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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장 유년기와 소년기 - 2. 아버지의 일

Joyfule 2007. 7. 28. 00:13

2. 아버지의 일

 

그림 : 콜롬바의 제단화(중앙부) 19세기 중엽까지

쾰른의 콜롬바성당에 있었던 그 림으로 이 부분은 동방 박사의 경배장면이며.

이 그림의 왼편에는 수태고 지. 오른편에는 성전봉헌과

그리스도의 어린시절 이야기가 시간적인 순서로 그려져 있다. 패널.유화.138*153cm.

 

예수님의 공생애 3년 이전,30년 동안의 생애에 대하여는 전해 내려오는 기록이 없다.

신약 외전에는 예수님께서 여러가지 모양의 전설로 전하고 있으나

 그것은 신빙성이 없고 관심 둘만한 것이 못된다.

오직 30년 간의 생활 중에 우리에게 알려진 단 하나의 사실이 있다.

그것은 예수께서 12세 때 유대인의 다른 어린이들과 동등하게 [율법의 아들]이 되어

예루살렘 성전 축하에 참석한 사실이다(눅2:42이하).

(스콧틀랜드의 소년들이 교히 의식에 참석하고 성찬식 때 신앙 고백을 하는 것과 일맥 상통한다0.

 

예수의 눈에 비친 예루살렘 성전과 그 도성에 대한 인상이 어떠했겠는가 상상해 보자.

기념식이 끝난 다음 그는 성전에서 발견되었다. [왜 나를 찾으시나이까?] 고 물었다

[내가 내 아버지의 곁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눅 2:49).

이 말은 복음서 기자가 우리에게 전해준 예수님 최초의 말씀이다.

이 말 한마디가 그의 생활 전모를 전해 주는 약도라고 하겠다.

그의 생애의 모든 기록과 십자가의 사실까지가 이때에 하신 말씀을 증명한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그때에는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짊어지고 가실 십자가의 무거운 짐으로 말미암아

외롭게 살아가야 할 전조를 볼 수 있다

(눅 4:23,요6:667:5).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여기에 [집]과 [일]이란 두가지 번역은 같은 의미를 가진다.

여기에서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점이다.

청년기는 그 영혼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가장 좋은 기회이다.

이렇게 처음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하신 후의 다른 기록이 없으니

그후 18년간의 생애에 대하여는 알 길이 없다.

 

이 알 수 없는 장면을 복음서 기장 중 누구가 말해 주었더라면 얼마나 다행한 일이겠는가?

알지 못하는 많은 사실을 그 기록으로 알 수 있었겠고,

또한 그의 소년기와 나사렛에서 지낸 청년기와 동시대 사람들의 기록이 있었다면

예수의 생애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누가가 누가복음을 편집한 이면에는 예수의 모친 마리이가 제공한 재료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누가마저도 이 닫힌 문을 열어 주지는 못하였다.

아마도 그것이 감ㄷ추어지는 것이 더 잘된 일인 것 같다.

감추어 둔 그 사실은 신자의 경건 수행에 유익하고

그리스도의 준비 기간의 침묵은 한 거룩한 기초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