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관 자료 ━━/인터넷성경

제 3 장. 유년기와 소년기 - 3. 소년기의 감화

Joyfule 2007. 7. 30. 09:02

3. 소년기의 감화

그러나 그리스도의 준비 기간에 일어난 몇 가지 사건에 대하여 생각해 볼 여지는 있다. 내면적인 문제 보다 우선 외부적인 문제를 생각해 보자. 그의 생애와 관계된 자연,인간성, 그리고 성경, 아버지의 일터 및 그의 가정을 생각할 수 있다. 그는 이런 외부의 제반 관계를 통하여 그의 아버지 하나님과 깊고 끝없는 영교의 생활을 계속한다.

 

(1) 자연과의 관계

 

복음서의 기록을 보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자연을 사랑하셨는가에 대하여 분명히 나타나 있다. 복음서 기자들이 이런 문제를 다루었기 때문에 전기독교 역사와 세계를 다스린 많은 스승들의 아름다운 교훈들, 즉 들의 백합화(마6:28),추수의 비유(요4:35),자라는 씨앗(막 4:28).공중의 새(마8:20),양을 기르는 일(눅15:4)등을 통하여 어느 시인 보다도 그가 자연을 사랑하셨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농촌 출신이었고 그의 생애의 기록 여러 곳에 농부의 비유가 전개되었으며, 나사렛에서 보낸 청년 시절에 자연을 사랑했던 흔적이 자연의 묘사 자연을 통하여 들을 수 있는 음성이 보여 준다. 이런 점에 대하여 사도 바울과 대조시켜 보면 흥미 있는 일이 있다. 왜냐하면 도시 출신인 바울의 글에는 사람이 많이 사는 도회지의 광경이 여기 저기 나온다. 예를 들어 건축가(고전3:10).군장 (엡6:13),헬라의 육상경기(고전9:24)등은 모두 농촌에서는 취재할 수 없는 도시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복음서에는 언덕과 골짜기,그리고 봄의 곡식밭,지나가는 바람의 광경을 바라볼 수 있으리 만큼 농촌의 냄새가 풍긴다. 그리고 그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보호하고 자비를 베푸시는 증거를 보여 준다.

 

(2) 인간성과의 관계

 

그의 준비 기간이 침묵 중에 흘러갔지만 여러 면으로 보아 예수는 그 기간에 인간성을 배운 사람이다. 장터에서 친구들과 함께 놀고 있는 광경(눅 18:1),농촌에서 자란 한 청년이 도시로 뛰어나가 허랑방탕하는 광경(눅15:11),한 광부가 지방 관리에게 가서 사정하는 광경(눅18:1).회당과 거리 입구에서 기도하는 외식가들의 모습(마6:5)등, 이런 모든 것은 그가 인간성을 배운 좋은 재로들이었다고 하겠다.따라서 그는 나사렛 침묵 기간에 이런 것을 배웠다고 하겠다. 그리고 그가 얼마나 인간성을 잘 배웠다는 것을 요한이 솔직하게 소개한다.[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오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게 대하여 아무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라](요2:24). 예수는 그를 따르는 사람을 심리학적으로 연구만 하는 이가 아니었다. 그는 그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인생의 모든 희비곡절을 통하여 인생의 모든 약점과 장점을 통하여, 또한 그들의 범죄와 그 극복을 통하여 그는 하나님의 인간을 사랑하심과 같이 그들을 사랑하셨다.

 

(3) 성경과 예수

 

예수께서 읽으신 성경은 물론 구약성경이었다. 구약은 유대인 교육의 주초였으며, 기둥이었다. 유대의 다른 어린이와 같이 예수께서도 창세기,신명기,시편,이사야,예레미야 등의 성경을 읽으며 자라났다고 하겠다. 그가 장서한 때까지 오랜동안 성경을 읽고 반복하는 것이 그의 일과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성경을 목표를 세우고 연구했을 것이다. 광야에서 시험을 바으실 때, 성경 말씀으로 그 모든 시험에 승리 하셨다(마4:7-10). 거룩한 영이 자기에게 임하심에 대하여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가르쳐 주셨다(사61:1,눅4:18).그가 만민을 위한 희생 제물이 될 때에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어떻게 고통받으실 것을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 성취하셨다(사53).그의 영혼은 자기 백성들에 대한 구약 성경의 말씀에 몰두되어 있었다.

