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규 사랑칼럼 - 내게도 가능성이 있다
약 100여 년 전, 미국의 한 농부가 자신의 농장을 팔고
제임스타운(Jamestown)에서 존스타운(Johnstown)으로 이사 가고 있었다.
그 길은 마차로 이틀 길이었다.
첫날 밤, 농부는 한 마을의 여관에 여장을 풀고 주인에게 물었다.
“혹시 존스타운 사람들에 대해 들으셨습니까? 그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주인이 되물었다. “제임스타운 사람들은 어땠지요?”
농부가 대답했다. “제임스타운 사람들은 친절하고, 어린이를 사랑하고,
서로 돕기를 좋아하고, 교회와 목사님을 아주 사랑했지요. 그곳을 떠나기 싫었어요.”
그러자 주인이 말했다. “존스타운 사람도 똑같아요.
아주 친절하고, 서로 돕기를 좋아하고, 교회와 목사님을 아주 사랑하지요.”
그 말을 듣고 그 농부 가정은 기대를 가지고 존스타운에 가서 아주 만족하며 잘 살았다.
몇 달 후에, 한 기능공도 제임스타운에서 존스타운으로 이사 가고 있었다.
그리고 농부가 묵었던 똑같은 여관에 여장을 풀고 주인에게 물었다.
“아저씨! 존스타운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입니까?”
주인이 똑같이 되물었다. “제임스타운 사람들은 어땠습니까?”
기능공이 대답했다. “말 마십시오. 제임스타운 사람들은 천하고, 비열하고, 뒤끝이 나빠요.
목사님은 위선자이고, 선생님은 사랑이 없고, 여자들은 말이 많지요.”
그 말을 듣고 주인이 말했다.
“존스타운 사람도 똑같아요. 그들도 천하고, 비열하고, 뒤끝이 나쁩니다.”
그러자 기능공은 분노하며 말했습니다.
“그곳에도 문제가 많은 사람들만 모였군요. 세상이 왜 이렇게 비뚤어졌지요?”
다음날, 그는 찌푸린 얼굴로 존스타운에 들어가 그곳에서 살다가
1년도 지내지 못하고 다시 오하이오로 이사 갔다.
자기가 비뚤어졌음은 생각지 않고 세상만 비뚤어졌다고 하면
어디에 가든지 희망은 안 보이지만
좋은 면을 보려고 애쓰면 어디에 가든지 희망을 만들 수 있다.
붉은 색안경을 쓰면 세상이 붉게 보이지만 푸른 색안경을 쓰면 세상이 푸르게 보인다.
보는 시각과 품은 생각에 따라 축복과 행복이 좌우된다.
영적인 사람은 온통 부정적인 환경에서도 긍정적인 것을 보지만
육적인 사람은 온통 긍정적인 환경에서도 부정적인 것을 본다.
육안으로 보면 베드로는 쓸모없는 갈릴리 바다의 어부에 불과했지만
영안으로 보면 베드로는 예루살렘을 뒤흔드는 거대한 재목이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가치 없는 것을 통해 위대한 가치를 발견한다.
19세기 초만 해도 우라늄은 가치 없는 광물이었다.
백과사전에도 ‘희귀하고 무거운 백색 광물로 별로 이용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적혔다.
그 광물을 통해 원자력이 개발되었다.
현대 문명의 원동력이 그 가치 없는 광물에 담겨있었다.
내게도 그런 가능성이 있다.
나에 대해 큰 가치를 부여하라. ‘나’는 결코 별 볼일 없는 사람이 아니다.
성령의 빛으로 비춰보면 나를 통해 영원한 가치를 볼 수 있다.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