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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15.

Joyfule 2009. 12. 11. 08:59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15.  
알베르트는 이 비유도 납득할 수 없는 모양으로, 여전히 몇마디 반론을 제기했네. 
그러면서 그는 이런 말을 했네. 즉, 내가 말한 것은 한낱 
무지한 여자의 얘기로, 만일 그렇게 외곬으로만 치 달리지 말고 
좀더 넓게 생각하는 분별력을 가졌던들 그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거라는 걸세.
"알베르트 씨"하고 나는 소리쳤네.
 "인간은 다 마찬가지랍니다. 
얼마쯤 이성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걷잡을 수 없이 
정열이 고조되어 한계점에까지 몰렸을 때는 거의, 
아니 다음 기회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합시다" 
그렇게 말하며 나는 모자를 집었네. 
아아, 내 가슴은 꽉 메는 듯하였다네. 
이리하여 우리는 서로 이해하지 못한 채 헤어졌지. 
남을 이해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 같네. 
8월 15일
이 세상에서 사랑보다 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없을 걸세. 
로테는 나를 잃는 것을 두려워 하고 있다네. 
나는 그것을 그녀의 태도에서 느낄 수가 있네. 
아이들도 내가 날마다 찾아 주리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는다네. 
오늘 나는 로테의 피아노를 조율해 주러 갔었는데, 
그 일은 건드리지도 못했네. 
아이들이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졸랐고, 
로테도 아이들의 청을 들어 주라고 했기 때문일세. 
나는 아이들에게 저녁 빵을 잘라 주었지. 
아이들은 이제 내가 빵을 잘라 주어도 
로테가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꺼이 받아 먹는다네 
그런 다음에 나는 골방에 갇힌 공주 이야기를 해 주었네. 
그것은 내가 곧잘 해 주는 이야기로, 
공주가 굶어죽을 지경이 되었을 때 
천장에서 여러 개의 손이 내려와서 먹을것을 주었다는 내용이지. 
얘기하면서 나는 배우는 게 많다네. 
아이들이 내 이야기를 듣고 어찌나 깊이 감명을 받는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네. 
이야기 속의 세세한 대목은 창작해서 들려 주기도 하는데, 
먼저 했던 것을 잊고 좀 다른 소리를 하면,
 이이들은 곧 지난번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하는 걸세. 
그래서 지금은 조금도 틀리지 않게, 
마치 노래라도 부르듯이 정확하게 암송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네. 
여기서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는데,
 저작자가 자신이 지어서 일단 출판했던 책을 개정해서 재판을 내면, 
설령 예술적으로는 더 나아졌다 하더라도 
그 저서는 반드시 손상을 입게 마련이라는 걸세. 
독자들에게는 아무래도 첫인상이 좋은 법이거든. 
인간은 아무리 엉뚱한 이야기라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끔 생겨 먹었단 말일세. 
더구나 일단 받아들여진 인상은 곧 머릿속에 달라붙어서 떨어지지를 않는 걸세. 
8월 18일
인간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또한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원천이 됨은 불가피한 일이란 말인가? 
내 마음 속에 충만해 있는 생동하는 자연에 대한 열렬한 감정은 
나로 하여금 기쁨에 넘치도록 하면서 
나를 둘러싼 세계를 낙원으로 변모시켜 주고 있었는데, 
그것이 지금은 가혹한 박해자요, 
고뇌의 정령이 되어 어디를 가나 내게 달라붙어 다니네. 
일찌기 바위 위에서 강 건너 저 쪽 언덕에가지 이어진 풍요한 골짜기를 굽어보며 
내 주위의 모든 것이 싹트고 생기에 넘치는 것을 바라보았을 때, 
또 기슭에서 산봉우리에 이르기까지 큰 나무들이 울창하게 뒤덮여 있는 
저 산들과 아름다운 숲그늘 아래 구불구불 뻗어 있는 저 골짜기들을 바라모았을 때, 
조용히 흐르는 시냇물은 소곤대는 갈대 사이를 미그러지듯 빠져나가면서 
다정스런 저녁바람이 일렁일렁 불어 보내는 사랑스러운 구름을 그 수면에 비추고 있었지. 
