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성경의 문화와 풍습
5. 유대인의 일생
1. 자녀의 출생
1. 분만
자녀를 생산하는 일은 주로 가정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자녀 출생을 돕는 산파들이 있었다 (창 35:17; 출 1:15-19; 렘 20:14-15). 대개의 경우 산파는 산모의 친구나 이웃 혹은 친지였다. 그러나 때로는 직업적인 산파를 고용하기도 했다. 산파직은 고대로부터 존재하였 직업이며, 성경에서 산파가 처음 언급된 것은 야곱 때였다 (창 35:17). 산파의 역할을 산모를 도와 분만하는 일을 돕지만, 그 외에도 득남한 사실을 알려주거나 (창 35:17, 18), 쌍둥이를 낳을 경우 누가 먼저 나왔는지를 구별하기 위하여 표식을 달아 주기도 하였다 (창 38:28). 성경에는 출산하다 목숨을 잃은 두 경우가 기록되어 있다. 라헬은 베냐민을 낳다가 죽었고, 엘리의 며느리는 이가봇을 낳다가 죽었다. 그런데 두 경우 모두 산파가 신속하게 산모에게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전해줌으로 산모가 죽기 전에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지을 수 있었다 (창 35:17; 삼상 4:20-21).
유대인의 산모들은 누워서 분만하지 않고 웅크린 자세로 돌로 만든 의자에 앉아 아이를 낳았다. 이 방법은 중력을 이용한 것으로서 이집트에서 유래된 것이다. 출애굽기 1:16에 의하면, 산모는 나란히 놓여 있는 두 개의 돌 위에 앉아서 분만하였다. 여기에서 "조산할 때에"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본문은 '두개의 돌 위에 있는 것을 너희들이 볼 때에"라는 의미이다.
이것과 관련하여 성경에서는 두 무릎 사이에서의 해산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라헬은 자기의 여종 빌하가 자신의 무릎 위에서 해산할 것을 원했고 (창 30:3),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자녀들이 요셉의 두 무릎 위에서 출생했음을 말하고 있다 (창 50:23). 욥은 자신이 출생한 날을 저주하면서 자기를 받았던 두 무릎을 탄식하고 있다 (욥 3:12).
2. 산후 조처
아이가 새로 태어나면 제일 먼저 탯줄을 묶고 잘랐다. 그런 다음 아이의 몸을 물로 씻어주고, 소금으로 아이의 피부를 문질렀다. 무엇 때문에 그와 같은 행위를 하였는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어떤 종교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니면 그렇게 함으로서 아이를 더욱 건강하고 튼튼하게 만든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절차들을 마치고 나서 부모들은 아이의 발을 묶고 팔을 옆에다 붙인 뒤, 아나나 목면 끈으로 단단히 묶었다. 턱밑과 이마 위에로도 끈을 둘렀다. 이러한 끈이나 천을 "강보" (swaddling clothes)라고 불렀다. 아이는 강보에 싸인 채 7일 동안을 지내게 되고, 7일이 지난 후에는 다시 같은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 이렇게 아이를 강보에 싸놓는 관습은 40일간 계속된다. 이러한 관습은 등뼈가 곳곳하고 똑바르게 잘 자라게 하기 위하여 도입되었다. 강보 천의 넓이는 대략적으로 1m 내지 1.2m 였으며, 길이는 5m 내지 6m 정도였다 (겔 16:4; 눅 2:12)
3. 수유와 이유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일은 일반적으로 어머니의 몫이었다 (창 21:7; 삼상 1:21 왕상 3:21). 그러나 때로는 산모의 젖이 부족하거나 산모가 신체적으로 힘들 때에는 유모를 맞아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경우도 있었다 (창 24:59; 35:8; 출 2:7; 민 11:12; 삼하 4:4; 왕하 11:2). 이렇게 젖을 먹여주는 유모를 또 하나의 어미 곧 '젖어미'라고 불렀다. 아이가 젖을 떼는 일은 오늘날 보다 훨씬 늦게 이루어졌다. 사무엘의 경우, 젖을 뗀 사무엘은 이미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수 있을 정도로 성장이 되었다 (삼상 1:20-23; 2:11). 마카비II서 7:27에 의하면, 아이가 세 살이 되었을 때 이유를 시켰는데, 이러한 것은 바벨론에서 오렛동안 지켜졌던 관습이었다. "아홉 달을 뱃속에서 기르고 삼 년을 젖을 먹이고 지금 이 나이까지 너를 키우고 보살핀 이 어미를 내 아들, 너는 알아야 한다" (마카비 II서 7:27). 젖을 떼는 날에는 큰 잔치를 벌렸는데, 아마도 아이를 하나님께 바치는 의미의 기쁜 잔치였을 것이다 (창 21:8).
