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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영' (마지막시대에 악을 정복하는 법 중...'릭조이너')

Joyfule 2006. 8. 16. 01:05


종교의 영 이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계명이자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은사다. 
두 번째 큰 계명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주님이 단언하셨듯이, 이 두 계명을 지키면 모든 율법을 지킬 수 있다. 
그 말은 우리가 이 두가지 계명을 지킨다면 다른 법도 지킨다는 것이다. 
(마 22:34-40, 롬13:8 참고) 
주님을 사랑한다면 우상을 숭배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웃을 사랑한다면, 그들을 시기하지도, 도둑질하지도, 살인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두가지 사랑하라는 긍정적인 계명을 지킬 때 
다른 부정의‘하지말라(do not)' 는 율법을 지킬 수 있다. 
주님을 향한 단순한 사랑이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대부분의 악을 이기게한다. 
그래서 악을 대항하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가 바로 그 사랑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높은 목표이기에, 
우리 삶에 있어 초점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궁극적인 탐구에서 벗어날 때, 
사단은 종교의 영을 통해 교회에 가장 기만적이고 치명적인 공격을 해댄다. 
귀신은 우리가 바라 보는대로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우리 삶 속에 악한 것이 집중하게 된다.(고후 3:18). 
우리가 계속해서 악을 바라보는 한 그 지배를 벗어날 수 없다. 
이와는 반대로, 주님과 주님의 영광을 바라볼 때, 
우리는 주님의 형상으로 변한다. 
우리 삶 속에 있는 죄와 잘못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다. 
사실상 성경은 우리 스스로 점검하고 시험해 보아서 여전히 
믿음 안에 있는지 살펴보라고 명하신다.(고후 13:5을 보라) 
죄악을 발견한 후에 이렇게 할 수 있다. 
선악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생명의 나무로 갈 것인가? 
스스로를 더 낫게 말들면 주님이 받아주시는가? 
아니면 예수님의 십자가로 돌아가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과 용서를 발견해야 하는가? 
사단의 주요 전략은 우리로 하여금 악에 계속 초점을 맞추어, 
선악과를 먹고 주님과 십자가의 영광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그러한 전술은 종교의 영이라는 형식으로 온다. 
그것은 참된 주님에 대한 이러한 거짓 가면을 쓰고, 
뉴에이지 운동과 모든 다른 컬트를 합친 것 보다도 
교회에 더 많은 손실을 입혔다. 

 
종교의 영의 속성  
종교의 영은 우리 삶 속에 있는 성령의 능력을 대체하기 위해 
종교적 활동을 꾀하는 악한 귀신이다. 
그것의 주요 목표는 교회로 하여금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딤후 3:5) 하게 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그와 같은 자들을 피하라고 권면하셨다. 
이러한 종교의 영은 “...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마태16:6)으로 
주님께 제자들에게 조심하라고 경고하셨다. 
주님은 자주 비유를 들어 가르치셨다. 
종교의 영은 떡의 누룩처럼 작용해서, 영양적인 가치나 성분을 
첨가한 것이 아니라 단지 부풀리게 만든다. 
그러한 것이 종교의 영의 부산물이다. 
주님의 교회에 생명이나 능력을 더하지 않고, 최초의 타락과 
그 후의 모든 타락의 원인이 되었던 바로 인간의 교만을 부풀린다. 
사단은 교회 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다. 
...주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야고보서4:16 KNJV 
주님은 교만으로 부풀려진 어떤 일에도 거하지 않으시며, 
그분 자신이 그런 일을 물리치신다는 것을 사단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사단의 전략은 우리를 성경 읽는 시간이나 주님의 증인이 되는 일, 
아니면 가난한 자들을 먹인 일들과 같은 
좋은 일을 하면서도 교만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단은 교만으로 주님의 뜻을 행하면 우리의 일은 주님의 뜻과는 반대가 되고 
그 일은 결국 우리를 타락하게 만든다는 것도 알고 있다. 
사단은 또한 일단 누룩이 떡에 들어가면, 제거하거나 수정하기가 
아주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교만은 그의 속성상, 제거하거나 수정하기가 가장 힘든 영적 요새다. 
종교의 영은 이미 주님의 생각이나 말씀이나 주님을 기쁘게 하는 일을 
안다고 추정하도록 부추겨 결국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한다. 
그러한 착각은 주님이 우리와 같다고 믿는 결과다. 
종교의 영은 성경을 합리화하도록 부추겨 다른 사람에 대해 꾸짖거나 
권면하거나 시정의 말을 하게 하지만 정작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아니다. 
종교의 영이 당신 삶 속에 들어 왔다면, 
이미 당신이 아는 누군가가 이것을 꼭 읽어야 한다가 생각했을지 모른다. 
당신도 이 책이 필요하기 때문에 주님이 이 책을 읽도록 하셨는지 모른다. 
사실상 우리 모두가 필요하다. 
이 사악한 영은 어느 정도 우리 모두가 싸우고 있는 적이다. 
이 끔찍한 기만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려야 한다. 
이 강력한 기만으로부터 벗어나는 만큼 우리는 능력안에서 참 복음을 전할 수 있다. 
교회와 종교의 영의 대결은 과거 가장 치열한 전투 중의 하나였다. 
우리 모두는 이 전투에 참가하고 있다. 
결정적인 문제는 어느 편에 서있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어두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거기서 이끌어 올 수 없다. 
이 막강한 악한 대적으로부터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님께 우리에게 그 분의 빛을 비추시고 이것을 어떻게 
각 사람에게 적용하는지 알려 달라고 구하여야 한다. 
예수님과 바리새인들과 계속되는 갈등에서 알 수 있듯이 
처음부터 교회는 이 영과 치열한 전투를 벌여왔다. 
바리새인들의 주요 특징이 다른 사람의 잘못에만 초점을 두고 
자신의 잘못에는 눈이 멀어 있듯이, 종교의 영은 우리에게 똑같은 일을 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