그리고 새소리는 사방에서 기차게 춤추고, 
풍뎅이들은 태양의 마지막 섬광을 받으며 
풀숲에서 해방되어 붕붕거리면서 날아다녔었지. 
나를 둘러싼 웅성거림에 이끌리어 땅 위로 시선을 돌리면, 
내가 서 있는 단단한 바위에는 이끼가 달라붙어 양분을 빨아들이고, 
메마른 모래언덕의 사면에는 저 멀리 아래쪽까지 관목이 자라 있어서, 
자연히 펼펴 보여 주었었지. 
그 때 나는 이러한 모든 것들을 내 뜨거운 가슴 속에 감격적으로 받아들이고, 
넘치는 풍요로움 속에서 나 자신이 되기라도 한 것 같은 느낌에 잠기기도 했었다네.
그리하여 무한한 세계의 갖가지 장려한 모습들이 
내 영혼 속에서 활기에 넘쳐 약동했었다네. 
거대한 산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고, 깊은 연못이 내 눈앞에 가로놓여 있었으며,
골짜기를 흐르는 맑은 물은 소용돌이치며 
아래로 떨어져 내려서 내 발 아래를 흘러갔고, 
숲과 산들에 메아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네.
그 때 나는 구명할 수 없는 그 모든 힘들이 
대지의 밑바닥에서 서로 뒤섞이며 작용하는 것을 보았네. 
그렇게 하여 창조된 온갖 생물들이 지금 이 대지 위를 뒤덮고, 
하늘 아래서 꿈틀거리고 있는 걸세. 
생명을 지닌 것들이 천태만상으로 이 세계에 가득 차 있단 말일세. 
그런데 인간은 그 조그마한 집에 모여 살면서 몸의 안전을 도모하고, 
거기에 보금자리를 틀고 있는 주제에 넓은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줄알고 있는 걸세! 
오, 가엾고 어리석은 존재여! 
너는 너 자신이 미소하기 때문에 만물을 그와 같이 우습게 보는 것이다!
그러나 영원한 창조자의 영혼은 근접할 수 없는 산악에서 
인적미답의 황야를 넘어 미지의 대양의 끝에 이르기까지 충만해 있으며, 
그것을 느끼며 삶을 영위하고 있는 온갖 생물을, 
티끌과 같은 존재에 이르기까지도 기뻐하시는 거라네. 
아아, 그 때 나는 머리 위를 날아가는 학의 날개를 빌어, 
망망한 대해의 저 건너편 기슭으로 얼마나 날아가고 싶어했는지 모른다네. 
신의 술잔에서 거품을 일으키며 넘쳐나는 더없는 생명의 환희를 마시고, 
단 한 순간이나마 만물을 자신의 내부에서 스스로 창조해 내고 있는 
지고하신 분의 지극한 행복을 맛보기를 얼마나 갈망했는지 모른다네. 
친구여, 그 당시를 회상하는 것만이 내 기억을 북돋우어 주는 일이라네. 
형언할 수 없는 그 무렵의 감정을 되새겨 보려는 노력만으로도 
내 영혼은 승화되고 고양된다네. 
그러나 이윽고는 현재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의 불안함을 더한층 절실히 느끼게 된다네.
내 영혼 앞에 드리워져 있던 장막 같은 것이 걷혀 버린 듯싶네. 
무한한 생명의 무대는 이제 내 눈앞에서 영원히 입을 벌리고 있는 
깊고깊은 무덤으로 변해 버린 걸세. 
모든 것은 흘러가고, 모든 것은 번개처럼 빠르게 사라져 가네. 
그 지극히 짧은 동안의 존재조차 온전히 누리는 일도 없이 
변전의 분류속에 휩쓸리는가 하면, 
물밑에 가라앉기도 하고, 바위에 부딪혀 으스러져 버리기도 하는 걸세. 