4. 산모의 정결 의식
출산은 여자를 더럽힌다고 여겼다. 따라서 출산한 여자는 종교적 행사에 참여할 수가 없었으며 거룩한 물건을 만질 수 없었다. 출산으로 인하여 여자들이 부정하게 되는 이유에 관하여 성경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지만, 남자이든 여자이든 피, 정액, 고름 등이 나오게 되면 의례적인 의미에서 부정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레 12:15). 레위기 12:4에서는 40일이 지나야 산모의 산혈이 깨끗해진다고 하였다.
레위기 12장에 의하면, 아들을 낳은 산모는 40일간 부정하였고, 딸을 낳은 산모는 80일간 부정하였다. 산모는 7일 동안 (딸인 경우는 14일간) 집안에서 지내야 했다. 그 후 33일이 지난 뒤에 (딸인 경우는 66일간), 산모는 관습에 따라 예물을 바쳤다. 일반적으로는 산모는 번제를 위하여 일년된 어린양 한 마리를 바쳤고, 속죄제를 위하여는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바쳤다. 이렇게 예물을 드림으로 산모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가 있었다. 가정 형편이 가난한 경우에는 양을 대신하여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나 산비둘기 두 마리를 드릴 수 있었다. 산모가 부정을 없애기 위하여 속죄제를 드렸다는 것은, 마치 여자가 월경 기간동안 그러했듯이, 산모가 의례적인 부정 상태에 있음을 지적한다 (레 15:19-24).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산모가 자녀 출생으로 인하여 실제적으로 오염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산모가 약해져 있는 상태에서 성적 관계를 갖지 않도록 여자를 보호하는 의미가 있었다.
2. 할레의식
남자아이는 태어난 지 8일만에 할례의식을 거행한다 (창 17:12; 레 12:3; 눅 1:59).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는 어른이 되어 할례를 받은 일도 있었다 (수 5:2-5) 할례는 간단한 외과시술로서 남자 성기의 앞부분을 잘라내는 것이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난지 8일만에 행하는 할례가 가장 안전하다는 것이다. 피를 응고시키는 비타민 K가 5일 내지는 7일까지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지만 제 8일에는 보통 때보다 10% 정도 더 많은 '프로드롬빈'이라는 물질이 생성되는데, 이 물질이 피를 응고시키는 일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할례는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창 17:12-13)에 따라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되는 입문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고 거룩하게 지켜졌다.
할례를 받지 않은 자들은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 블레셋 사람들은 할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을 그들을 우습게 여겼다 (삼상 17:26). 할례를 행할 때 암송되는 축도문은 "말씀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으며 또한 우리들에게 할례를 주신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축복을 받으소서" 이다. 자녀가 태어나서 할례의식을 행할 때까지의 8일 동안 가정에서는 축제가 벌어진다.
성경에는 누가 할례 시술을 행하였는지 분명하게 밝히고 있지 않다. 일반적으로 가정의 가장인 어른 남자가 할례를 행하였다 (창 21:4). 성경에서는 단 한번 여자가 할례를 행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출 4:25). 그러나 그 경우는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진 일이라 일반화시킬 수 없다. 후대에 이르러 주의를 요하는 할례는 숙련된 전문가나 특별히 위임 맡은 자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마카비 1서 1:61). 할례가 성소에서 행해지거나 제사장에 의하여 집행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수술을 위하여 사용된 칼은 돌칼과 같이 투박한 것이었다. 금속제 칼이 발달된 이후에도 투박한 돌칼이 사용되었다 (출 4:25; 수 5:2). 그러나 신약시대에 이르러 투박한 돌칼은 금속제 칼로 대체되었다.
