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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157과)3

Joyfule 2010. 12. 3. 23:17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157과)3.

스가랴(4):  전쟁과 평화의 왕 (12-14장)

 

2. 정결해진 땅 (13장)

 

2-1. 땅과 백성들이 성결케 됨(1-3)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1).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우상의 이름을 이 땅에서 끊어서 기억도 되지 못하게 할 것이며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사귀를 이 땅에서 떠나게 할 것이라!(2) 사람이 오히려 예언할 것 같으면 그 낳은 부모가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거짓말을 하니 살지 못하리라 하고 낳은 부모가 그 예언할 때에 칼로 찌르리라(3)."

 

  스가랴 13장과 12장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두 장은 모두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되는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와서 구원을 받는 회복의 날에,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모든 백성에게 열리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샘이라는 상징은 아주 적절하다. 샘은 끊임없이 흐르기 때문에 계속해서 다시 물을 채워야 하는 성전의 대야와는 다르다.

 

정결하게 하는 샘은 오래 전에 갈보리 산에서 잠정적으로 열렸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을 위해서 열리게 될 것이다. "정결하게 하는 샘이 나의 앞에 있도다"라는 찬송은 이 구절을 토대로 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제 그들을 정결하게 하는 하나님의 섭리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와 모든 더러움을 정결하게 할 계획을 세우셨다. 여기에서 스가랴가 언급하는 더러움은 의식적인 부정이 아니라 도덕적인 부정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칭의의 원리와 성화의 원리가 나타나고 있다. 그때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사법적인 죄와 도덕적인 불의를 모두 제거하실 것이다. 지위와 계급을 넘어서 모든 사람들이 이 축복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죄와 더러움"이란 용어는 우상숭배와 관련되어 사용되어 왔다. 그러므로 13:2에서는 우상숭배에 대한 언급이 이어지고 있다. 죄와 부정을 정결케 하는 일이 있은 후에는 우상숭배를 페지하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때에 우상들, 거짓 선지자들, 그리고 더러운 영이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 땅에서 우상들이 끊어져서 다시는 그이름이 기억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들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은 다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우상들을 인정하지 않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오래 전부터 우상 숭배를 금하셨지만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우상을 섬겨왔다. 그러나 그 날에는 이스라엘에서 우상 숭배가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 거짓 선지자들은 더 이상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여 백성들을 타락하게 만들지 못할 것이다.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계시하셔서 참 선지자도 필요없게 될 것이다. 그때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힘을 주던 더러운 영과 함께 제거될 것이다.

 

  더러운 영이란 표현은 신약성경에 종종 나타나지만, 구약 성경에는 오직 이 곳에만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언급된 더러운 영은 슥 12:10에 언급된 은총의 영과 완전히 대조를 이루고 있다. 어떤 사람은 바벨론 포로 이후에 이스라엘에서 우상숭배가 제거되었기 때문에, 이 말을 "지상"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교회가 성립된 이후에 이스라엘에서 우상 숭배가 다시 나타나게 될 것이 성경에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다(마 12:43-45, 계 13:11-18을 참고할 것). 그때가 되면 "짐승으로 나타난 로마"(계 13:-10)에 의해 힘을 얻고, 또한 그와 관계된 모든 우상숭배나 거짓 선지자, 그리고 죄인들이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계 13:11-18). 거짓 선지자를 제거하는 일은 가혹한 조치가 필요하게 될 것이다. 모세는 율법을 통해서 가족 중에서 거짓 선지자가 일어나도 그를 제거하라고 지시했다. 모세 율법은 이러한 거짓 선지자를 돌로 치라고 명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죄있는 자가 칼에 찔릴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혈연 관계를 넘어서서 거짓 선지자들을 제거하는 일에 동참할 것이다(신 13:6-10, 18-20).


