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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사 3. - 1

Joyfule 2006. 9. 25. 00:35

제 3 장 루터

1.마틴 루터의 어린 시절과 회심

루터는 1483년 11월 10일 독일의 광산촌 만스펠트 지역에 속한 조그마한 아이스레벤에서 아버지 한스 루터와 어머니 마르가레테 지글러 사이에서 태어났다.그는 어려서 부터 가난을 체험하고 경건한 신앙생활을 경험하면서 자랐다.그는 공부를 하면서 학비를 면제 받았지만 교회의 성가대에서 의무적으로 노래해야만 했다.


루터는 3년간의 아이제나하의 생활을 마치고 에르푸르트 대학 시절을 맞이 하였다.이 대학은 후기 스콜라학문에 속하는 스코투스 노선을 채택하였으며 오캄과 가브리엘 비엘로 이어지는 유명론의 전통에 서 있었다. 루터는 이곳에서 출세를 보장하는 법학을 공부하기로 하였고 또한 자격을 가졌다.그러던 그가 주위의 부러운 눈총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어느날 사라져 버렸다.루터가 수도원에 들어가게된 동기에 대해서 많은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 오지만 이러한 이야기는 오히려 루터를 모독하는 내용인지도 모른다. 다만 그는 영혼구원의 확신과 하나님으로부터 죄사면의 확신을 받기를 원했다.그의 이런 자세가 수도원 문을 두드리게 하였다.


2.수도원에서의 루터

루터가 문을 두드린 수도원은 어거스틴파 운둔수도회 였다.이 수도원은 당시에 가장 신선한 수도원으로 알려져 있었으며,여기에는 후기 유명론에 입각한 스승들이 있었다.그리고 이들은 교황의 절대성,양심의 가책,교황의 면죄부의 효력등을 엄격하게 주장 하였다. 루터는 이런 유명론 신학에 서서 혼자 성경을 읽는것이 금지 되었고 스승들의 글을 읽도록 하였다. 루터는 성경읽는것이 금지 당한채 자신의 죄를 찾아서 고백하기 시작 하였다.루터의 고해 성사는 수도원의 가벼운 규율을 어긴 데에 이르기 까지 모든 죄를 찾아서 고백하고 또 고백 하였다.그러나 아직까지 고백해야 할 죄를 찾지 못한듯한 자책감 속에 있었다.
이러한 루터의 고뇌를 알아차린 사람은 당시 교황청 대리인 으로서 교황청을 방문했돈 요한 스타우피츠 였다.그는 루터의 고민을 듣고서 성경을 읽을수 있도록 허락 하였다. 성경을 읽으면서 그는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리고 여기서 그는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된다는 대 명제를 발견하게 된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의 의와 인간의 무능이 서로 상반된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의롭게 될때에 한해서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주시는 것으로 알았다.

그렇지만 슈타우피츠는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내 자신의 소유가 될수 있다.고 설명하여 주었다.하나님과 인간은 인격적인 신뢰를 통해서 서로 교제할 수 있으므로 믿음이야 말로 의인이 가져야 할 모든 것이었다. 루터가 이런 영적 깨달음을 통해서 후기 유묭론적인 참회제도를 벗어나는데는 무려 2년이란 고뇌의 기간이 필요했다.그렇지만 자신의 이런 깨달음이 중세의 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대의 문을 열었으며,종교개혁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그런가 하면 이것이 비텐베르크 대학의 부속 교회당 정문에 95개조의 면죄부 반박문을 못박은 소리와 함께 중세인들의 귀에 울려 퍼져 나갔던 것이다.

3.비텐베르크의 루터

후기 중세의 사람들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대학을 설립하였다.그래서 유능한 교수를 초빙하고 도시의 면모를 새롭게 하였다.선제후 프레데릭도 챨스 5세의 삼촌으로서 자신의 영지내에 대학을 세움으로서 자신의 힘을 과시할려고 하였다.그래서 비텐베르크 마을에 대학을 세우고 학생을 모집하고 교수를 모집했다.그러나 운영이 점점 어려워지자 프레데릭은 새로운 교수진을 초청하기를 원했는데 루터는 슈타우피츠의 추천을 받아 에르푸르트 수도원을 떠나 비텐베르크로 옮겼다.루터는 먼저 아리스토텔레스를 강의 했으나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자 그는 신학을 공부하기를 요청받고 어거스틴을 공부하기 시작했다.그는 설교도 하였으며 1511년에는 교단의 업무차 로마를 방문하였다.


