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정거장에서의 충고 - 기 형도

Joyfule 2005. 11. 15. 07:11

      정거장에서의 충고 - 기 형도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마른 나무에서 연거푸 물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천천히 노트를 접는다 저녁의 정거장에서 검은 구름은 멎는다 그러나 추억은 황량하다 군대군대 쓰러져 있던 개들은 황혼이면 처량한 눈을 껌벅일 것이다 물방울은 손등 위를 굴러다닌다 나는 기우뚱 망각을 본다 어쩌다가 집을 떠나 왔던가 그것으로 흘러가는 길은 이미 지상에 없으니 추억이 덜 깬 개들은 내 딱딱한 손을 깨물 것이다 구름은 나부낀다 얼마나 느린 속도로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얼마나 많은 나뭇잎들이 그 좁고 어두운 입구로 들이 닥쳤는지 내 노트는 알지 못한다 그동안 의심많은 길들은 끝없이 갈라졌으니 혀는 흉기처럼 단단하다 물방울들이여, 나그네의 말을 귀담아 들어서는 안된다 주저 앉으면 그뿐, 어떤 구름이 비가 되는지 알게 되리 그렇다면 나는 저녁의 정거장을 마음 속에 옮겨 놓는다 내 희망을 감시해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모든 길들이 흘러 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