음... 파도에 떠밀려 백사장에 널브러진 미역, 다시마, 파래, 진둥아리 등 바다풀들이 햇볕에 건조되는 과정에서 풍겨나는 저 독특한 내음을 나는 유년시절부터 무수히 맡아 왔었고, 이제는 어머니의 살내음처럼 내겐 너무 정겨운 고향의 향수가 되어버렸다. 해조류 냄새가 불현듯 나를 유년의 바다에 빠뜨렸다.
바다는 우리 집과 엎드리며 코 닿을 지척의 거리에 있었다. 비포장 신작로를 사이에 두고 ‘나와 바다’는 어깨동무처럼 마주 보고 자랐다.
아침에 일어나 마당에 나오면 바로 눈앞에 푸른 바다가 펼쳐졌고, 잠자리에 들면 철썩, 처얼썩- 파도소리가 나의 자장가가 되어 주었다. 잠결에 들려오는 파도소리... 그 파동과 생명력은 훗날 내가 어떤 역경에도 좌절하지 않는 강인한 인내력과 포용력을 길러 준 동인이었다. 내가 성장하는 데 있어 바다는 어머니 다음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유년시절 열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외톨이가 된 회색 소년에게 유일한 말벗은 고향바다였다. 무언지 알 수 없는 외로움이 엄습해 올 때마다 나는 등대 밑 영금정 바닷가로 달려갔고, 바다는 늘 내게 포근한 어머니의 가슴처럼 다가와 소년을 어루만져 주곤 하였다. 그 때 나의 후각을 자극한 것이 바로 소금끼에 절은 해조류 이끼냄새였다.
그 날 이후로 소년에게 해조류 내음은 홀어머니의 살내음처럼 잊을 수 없는 그리움이 되어갔다.
내가 성장하여 고향을 떠나 도회적 삶에 찌들어 가던 어느 날인가 나는 내 안에서 또 다른 내가 출렁이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내 유년의 바다였다. 내가 삶에 지치고 힘들어 할 때, 유년의 바다는 내게 파도처럼 다가 와 용기를 불어 넣어 주었고 내 견고한 고독까지도 감싸 안아 주었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내 유년(幼年)의 바다... 홀어머니...동네친구들, 해근, 순기, 성광, 만섭, 응국, 성일, 학자, 연복이... 보광사, 영랑호 산책길...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뒷동산 감리교회의 청탑과 언덕배기 소나무 두 그루들... 그들은 기억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중년을 지난 내 가슴 속에 저 유년의 바다가 살아 숨쉬는 한, 나는 아직 해맑은 소년이다. 춘궁기에 미역을 널러 청간으로 일 나가신 홀어머니가 돌아 올 때만을 기다리던 영금정 바닷가 소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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