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oyful자료실 ━━/신상래목사

자의적인 자기확신은 믿음이 아니다.

Joyfule 2019. 10. 29. 12:45



 
    자의적인 자기확신은 믿음이 아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세상을 지으시고 우주를 운행하시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자신의 백성들과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 살 것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도 그 사실을 믿고 영접기도행위를 하고 주일성수를 하는 것은 기본이고, 교회에서 요구하는 대로 각종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그런 믿음은 성경에서 요구하는 믿음의 시작일 뿐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수준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더 이상 가르치지 않는다. 왜 그런지 아는가? 교회지도자들도 자신들이 아는 믿음이 거기까지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목회자들과 교인들은 성경에서 선포한 믿음의 능력이나 약속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하고 산다. 그래도 자신의 믿음을 의심하거나 의구심을 표하지 않는다. 그런 말을 입 밖에 냈다가는 믿음이 없다는 질책이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의 믿음의 평가로 천국과 지옥의 성적표를 받아든다면, 자신의 믿음이 천국에 들어가는 믿음인지 날마다 성경과 비교해보며 확인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담임목사에게 믿음의 평가를 위임해버리고는, 심판대 앞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고 땅을 치고 통곡해보았자 이미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 뜨거운 지옥 불에서 고통스러워하면서, 자신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2:23)

 

성경에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더니,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옳게 여기셨으며 친구라는 극진한 호칭을 받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당신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은가? 그런데 왜 당신에게는 아무런 능력도 없으며, 도리어 무능하고 무기력한 믿음으로 고단하게 팍팍하게 살게 내버려두시는 것이 기이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자신이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이 있다고 여기고 있으니 놀랍기만 하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11:1,2)

 

성경의 위인들이 믿는 믿음과 당신이 믿는 믿음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믿음의 선배들은 자신의 믿음을 보임으로서, 하나님이 내려주신 확실한 증거가 있었다는 것이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놀라운 증거들이 성경에 빼곡하다. 그의 아들인 이삭이나 야곱, 요셉은 말할 것도 없이, 모세, 다윗, 사무엘, 다니엘 등의 성경에 위인들도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증거가 수도 없이 나타났다. 신약시대에 들어오자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동일한 증거가 나타났다. 그들은 그 증거를 마음에 새기고 이 땅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살다가 이 땅을 홀연히 떠나 천국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들은 믿음의 증거가 단지 예배의식에 참석하고 교회에서 요구한 신앙행위를 반복하지 않았다. 구약시대는 물론 성경이 기록된 초대교회시대에도 지금의 교회나 예배의식이란 존재하지도 않았고, 우리네 교회에서 요구하는 희생적인 신앙행위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바위같이 견고한 믿음을 지키며 살아갔던 이유는, 그들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살아계신 기적적인 증거가 수도 없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일한 하나님을 믿는 당신은 그런 증거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둘 중의 하나이다. 성경속의 하나님이 늙어서 지금은 그런 증거를 드러내지 못하시거나, 당신의 믿음을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아서이다. 그렇다면 정답은 뻔하다. 당신의 믿음이 허접하고 무능하다는 결론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이 무엇인지 콕 집어서 말씀드리겠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11:6)

 

오늘 아침, 캐나다 장로님이 근황을 보내주신 카톡의 내용 일부를 올려드리겠다.

 

얼마 전 기도 중에 나를 용서하시고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마음속에 큰 음성으로 "믿음을 보이라" 하고 말씀하셔서, 제가 믿음을 어떻게 보이지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 네 앞에 내가 항상 서있다고 생각하는 게 믿음이다" 라고 말씀하셔서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살 것을 다짐하며 기도 때마다, 생활할 때마다, 내 옆에 주님이 계시다고 믿으며, 나를 죽이며, 또 돌아보며, 한 주간 한 주간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살아계셔서 자신의 삶의 전부를 날카로운 눈으로 지켜보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늘 뒤에서 자신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신다고 믿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생각 없이 반복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관심조차 없이 살아갈 수가 있을까? 또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게 절절하게 믿어진다면, 만왕의 왕이자 생명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쉬지 않고 부르며 그분을 전심을 찾지 않을까?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는 것이고, 그래서 그분을 만나서 교제하는 삶을 절실히 소원하면서, 그분이 자신에게 찾아오시기를 전심으로 구하고 찾아야 한다. 그러나 그분이 살아 계시다고 믿고는 있지만, 하나님을 부르며 교제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머리로 이해하고 있는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자기 확신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이 목숨을 내놓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리가 없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세속적인 축복을 얻기 위해서일 뿐이며, 종교적인 행위만 반복하면서 교우들과 인생을 즐기면서 자기만족을 채우고 있을 뿐이다. 작금의 우리네 교회는 이런 교인들이 대부분이다. 그 이유는 우리네 교회의 목회자들 역시 자의적인 확신을 믿음으로 착각하며, 믿음의 능력이 없는 자의적이고 관념적인 자기 확신을 성경적인 믿음이라고 가르치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그래서 무능하고 무기력한 믿음으로 고단하고 팍팍하게 살아가는 이유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이 세상에 살고 있는지 조차 모르시기 때문이다. 참으로 기괴하고 섬뜩한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