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의 역사 2.⊙
3. 제1차 성전 시대 ( 1024-586 B.C.E.)
고대 이스라엘의 군주제는 4세기 동안 지속되었는데, 그것은 부족간의 동맹체제보다 두배나 긴 기간이었다.
사울과 다윗, 솔로몬에서 북왕국 이스라엘의 712년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할 때가지와 남 유다 586년의 바빌로니아의 침략으로 멸망할 때까지 왕을 중심으로 하는 군주제를 실시하였다.
대략적으로 보았을 때 사울은 1012-1004 B.C.E.로서, 주요 업적은 산악 지대에서 블레셋을 몰아 내는 일이었다.
다윗과 솔로몬은 1004-965 B.C.E의 다윗과 솔로몬의 965-926 B.C.E.까지로 보는데, 이들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부와 지혜, 그리고 명예의 상징이었다.
성경이 전하고 있는 가로몬 시대의 평화와 번영, 안정과 화려한 생활,그리고 그이 지혜는 다분히 과장적이라고 하더라도 신빙성이 높은 것들이다. 솔로몬이 죽고 난 후, 다윗에 의해 세워진 국가 체제는 무너져 내리고, 기원전 926년 고대 이스라엘은 르호보암의 남 유다와 여로보암의 북이스라엘로 분열되고 말았다.
남유다는 영토가 작고 가난했지만 동질적인 주민이 어울려 살았고, 지리적으로 비교적 주변과 격리되었기 때문에 확고한 왕조 전통을 바탕으로 정돈되어 왔다. 한편, 북이스라엘은 영토가 넓고 비옥했으며, 그리고 옛 지파 동맹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주민을 포함하고 있었으나, 지리적으로 외세의 외세의 영향을 받기 쉬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왕조의 전통을 가지고 있지 못하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부분이 많았다.
이 시대에 활동한 예언자들은 엘리야, 엘리사, 아모스, 호세아, 미가등이었는데, 이 두 왕국을 오가면서 예언 활동을 하였으며, 정치, 군사, 경제등 각 분야에 걸친 남북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졌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하나의 민족, 하나의 공동체라는 개념을 지속시킬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남북 관계는 기원전 721년 , 북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의해 먼저 멸망당하고 그의 영토에 편입되면서 깨어졌으며, 이 때 북왕국의 많은 피난민들이 남쪽 유다로 몰려들면서 예루살렝의 인구는 급증하였다.
4. 제 2차 성전시대 ( 538 B.C.E. - 70 C.E. )
근동 지방의 국제 정세의 변화와 이에 따른 이스라엘의 멸망은 민족의 강제적 이동과 추방,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의 이민 등으로 인하여 새로운 질서가 생겨나게 되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우, 삶의 터전을 잃고 바빌로니아와 페르시아를 거쳐, 헬라, 로마로 이어지는 열강들의 지배를 겪으면서 과거의 전통과 새로운 사조들과의 충돌 및 갈등을 통하여 다양하고 복잡한 사상을 낳게 되며, 이것은 곧 이스라엘의 새로운 종교 전통으로 연결되어 발전하게 된다.
흔히 '신구약 중간사'라고 일컬어지는 이 기간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로니아의 포로생활을 본토로 귀향하게 되는 과정과, 그로 인하여 발생한 사회 구조 및 사상 체계의 변화, 그리고 헬라, 로마로 이어지는 새로운 지배체재와 헬레니즘과의 충돌로 인하여 발생한 문화적 변화, 나아가 예루살렘의 멸망 등 약 600여 년간의 과정에서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아울러 이러한 시대에 태어난 예수 공동체의 본질과 특성을 그 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과 더불어 고찰하게 됨으로써 , 초기 기독교의 역사적 배경과 신학적 본질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기원전 721년 , 북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당한 후, 남유다는 여러왕들의 개혁과 발전 의지를 통하여 독립을 계속 유지해 왔으나 589년 1월 예루살렘의 포위와 함께 선전이 파괴되고, 유배생활을 시작해야만 했다.
고레스의 칙령으로 538년 이스라엘은 성전을 다시 짓기 위하여 되돌아오게 되고, 에스라와 느헤미야와의 개혁운동을 이 시대를 주류하게 된다. 알렉산더 대왕의 336년에서 323년의 등장으로 동방과 서방의 만남과 헬레니즘이 이스라엘에까지 이르게 되었고, 마카비 전쟁167-164 B.C.E으로 이스라엘은 멸망을 당하게 된다.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헬레니즘의 수용과 거로 요약할 수 있다. 이제부터 모든 유대교는 하나의 유대교가 아니라 팔레스타인 유대교와 헬라적 유대교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어야한다. 이 시기의 유대인들은 '두 언어'와 '두문화'사이에서 살았기 때문에, 같은 공동체 내에서도 각각 다른 생각과 사상을 형성하며 살아가데 되었다.
기원전 500년경에 로마시를 중심으로 한 라틴족의 도시가 세워졌는데, 로마의 특수한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헤롯이 유대나라를 다르시게 되었고, 헤롯의 통치기간은 37-4 B.C.E.까지이다. 이제, 예수의 탄생으로 가보도록 하자. 예수가 사시던 시대의 특성은 한 마디로 '다양성'의 시대였다. 유대 사외의 어느 하나도 통일성을 갖춘 것이 없었다.
특별히 종교 사상들의 경우, 긴박하고 변화가 많은 역사적 흐름 속에서 체계적인 사상이 형성되기 보다는 변화에 다른 각 종파간의 이해에 따라 다양하게 이해되고 해석되었다. 유대민족간의 메시야 사상의 간절함이 메시야의 극적인 탄생을 부인하게 만들었고, 이에 의해 초기 기독교회의 핍박 역시 가세하게 된 배경을 찾을 수 있다. 유대인과 기독교인의 적대적 , 대리적 긴장은 예수께 있다기 보다는 두 집단간의 역사적 긴장관계가 시작되면서 각각의 정체성을 정당화 하기 위한 신학화가 이룩되어 갔으며, 그 결과 두 집단간의 분리가 다 이루어졌다.
'━━ 지성을 위한 ━━ > 이스라엘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스라엘의 역사 4. (0) | 2009.12.16 |
---|---|
이스라엘의 역사 3 (0) | 2009.12.15 |
이스라엘의 역사 1 (0) | 2009.12.12 |
유태인들이 다른 민족을 평가하는 세가지 (0) | 2009.11.10 |
탈무드란 무엇인가? (0) | 2009.1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