2-2. 거짓 선지자(4-6)

  "그 날에 선지자들이 예언할 때에 그 이상을 각기 부끄러워할 것이며 사람을 속이려고 털옷도 입지 아니할 것이며(4), 말하기를 나는 선지자가 아니요 나는 농부라! 내가 어려서부터 사람의 종이 되었노라 할 것이요(5), 혹이 그에게 묻기를 네 두 팔 사이에 상처는 어찜이냐 하면 대답하기를 이는 나의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 하리라!(6)"

 

  거짓 예언은 오랫 동안 하나님의 백성에게 덫이 되어 왔다. 스가랴는 장차 이러한 영적인 염병이 완전히 제거될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 날에 거짓 예언을 하던 그들의 뻔뻔함은 수치로 변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했던 거짓 예언에 대해 온갖 변명을 대면서 부인하려고 애쓰게 될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참 선지자들이 입었던 털 옷을 입지 않게 될 것이다. 거짓 선지자들은 양의 옷을 입은 이리처럼 하나님의 사자인 거처럼 위장을 했었다. 참 선지자들은 검소한 생활을 위해서 털 옷을 입었다. 이 털 옷은 그들이 선포하는 슬픈 메시지와 조화를 이루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은 작의 거짓 예언이 탄로날 것을 두려워 해서 털 옷을 입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의 악한 행위를 감추기 위해서 온갖 거짓말을 꾸며내게 될 것이다.

 

  13:5-6에는 거짓 선지자들을 색출해 내는 광경이 묘사되어 있다. 그는 백성들에 의해 거짓 선지자이며,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거짓을 말했다는 죄목으로 고소당하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이 거짓 선지자라는 사실을 드러나면, 하나님을 열성적으로 섬기는 자들이 자기를 죽일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거짓 선지자인이 드러난 후에 위험에서 벗어나려고 온갖 수단을 다 강구하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이 선지자와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고 발뺌할 것이다.

 

그는 자신이 어려서부터 종으로 지내왔으며, 따라서 자신은 선지자의 역할을 할 수 없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는 자신이 선지자의 역할을 할만큼 자유로운 신분이 아니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는 자신이 항상 종으로서 주인에게 매여 있었기 때문에, 선지자의 역할을 할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혐의를 받게 될 것이다. 그의 두 팔 사이에는 선지자 일을 할 때에 가졌던 상처가 있었다. 그때에 그는 자기 팔에 난 상처는 자기의 친한 친구 집에서 입은 상처라고 변명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본문에 언급된 거짓 선지자가 적 그리스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의견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로 인해 거부된다.

첫째, 이 구절에서 사용하고 있는 말은 일반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적그리스도에 대한 언급으로 볼 수 없다. 성경에서 적 그리스도를 언급할 때에는 반드시 그의 인물됨과 업적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 11:15-17에 언급된 참 목자이신 메시아와 이 거짓 선지자가 얼마나 대조적인지 살펴보라!

 

둘째, 스가랴 13장에 언급된 예언의 시대에는 적그리스도가 예언 계획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것은 적 그리스도가 지상에 출현하여 최종적인 운명을 맞이하고 난 후에 일어나는 일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에 심문을 받고 있는 사람이 적 그리스도일 가능성이 없다.

 

  어떤 사람들은 팔의 상처에 대한 언급을 근거로 이 사람이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다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예수 그리스도는 두 팔에 상처를 입지 않고 손과 발목, 그리고 옆구리에 입으셨다. 또한 그리스도는 친구 집에서 상처를 입지 않고 로마인에 의해 상처를 입으셨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어떠한 심문도 받으신 적이 없다.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과 함께 하시다가 즉시 하늘로 올라가셨다.

 

세째로 주님은 자신이 선지자가 아니라고 부인한 적이 없으셨다. 주님은 선지자 중의 선지자였다. 다서째로 주님은 자신이 농부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었다. 주님은 잠시 부친 요셉을 도와 목수일을 한 적은 있었지만, 결코 농사 일은 하지 않으셨다. 여섯째로 주님은 결코 남의 집에서 종으로 태어나거나, 종 노릇을 하신 적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주장은 시대적 배경이나 주변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에 나타난 사람이 그리스도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전혀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2-3. 매맞은 목자(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7)."