 

당시 히브리어는 죽은 문자로서 일반에게 사용되지 않고 다만 母語였다.70인역에 이미 구약이 헬라어로 번역은 되었지만 예수님은 히브리어로 된 성경을 읽고 연구하셨다. 당시 상용어는 히브리어가 아니고 셈계통의 아랍어였다. 그러나 헬라어 상용의 시대로 바뀌어 팔레스틴의 주민들은 두 가지 말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예수께서도 헬라어를 사용하실 수 있었지만 아랍어를 사용하셨다. 복음서가 헬라어로 기록되었지만 그중에는 예수께서 아랍어를 널리 사용하신 흔적이 있다. 모두 예수님이 사용하신 말씀으로서,[달리다굼](막5:41),[예바다](막 7:34),[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막15:34)등이 그 예다.그러나 구약 성경 인용에 보면 예수님은 히브리어를 더 잘 알고 있었다.

 

(4) 직업 관계

 

예수님은 나사렛의 목수였다(막 6:3).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지상에서 보내신 생활의 대부분을 목공예로 소비했다는데 깊은 의미가 있다.[직장 기계를 제작하는 장소인 동시에 사람을 연단시키는 곳이다.]라고 헨리.드로몬드가 말한다.예수님이 하신 목공업은 그리스도의 영혼을 다듬기에 좋은 처소였다고 하겠다. 이 나사렛 사람이 그 익숙한 기술을 발휘하여 멍애와 농구와 가구들을 만들어 봉사한 것은 곧 ㅏ나님을 위한 봉사가 되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모친에게 말씀하신 바와 같이 [내 아버지의 사업]을 위한 것이었다. 고로 노동의 신성이 예수님의 생활에서부터 인정되었다. 직업 귀천의 차별이 그리스도에게는 없었다. 수공업이든,중노동이든, 기술직이든, 어떤 일이라고 하나님을 모시고 이루어지는 것은 모두 거룩한 일이다.

 

죄인이 받을 비난도
수욕의 십자가도
사랑으로 대신 짊어지셨네
나사렛 목수가 걸어가신 길
등에 지신 무거운 그 짐
모두가 다 같이 하는 일이지만
그는 하나님을 위하여 바쳤네.

 

나사렛 목수예수의 집 문밖에는 [내 멍에는 쉽다](마11:30)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는 전설이 있다.그런 간판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이 만드신 멍에는 나사렛 사람들이 쓰기에 가볍고 쉽고 또 꼭맞는 것이었을 것이다. 소에게 메울 멍에를 만드신 그 예수님이 또한 하늘나라 일군들을 위한 멍에를 만드셨다.

 

(5) 가정관계

 

예수님은 대가족을 가진 가정에서 자라났음을 항상 기억할 필요가 있다(마13:55,막6:3). 그 아버지 요셉의 이름은 별로 그의 전기 중에 나타나지 아니하므로 그는 일찌기 세상을 떠났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그는 맏아들로서 그 아버지를 대신하여 가정의 책임과 의무를 담당한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의 가정에서 된 일을 간접적으로 설명해 주는 이야기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잃어버린 동전 한푼을 찾기 위하여 온 집안을 쓸고 찾았다는 이야기 (눅15:8),가루와 누룩 이야기(마13:33), 밤에 갑자기 찾아온 손님을 대접하기 위하여 이웃집 사람을 깨워서 떡을 빌려온 이야기(눅11:5),등경 위에 둔 등불 이야기(마5:15),어린애들이 무엇을 먹고 싶어서 간청하는 이야기(마7:9)는 모두 마리아의 가정에서 일어난 구차했던 생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일 수 있다. 예수의 가정 생활에서 윤택함을 보여 주는 귀절은 없다. 후일 무리들이 예수를 조롱할 때에 [이 사람이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마13:55)고 한 사실로 보아 그의 가정이 당시 어떠한 위치에 있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비록 가난한 곳이기는 하지만 예수님이 자란 곳이며 화평한 가정이었고 하나님도 이 가정에 함께 했었다. 기록되지 아니한 침묵의 기간에 이 가정에 그는 충성을 다했으며 자기의 가정을 그는 신성하게 이끌어갔다. 이 다섯 가지 관계가 그의 지상 사업을 시작하기 전의 준비 요소들이다. 30년의 생활기록이 우리 앞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혼돈한 세계를 다시 일으키고 잃어버린 인간성을 구원하는 위대한 역사가 시작되었지만 그것을 자세하게 보여 주는 기록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이 갑자기 그에게 임하여 그의 아들 그리스도를 이 땅위에 보내어 일하게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