그런데 자네는 어떻게<이것은 존재한다>고 말할 수가 있는가? 
한순간 한순간이 자네와 자네 주위의 사람들을 좀먹어 가고 있는 걸세. 
한순간 한순간마다 자네 자신이 파괴자가 되고 있으며, 
또 그렇게 도지 않을 수 없는 걸세. 
무심코 산책을 할 때만 해도 수많은 벌레들의 생명을 빼앗고 있지 않은가. 
한 발자국을 내딛다가 공들여 쌓아올린 개미들의 전당을 무너뜨려, 
그 작은 세계를 참혹한 무덤으로 화하게 하지 않는가.
어쩌다가 일어날 뿐인 세계적인 대재앙이나, 
마을들을 휩쓸어 버리는 홍수, 도시를 삼켜 버리는 지진, 
나는 결코 그런 따위의 일을 두려워하고 있는 게 아닐세. 
자연의 온갖 사물 속에 잔재되어 있는 잠재력, 
이것이 내 마음의 터전을 파헤쳐 무너뜨리는 걸세. 
자연 속에서 창조된 일체의 것은 예의없이 
자기의 이웃과 자기 자신을 파괴하고 있는 걸세. 
나는 불안하다 현기증이 난다네. 
하늘과 땅, 그리고 거기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영원히 집어삼키고 영원히 반추를 하고 있는 괴물뿐이라네.
8월 21일
아침에 가슴 답답한 꿈에서 어렴풋이 눈이 뜨이면, 
나는 헛되이 그녀를 찾아 두 팔을 내뻗는다네. 
그녀와 나란히 초원에 앉아 그녀의 손을 잡고 
거기에 수없이 키스를 퍼붓는 착각에 빠져 
한밤중의 침대 속에서 나는 헛되이 그녀를 찾는다네. 
아아, 그리하여 아직도 덜 깬 도취경 속에서 손으로 그녀를 더듬다가 
퍼뜩 제정신이 들면 미어지는 듯한 가슴 속에서 눈물의 분류가 솟구쳐 오르는 걸세. 
그리하여 나는 절망 속에서 어두운 내일을 생각하며 엎드려 운다네.
8월 22일
비참한 심경일세. 
빌헬름! 내 활동력은 이상을 일으켜 불안스러운 나태로 변해 버렸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이런 허탈상태에 빠져 있을 수도 없는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큰일일세. 
나에겐 이제 사고능력도 없고, 자연을 감상할 흥취도 없네. 
책따윈 더구나 진절머리가 나네. 
자기 자신을 상실하다는 것을 뜻하지. 거짓말도 아니고 과장도 아닐세. 
때때로 나는 날품팔이꾼이 되고 싶은 생각이 드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그 날 하루의 목표가 뚜렸다고, 
자신을 긴장시키는 그 무언가를 기대하는 마음을 지닐 수 있을 테니까. 
나는 때때로 알베르트가 부럽다네. 
서류 속에 파묻혀 있는 그가 나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하곤 한다네. 
나는 벌써 몇 번이나, 자네와 장관에게 편지를 내어 
공사관에 자리를 하나 얻어 달라고 할까 생각했었지. 
그런 자리라면 거절당하지 않을 것 같았고, 
자네도 또한 보증해 줄 걸로 믿고 있었기 때문일세. 
그전부터 장관은 나를 아껴 주었고, 어떤 자리에든 앉아서 실무를 보라고 권유해 왔거든. 
한순간 그럴까 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이내 생각이 달라지곤 하네. 
어떤 말이, 자신이 누리는 자유가 지겨워져 제 몸에 안장을 언고 
마구를 얹어 달래서 사람을 태우고 다니다가, 마침내 지쳐 쓰러지고 말았다는 그 우화가 생각나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갈피를 못 잡게 되고 마는 걸세. 
친구여! 환경의 변화를 구하는 마음은 초조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은 어디를 가나 나를 뒤쫓아오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