그의 공적인 업무를 마치고 거룩한 계단에 이르러서 전통에 따라서 무릅으로 오르다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는 말씀이 떠올라서 계단을 걸어서 내려 왔다고 한다.그리고 그토록 거룩했다는 로마의 부정과 부패를 보고서 중세적인 제도를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1512년 신학 박사 학위를 받고 신학교수가 되었다.그는 중세적인 스콜라 강의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였다. 그는 실천적인 힘이 있는 강의를 하였다.인간은 자신의 공로와 상관없이 구원을 받는다.신앙이란 스리스도 역사적 사역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는 것이다.인간은 하나님의 은총에 의하여 죄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들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이러한 사면에 대한 깨달음이 성화의 시작이다.


루터는 1515년과 1516년에 어거스틴과 중세의 신비주의를 더욱 연구 하였으며,이때부터 중세에 대한 비판을 가하기 시작 했다.이때부터 그의 명성은 널리 알려졌으며,많은 학생들이 몰려 들었고 비텐베르크 대학은 성장하기 시작했다.이처럼 루터의 종교개혁은 상호유익을 위해서 필요했기 때문에 가능하기도 했다.
즉 루터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삼촌인 프레데릭의 신변보호가 필요하였고 프레데릭은 자신이 세운대학을 명문대학으로서 성장시켜주는 명교수이며,명설교자인 루터가 필요하였다.

4.95개논제를 못박기까지

종교개혁의 기폭제는 면죄부였다.중세의 참회제도에 의해서 사람은 완전하게 죄를 고백할수 없으며,사제가 부과한 보속행위도 완전하게 행할수 없었다.따라서 교리적으로 누구든지 영세를 받았으면,지옥에는 가지 않지만 그렇다고 천국에도 가지 못하였다.그래서 중세인들은 누구든지 연옥에 갈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지만 연옥에서의 고통의 기간을 얼마나 단축시키느냐가 관심거리였다.그래서 오직 자신을 위해서,연옥에 있는자를 위해서 면죄부를 사는것은 중세의 미덕이었다.


1513년 교황의 자리에 오른 레오 10세는 전임자 율리오스 2세가 남겨놓은 재산을 탕진하였다. 르네상스 교황으로서 그는 베드로 성당의 건축을 계속하기로 하였다. 그렇지만 교황청의 재산을 탕진해버린 그로서는 면죄부를 다시금 발매하기로 결정했다. 레오10세가 선포하고 브란덴부르크의 알버트와 마인쯔의 대주교가 징수를 맡고 도미니크파 수도자 요한테첼이 판매하였던 면죄부는 루터를 그대로 있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입성한 면죄부 판매인 요한 테첼은 “하늘문이 열리노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면서 면죄부를 판매하였다.다행히 비텐베르크는 프레데릭의 명련에 따라서 들어오지는 못했지만 주민들이 인근 부근에까서 면죄부를 사오는 것을 보고 루터는 참을수가 없었다.


매년11월1일 모든 성자의 날을 기해서 프레데릭은 비텐베르크 대학의 성당에 보관중이던 유물을 무료로 개방하였으며 그날이 되면 많은 참배객들이 찾아오곤 하였다. 그래서 루터는 바로 이러한 점을 이용해서 유물에 보관되어 있는 비텐베르크 대학의 ㅂ주속교회당 정문에 95개에 달하는 면죄부 반박 논제를 못박아 게시 하였다.

5. 라이프찌히 논쟁

1519년 엑크와 루터 사이에 라이프찌히 신학논쟁이 개최 되었다. 이것은 루터의 95개조의 면죄부 반박을 게제한후 엑크는 “오벨리스크”라는 답변서를 작성해서 발표하고 또다시 루터는 “아리테리스크”라는 답변서를 작성하였다.이렇게 시작되었던 대결이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자 결국 라이프찌히 신학논쟁으로 가게 되었다.

 여기에서는 노련한 논쟁사 엑크의 승리로 끝났다. 루터 스스로 이단을 좋게 말하게 함으로서 스스로 이단에 속한다고 인정케 하였다.루터는 우울하게 비텐베르크로 돌아왔지만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것인가를 더욱 명확하게 간파 하였다.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은 단순하게 면죄부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종세교회의 존재 그 자체를 흔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루터는 힘이 있었다.젊은 인문주의자들이 루터를 도와주었으며,도시민들도 독일이 로마로 부터 독립해야 된다는 마음을 더욱 강하게 가지게 되었다.이러한 상황에서 루터는 로마교회의 존재를 뒤엎어 버리고 동시에 종교개혁의 대헌장이라고 할수 있는 3개의 논문을 발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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