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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주의에 대한 12가지 질문.

Joyfule 2021. 11. 27. 20:58


 

  

   은사주의에 대한 12가지 질문.

     글 : David M. Gower

 

질문 4 고린도전서 14:39은 분명히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는데, 왜 당신은 교회에서 방언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까? [TOP]

 

☞ 오늘날 복음주의자들 중에는 본인 스스로는 방언을 하지 않고 심지어 오늘날 방언이 있다고 믿지도 않지만 교회에서 방언을 하는 것은 괜찮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개 그런 은사주의의 관행을 교회에서 허용하지 않습니다. 이런 단호한 입장 때문에 우리는 옹졸하다거나 사랑이 없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좀더 심각하게는 이것이 고전 14:39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방언이 그칠 것이라고 말합니다. "타언어(방언)도 그칠 것이며(Whether there be tongues, they shall cease)"(고전 13:8). 단지 방언이 언제 그칠 것인지에 대해서 확실히 이야기하고 있지 않을 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방언이 언제 그치게 될지 알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먼저 고전 13:8-12를 잘 살펴보십시오. 여기에는 세 가지 임시적인 축복이 나옵니다: 대언, 방언, 지식. 분명히 대언(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대신 말하는 것)도 없어지고 지식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두 동사의 성격상 - 즉 "없어진다"(done away)와 "사라진다"(vanish away) - 대언과 지식은 외부의 어떤 힘에 의해 끝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 외부의 힘이란 바로 "완전한 것"입니다. 완전한 것이 오면 대언과 지식은 그치게 될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 "완전한 것"을 신약 성경의 완성으로 보기도 하며,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만일 "완전한 것"이 신약성경이라면 대언과 지식은 오래 전에 끝난 것입니다. 9절은 부분적으로 알고 대언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10절은 완전한 것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완전한 것이란 틀림없이 부분적인 것의 완성입니다. 따라서 완전한 것은 지식과 대언의 완성 혹은 완성된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가 될 것입니다.

 

자 이제 또 다른 임시 축복인 방언(타언어)에 대해 살펴봅시다. 방언을 묘사하는데 사용된 동사인 "그친다"의 성격상 우리는 방언이 앞에 나온 대언이나 지식처럼 외부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끝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방언(타언어)이란 단어는 고전 13장 9절과 그 이후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를 볼 때 방언은 스스로 그치게 될 것이며, 심지어 완전한 것이 임하므로 대언과 지식이 끝나기도 전에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완전한 것을 신약성경의 완성으로 이해한다면 방언은 그 이전에 그치게 되었을 것입니다. 완전한 것을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해하는 분들도 여전히 방언이 그분의 재림 때가 아니라 재림 이전에 그칠 것이라는 사실에 봉착하게 됩니다.

 

고전 14:21,22은 방언이 종결된 시기를 아는데 도움이 되는 구절입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방언은 믿지 않는 유다인들을 위한 표적이었습니다. 이사야서의 인용구를 보면 외국어 방언의 표적이 믿지 않는 유다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관련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심판의 개념이 고린도서에도 적용된다면 방언의 은사도 믿지 않는 유다인들을 향한 표적이라 할 수 있으며, 곧 앞으로 있을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미리 말해주는 역할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주후 70년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진노를 부으셨으니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파괴하였고 이스라엘 민족은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따져보면 방언은 주후 70년에 지식과 대언은 주후 90년에 그 목적을 다 이루고 그친 것입니다. 역사를 공부한 사람은 방언이 2세기나 그 이후의 정통교회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쉽게 압니다. 그러나 몇몇 이단들은 계속해서 방언을 실행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나 집사의 자격에도 방언은 없습니다(딤전 3장; 딛 1장). 만일 방언이 교회 시대 전체에 필요한 은사였다면 분명 본으로써 양무리를 이끄는 자들은 마땅히 이 은사를 소유해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흥미로운 것은 방언을 주장하며 이에 대해 설교하는 목사들의 대부분이 자신은 그리 하지 않거나 하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고전 14:39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방언으로 말함을 금하지 말라." 이렇게 말한 이유는 방언이 당시 고린도인들에게 유효했고 실제 행해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은사를 오용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로 인해 방언 전부가 금지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경고가 주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방언은 그친 상태에 있습니다. 오늘날 방언은 과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방인들의 전도를 금하신 명령(마 10:5,6) 만큼이나 교회와 무관한 사항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방언의 은사가 그쳤고 대부분의 교회에서 그 목적(믿지 않는 유다인들을 향한 표적)을 거의 달성할 수 없다는 성경적인 이유에서 우리는 은사주의 관행을 우리 교회 안에서 허용하지 않습니다. 또한 방언을 하는 사람과 방언을 하지 않는 사람이 같은 교회에 있게 되면 늘 불화가 일어납니다. 게다가 오늘날 방언은 성경이 말하는 실행의 규정을 거의 지키지 않은 채 행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