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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밑씻개 - 김덕임

Joyfule 2015. 3. 11. 09:34

 며느리밑씻개꽃

며느리 밑씻개 - 김덕임

 

우리나라 속담에 "측간가는 길과 사돈집은 멀수록 좋다"는 말이있다.
그런데 요즘 와서는 그말이 별로 맞지 않는것 같다. 오히려 그반대로, 가까울수록 좋은 것들이 아닌가 생각된다.
가부장적 제도와 여성비하의 시대-시집 위주의 시대는 지나고 모름지기 여성의 힘이 세어져서 친정을 더 가까이하고 모든 일이 친정 위주로 변해 가고 있는것을 느낀다.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이 대표적인 예로서, 고추보다는 더 맵고 눈물나게 한다는 시집살이가 그랬고,
그것은 시어머니의 며느리에 대한 구박이었다.허나 요즘은 구박받는 며느리가 아니요,구박받고 눈치보는 것이 시어머니 쪽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다는 아니지만 아이들도 친가보다는 외가를 더 좋아하는것이 대부분이다.

선진국일수록 친정부모를 시부모보다 더 가까운 자리에 두고 보살피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나라도 차츰 이 바람에 휩쓸려가고 있는 듯하다.변소 길이 멀어야 한다고 했는데, 변소 길은 또 어떤가,


그 시절에는 비위생적이고 냄새 나는 변소가 부엌이나 안방 가까이 있는것을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요즘은 도시는 물론 시골 주택들도 거의 개량되어 거실 한쪽에 있는것도 부족하여 안방에까지 변소를 들여놓게 되었으니 참으로 편리한 노릇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모든것이 변해가게 마련이지만 우리네 화장실 문화만큼 많은 변화를 가져온 것도 드물다.

 

어릴적 재래식 화장실을 생각해보면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그렇지만 그때는 불편함을 알지 못하였다. 요즘은 화장실이 아늑하고 깨끗한 분위기에다 폭신한 좌변기며 거울과 물은 필수로 준비되어 있고 부드러운 화장지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더 나아가서는 비데라는 것을 변기에설치하여 볼일을 본 후에도 손을 쓸 필요가 없게 만들어 사람들을 호강시켜 주고 있다.
지난날에는 문도 없는 화장실에 사람이 있고 없음을 헛기침으로 표시 하였고 밑씻개도 짚건불이나 다 쓴 공책이 최고였다.헌 새끼줄을 길게 배달아놓고 조금씩 풀어서 사용하기도 했다.


때와 장소에 따라서는 풀잎이나 돌맹이를 사용하였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런 일들이 그리 머지않은 지난 일이지만 먼 옛날 이야기 같기만 하다.

그런데 밑씻개 하면 생각나는 것이 며느리밑씻개라는 풀인데 나는 결혼 후 파주에 이사와서야 그 풀을 알게 되었다. 왜 하필이면 며느리밑씻개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인간과 인간의 관계란 묘한데. 우리나라의 고부간의 갈등은 유난했던 것 같다.
이 풀이름이 마치 그것을 대변하는 듯하다. 이사 오던 봄, 집 옆으로 흐르는 계곡물이 빨래를 하기에 좋았고 빨래터 위에 하얗게 피어 청초함을 자랑하던 아름다운 배꽃을 잊지 못한다.
이듬해 배꽃을 기다리던 나는 실망하고 말았다. 모든 풀과 나무들이 물이 오르고 잎을 피우고 꽃망울을 터뜨리는데, 앙상한 가지만 마른 덩굴이 얹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며느리밑씻개라는 풀에 감기어 돌배나무가 죽어버린것이다.그 풀은 살짝만 살갗을 스쳐도 피가 나고 쓰리고 아프다.


이런 풀을 며느리밑씻개라 했으니 이 풀이름 하나만으로도 시집살이가 얼마나 심했을지 짐작이 간다. 아무리 갈등이 있다 하더라도 따지고 보면 별일이 아닌데 그때는 너무 심했던 것 같다.

나는 이 풀에 얽힌 어떤 사연이라도 있나하여 이 사람 저사람에게 물어보았으나 속 시원히 이야기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사전을 찾아보았더니,"마디풀과에 속하는 일년생 풀,키는 60센치에서 70센치가량 줄기는 붉은빛을 띠며 넝쿨지고 잎은 꼭지가 길며 화살촉 모양임"이라고만 나왔지 그이름을 갖게된 연유나 예화같은 것은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찾아봐도 나와있지 않았다.
어느 날 들에서 일하던 며느리가 급히 볼일을 보다 시어머니가 밑을 씻으라고 준 것일까. 만일 며느리가 그 풀로 밑을 씻었다면 사용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만해도 끔찍하다.


그렇다면 요즘 입장이 바뀐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밑을 씻으라고 그것을 줄 수 있을까. 아무리 사이가 안 좋아도 그럴 수 는 없을것이다. 아직은 며느리 입장인 나는 이런 엉뚱한 상상을 해보지만 머지않아 시어머니 입장이 되면 그 이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이 들까.


며느리 밑씻개....
고부간의 묘한 갈등을 가장 잘 나타내는 상징적인 이름인 것 같다.

올해도 비가 많이 와서 계곡물이 물어나고 그 빨래터에서 빨래를 할 수 있지만 그때 그 청초하던 배꽃은 며느리밑씻개 때문에 다시 볼 수가 없다. 어디에 숨어서 우는지 뻐꾹새 울음만이 옛날 며느리의 한을 대변하는 듯 애처롭게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