고대 근동지방에서 할례는 널리 퍼져 있었던 관습이었다. 그러나 할례의 역사나 의미를 정확하게 말하기란 어렵다. 주전 3000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문서들에서 할례가 언급되고 있으며 조각물들에서 할례의 모습이 보여지고 있다. 헬라의 역사가 헤로도터스도 할례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미라들에서는 할례의 흔적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예레미야는 이집트인들이 유다 사람들과 같이 육체에 할례를 받았으나 마음에는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라고 하였다 (렘 9:25).
원래의 할례가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였는지는 알기가 힘들다. 유대인들이 할례의식을 받아들이기 이전 시대의 할례는 아마도 젊은 사람들의 힘과 성욕을 그들의 신에게 바친다는 일종의 입문의식이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결혼생활을 시작하는 의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의 결혼은 곧 종족의 공동생활에 들어오는 의식이었다.
아랍어에서는 '할례를 행하는 자'와 '장인' 그리고 '사위'가 모두 같은 단어이다. '할례를 행하다'에서 파행된 'hoten'은 장인이라는 의미이고, 'hatan'은 사위라는 뜻이다.
고대사회에서는 결혼이 장인 될 사람에 의하여 준비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할례가 결혼과 관련됨을 증거해 준다. 세겜에 있었던 디나의 강간 사건에서도 할례를 결혼과 결부시키고 있다 (창 34장).
아브라함은 할례의식을 출생 직후에 행함으로서 결혼과 관련된 할례의 의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종족의 공동생활로 들어오게 되는 입문이라는 의미는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된다는 것에서 연결성을 보여준다. 즉 출생 직후에 있게 되는 할례의식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은 전체적으로 하나님에게 속한 민족이 되었다 (창 17:10)
이와 같은 종교적 이유 이외에도 할례를 행하는 다른 부수적인 이유들이 있었다. 그 내용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건강의 목적: 역사가들은 위생상의 목적으로 할례를 행하였다고 주장한다.
2. 동일성의 표시: 할례는 유대인들이 다른 이민족들과 구별되는 근거이다.
3. 성년으로의 인정: 할례가 태어난 지 8일만에 행해지기 때문에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지만, 개종자의 경우에는 유대인이 되었다는 표시로서 어른이나 어린이에게 모두 행해졌다.
4. 계약관계: 할례는 부모와 하나님 사이의 계약을 준수하는 행위였다.
3. 작명
구약시대에는 새 아이가 태어나면 즉시 이름을 지어 주었지만, 신약성서시대에 이르러서는 할례의식을 행하면서 신생아를 위한 작명이 있었다 (눅 1:59; 2:21). 작명이 할례와 연결된 배경에는 하나님께서 할례의 언약을 주시면서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름을 고쳐주셨기 때문이었다. 신생아의 이름은 주로 어머니에 의하여 선택되었으나 (창 29:32; 35:18), 아버지가 이름을 지어주는 경우도 많았다 (창 16:15; 17:19; 출 2:22). 드믄 예이긴 하지만 산파 역할을 하였던 이웃 여자들이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는 경우도 있었다 (룻 4:17).