 

  13:7에서는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이 나오고 있다. 이 구절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묘사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예언을 자신에게 적용하셨다. 여기에서 메시아의 죽음이 하나님의 역사로 간주되고 있다. 하나님은 칼을 깨워서 그 목자, 그 짝된 자를 치라고 명하실 것이다. 여기에서 칼은 사법적인 힘을 의미하며, 생명을 제거하는 수단을 대표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칼이 죄를 재판하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의미하고 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검이라는 말이 종종 등장한다. 하나님은 "칼"이라는 말로 자신의 공의를 나타내셨고, 메시아를 "나의 목자"라고 부르심으로 독생자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셨다. 이스라엘의 목자 개념은 이미 11장에서 설명했기 때문에, 여기에서 더 이상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짝"이라는 표현은 성경에서 매우 희귀한 표현이다. 그러므로 이에 대해서는 좀 더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 말은 구약 성경에서 (슥 13장, 레 6:2, 18:20, 19:11,15,17, 24:19, 25:14)에만 나타나고 있다. 이 말은 법, 권리, 그리고 특권으로 연합된 사람들을 언급하고 있다. 이 말은 원래 "함께 묶는다"는 뜻을 가진 동사에서 파생된 말이다. "백성"들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단어도 이 말과 어근이 같다.

 

  하나님은 메시아를 "나의 동료, 나의 동지, 나의 친구, 나의 신실한 친구, 나와 연합된 자, 나와 동등한 자, 나의 가장 가까운 혈족" 등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들은 메시아에 대한 강력한 언급이라고 할 수 있다. 메시아가 아니고는 이러한 언급에 어울릴 사람은 없다. "짝된 자"란 말에서 "자"라는 말은 메시아의 인성을 의미하고 있으며, "짝된"이라는 말은 메시아의 신성을 상징하고 있다. 목자를 치면 그를 따르던 양들은 흩어지게 될 것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체포되셨을 때에 그의 제자들이 흩어진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 묘사는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이 흩어지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은총을 베풀어서 자신의 손을 그들을 향해 드리우실 것이다. 하나님은 흩어진 양들을 위해서 친히 개입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남은 자들, 즉 이스라엘의 가련한 자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지켜 주시는 분이시며, 따라서 결코 어려움에 처해 흩어진 자기 백성들을 보호해 주실 것이다.

2-4. 남은 자를 연단하심(8-10)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삼분지 이는 멸절하고 삼분지 일은 거기 남으리니(8), 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9).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10)."

 

  11장에서 스가랴는 이스라엘 민족이 메시아를 배척할 것과 환난 시대에 잇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언급했다. 하나님께서 목자를 치신 후에는 야곱의 환난이 뒤를 잇게 될 것이다. 13:7-8절 사이에는 큰 시간적인 간격이 있다. 이스라엘의 국가적인 환난의 날에 온 땅에서 2/3는 모두 심팝을 받고 사라질 것이며, 오직 1/3만이 세상에 남게 될 것이다. 이 1/3은 남은 자들을 가리키고 있다. 1/3이라는 말은 수학적으로 정확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 6:17)에서 남은 자가 1/3이나 된다고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남은 자들은 고된 시련을 통해서 금과 은처럼 연단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어떤 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로마인에게 정복 당한 일이 아니다. 마지막 날에 이스라엘은 그 땅에 돌아와서 호된 시련을 겪을 것이며, 이를 통해서 그들은 정결케 될 것이다. 연단의 목적은 남은 자들의 신앙을 정화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육체적으로 구원을 받은 후에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새언약이 성취될 것이다. 이것은 완전하고 영원히 우상 숭배가 사라졋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절정이요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