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교의 형성과정 - 박정수 교수
2. 옛 언약과 새 언약
유대교의 정경인 히브리 성서를 기독교가 자신의 정경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기독교와 유대교의 관계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기독교는 히브리 성서를 ‘구약’으로 규정한다. 이 말은 본래 예레미야 31:31에 나오는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diaqh,khn kainh,n) 세우리라”라는 “새 언약”(New Testament) 사상에 대응되는 용어로 사용된 “옛 언약”(Old Testament)에서 유래한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새로운 언약을 수여하였다는 것과 자신들이 이 새로운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파트너로 부름을 받았다는 확신에서 시작되었다. 예수는 그의 피로 제자들과 “새 언약”을 세웠고(눅 22:20), 그들에게 사랑의 “새 계명”을 주었다(요 13:34). 또한 바울은 자신을 이 “새 언약의 일군”임을 확신했으며(고후 3:6), 좀 더 후대에 히브리서 저자는 예레미야의 새 언약을 인용하며(히 8:8), 옛것은 사라져 없어질 것으로 여겼다(히 8,13). 일반적으로 고대의 시대에는 옛것을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졌던 것을 생각하면, 기독교가 자신의 신앙의 내용을 “새로운 것”으로 내세웠던 것은, 고대인들에게 ‘유대교와는 유사하나 그 보다는 하등한 종교’로 인식될 수 있었다. 반면 유대교는 자신의 “옛것”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옛 조상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수여한 율법이야 말로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계약의 근거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기독교가 “옛 언약”을 버린 것은 결코 아니었다. 또한 그것이 변한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기독교는 새것이 옛것에 뿌리하고 있으며, 나아가서 그것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을 완성하는 것이라는 확신에 넘쳐있었다.
초기기독교 공동체에 유포된 이러한 신념을 우리는 이른바 “성취인용구”라는 말씀의 전승양식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 ...을 이루려 함이라.” 여기서 지시되는 사건은 대부분이 예수의 생애와 사역에, 그리고 선지자의 말씀은 거의 70%이상이 이사야서에 집중되어 있다. 이를테면 예수의 치유사역을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마 8:17)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 사건’을 초기기독교가 유대교의 경전인 히브리 성서가 성취되는 결정적인 사건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초기기독교의 이 성취의 관점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에서 확장되어, 예수를 당시 유대교의 사활이 걸린 율법, 그 율법의 성취자로서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마 5:17).
그러나 유대교는 자신이 전수한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와 그 안에 담긴 율법과 전통들, 그리고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요구한 야웨신앙의 참된 전수자로 확신하고 있다. 만일 유대교에 ‘새것’과 “새 언약”이란 사상이 유효하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율법과 예언” 안에서, 다시 말해서 “옛 언약”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유대인으로서 누구도 그 옛 언약 넘어서는 새로운 성취를 말할 수는 없다. 이것은 기독교인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옛 언약”을 무효화시키는 그런 “새 언약”은 기독교에도 없다. 구약은 여전히 기독교의 정경이 된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초기기독교와 유대교가 공통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일반적인 명제는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화된 명제로는 2000여년의 역사에서 진행된 유대교와 기독교의 뿌리 깊은 반목과 갈등을 이해할 수 없다. 두 종교는 한 하나님 야웨를 섬기고, “율법과 예언”을 그들의 경전으로 읽는다. 그러나 기독교는 예언자들이 수백 년간 그토록 수호해 왔던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야웨 신앙을 예수 그리스도에 연관시켰다. 그것도 유일신 신앙을 훼손하지 않고서 말이다.
또한 저 “옛 언약” 이외에도 “새 언약”을 구약이외의 또 다른 경전으로 채택한다. 구약을 훼손하지 않고서도 말이다. 물론 여기에는,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항상 따라다닌다. 기독교는 유대교에서는 낯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을 통하여 예수와 하나님을 “한 분 하나님”으로 믿는다.
아마도 그리스도(o` cristo,j)라는 직책은 인간 예수를 하나님으로 고백하게 되는 신앙의 가장 중요한 핵심에 자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래서 기독교에서 유일한 하나님은 예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리고 이 내용은 기독교의 종교 예식의 핵심에 서게 된다. 유대교의 가장 중요한 종교적 의식인 할례와 성전의 속죄제의를 기독교에서는 세례와 성만찬이 대신하게 된다. 초기기독교의 이러한 일련의 발전은 유대교가 자신의 “거룩한 책”에 대한 척도(canon)를 마련한 것과 같이, 기독교는 이 “새 언약”에 대해 선포한 기록물들에 대한 척도를 마련하게 됨으로써 그 발전의 끝 지점에 오게 된다.
유대교 신앙의 가장 본질에 속하는 유일한 하나님 야웨 신앙에 이어, 종교적 상징과 그 제의의 변경, 그리고 다시 유대교적 삶의 초석이 되는 “거룩한 책”에 새로운 관점을 도입한 ‘새로운 책’을 첨가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적 유산을 유대교와 공유했던 기독교가 자신의 모태와도 같은 유대교에서 출생하게 된 과정이다. 그리고 이것은 동시에 역사적으로 이미 기틀을 마련한 유대종교로부터 독립한 기독교의 역사이기도 하다.
후기 고대의 시기(late antiquity), 더 구체적으로 기원전후 1세기의 유대교를 구조적으로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종파화” 현상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게 될 것이다. 요새퍼스가 언급했던 당시 유대교의 4개의 “종파들”(ai`re,seij 유대전쟁사 2,119-166; 유대고대사 13,171-173)은 그들의 길(ways of belief and life)은 서로 다를지 모르지만, 모두 자신들의 독자적인 방법으로 토라연구와 실천을 통해 이스라엘의 유산에 대한 정통성을 주장했다.
그러므로 이 시기 유대교의 내적인 갈등의 대의명분은 “누가 참 이스라엘인가?”라는 정통성의 문제로 요약된다. 요세퍼스가 아직까지 기독교를 하나의 종파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후 사마리아를 통해 시리아까지 진출한 초기기독교 공동체도 유대교의 한 종파로 남아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바울이 믿는 사상을 “나사렛인들의 종파”(h` tw/n Nazwrai,wn ai`re,sij 행 24:5)의 것으로 여겼다. 다만 그 규모가 어떠했는가 만이 논쟁의 대상이 된다.
어쨌든 유대교는 기독교를 유대교 내부의 새로운 한 종파(ai`re,sij)로 생각했다. 이 파에 속한 사람들은 유대교의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파”였다(행 28:22). 이들 역시 적어도 유대전쟁 이전까지는 자신들이 유대교 밖의 사람들이었다는 의식은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고뇌어린 대화를 바울의
“이스라엘의 구원”에 관한 담론(롬 9-11장)에서 발견한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 9:1-3)
역사의 아이러니는 종종 다수와 소수, 그리고 역사의 중앙과 주변의 사람들의 역할이 정반대로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가장 극단적인 예를 예전에는 박해자 사울이었다가, 지금은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바울에게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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