고대 근동지방에서 이름은 사물의 본질을 표시하였다. 그러므로 사물의 이름을 부여한다는 것은 곧 사물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사물에 대한 지배권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사람의 경우에 이름은 결국 그 이름을 지닌 본인의 성격과 운명을 드러내 주는 것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성경에는 이름을 바뀌는 경우가 자주 일어난다. 야곱의 새 이름은 '이스라엘'이었고, 예수는 시몬을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주었다. 성서시대에 사람들이 얼마나 자주 자신의 이름을 바꾸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유대인들에게 이름 자체는 그가 속한 가족에서 상당한 중요성을 지닌다. 성경에서도 새로운 이름이 주어질 때마다 그 의미가 강조되었음을 볼 수 있다. 자녀의 출생과 그 자녀에게 이름이 주어지는 것은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때로는 부모의 이름이 바뀌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아버지는 "아무개의 아버지," 어머니는 "아무게의 어머니" 등으로 바뀌었다. 또 아들은 그의 이름 앞에 아버지의 이름을 붙이기도 하였다.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바요나 시몬"이라고 불렀는데, 그 의미는 "요나의 아들 시몬"이라는 뜻이었다 (마 16:17).
작명 방법은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이루어졌다.
1. 대부분의 부모들은 신앙적 차원에서 하나님의 이름과 관련하여 작명하였다: 엘리야 (나의 하나님은 여호와); 요나단 (여호와는 주신다); 아비야 (그의 아버지는 여호와이심); 오바댜 (여호와의 종); 다니엘 (주는 나의 심판자); 에스겔 (하나님께서 힘 주심); 엘가나 (하나님께서 만드심)
2. 출생 당시의 주변 환경이 작명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바락 (천둥, 폭풍우); 이가봇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났다)
3. 동물의 이름이 작명에 쓰이기도 하였다. 동물을 작명에 사용한 이유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아마도 고대 종족들 간에는 동물숭배의 토탬사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런 원시 종교적 이유 이외에도, 부모들은 동물의 좋은 특징이 아이의 성장에 나타나길 바라는 소망에서 그런 작명을 하였을 것이다: 라헬 (어미 양); 드보라 (꿀벌); 갈렙 (개); 요나 (비들기); 아이야 (독수리)
4. 어떤 경우는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었을 때 그 아이가 어떤 인물이 되기를 바라는 소망에 따라 인격적 특성이 담긴 이름이 지어졌다. 때로는 자식에게 바라는 바와 정반대의 뜻을 지닌 이름이 정해지기도 하였다. 원시문화권의 사회에서는 귀신들이 매력적인 아이들을 소유하려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혐오감이 느껴지는 이름들을 지어 주었다: 앗산(민 34:26; 강함); 나발 (어리석음)
고대 사회에서는 오늘날과 같은 성이 없었다.
아마도 당시에는 종족 중심의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었기 때문에 그런 가족의 성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구가 증가하면서 같은 이름이 생기게 되었고 이런 동명이인들을 구별할 필요가 생겼다. 같은 이름을 가진 여러 사람을 구별하기 위하여 출신 고향 동네의 이름을 개인 이름에 추가시켰다. 다윗의 아버지 이세는 "베들레헴 사람 이새" (삼상 16:1)라고 불렀다. '막달라 마리아'는 '막달라' 출신 마리아였으며, 가롯 유다는 '가롯' 마을 출신의 유다다. 어떤 이름의 경우에는 활동의 성격에 따라 "세례 요한" 처럼 그 활동 내용이 이름에 추가되었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이름이 달리 불리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셀롯인 시몬"은 '셀롯당'에 가입한 시몬이라는 뜻이다.
신약성서시대 유대인들은 이중의 이름을 갖고 있기도 했다. 예를 들면, 요한복음은 도마를 "디두모라 하는 도마" (요 11:16)라고 불렀다. 이 두 이름의 의미는 모두 '쌍둥이'라는 뜻이다. "도마"는 아람어식 이름이고 "디두모"는 헬라식 이름이었다.
'━━ 지성을 위한 ━━ > 이스라엘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스라엘 성경의 문화와 풍습 (0) | 2014.03.16 |
---|---|
이스라엘 성경의 문화와 풍습 - 자녀의 교육 (0) | 2014.03.15 |
이스라엘 성경의 문화와 풍습 (0) | 2014.03.13 |
이스라엘 성경의 문화와 풍습 (0) | 2014.03.12 |
이스라엘 성경의 문화와 풍습 (0) | 2014.03.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