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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싸워 이기는 비결

Joyfule 2019. 1. 15. 04:18

 
       죄와 싸워 이기는 비결
 



이 시대의 우리네 교회에서는 죄에 대한 가르침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왜냐면 지금의 신앙생활로 구원을 얻게 되었으며, 이 땅에서 얻게 된 축복만을 발하면서 교회마당을 밟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교인들에게 죄를 지으면 지옥불로 던져진다는 설교를 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래서 목사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덕담이나 격려, 위로, 축복 등을 마구 쏟아부어주며, 마치 귀를 간질이는 말의 경연장이 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이다. 교인들도 그런 은혜로운(?) 덕담을 듣는 설교에 익숙해져서, 정죄나 회개, 지옥과 심판과 같은 주제의 설교를 하는 목회자들을 교회에서 내쫓고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죄를 외면하고 덮어둔다고 해서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죄의 결과로서 정신질환이나 고질병, 성인병에서 고통 받고 있고, 가정은 황폐해지고 찢어지고 있으며 가족들 간에는 대화가 없고 사랑이 식어가고 있다. 하는 일마다 열매가 없고 각종 불행한 사건사고로 삶이 엉망진창이 되어 가고 있다. 그래서 영혼은 갈수록 메말라지고 냉랭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 바로 죄로 인해 영혼과 삶이 병들고 죽어가고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죄를 인지하고 싸우려 하지 않고, 지은 죄를 회개하여 씻음을 받지 못하면서 날마다 죄를 밥 먹듯이 짓고 있으니 삶이 황폐해지고 영혼이 피폐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 영성학교 공동체 식구들은 자신에게 성령이 거주하지 않으며, 구원을 받을 만한 믿음의 증거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훈련을 하고 있다. 그렇게 4년이 지나서 쉬지 않고 전심으로 기도하는 습관을 들인 식구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여전히 성령이 내주하는 내공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이들도 허다하다. 이 같은 상황이 필자가 마주한 딜레마이기도 하다. 아직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의 습관을 들이지 못했다면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이제는 기도의 양이 적지 않았다면 그 원인은 딱 한 가지이다. 바로 죄와 잘 싸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죄와 잘 싸우는 비결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다.

 

아시다시피,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하나님이 싫어하는 모든 생각이나 성품, 말과 행동을 총 망라하는 단어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인들은 현행법을 위반하는 죄나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죄만을 죄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죄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자기 멋대로 산 인생, 하나님께 맡기지 못한 믿음, 거룩하게 살지 않은 것, 온전한 믿음이 없는 것 등도 죄라고 선포하고 있지만, 이러한 죄의 범주는 우리네 교회에서 가르치지 않기에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영성학교에 오면 이 죄에 대해 철저하게 훈련받고 있으므로, 죄를 인지하지 못해서 방치해서 걸려 넘어지는 일은 별로 없다. 죄에 대해 모르지 않지만, 죄와 잘 싸우지 못해서 짓는 경우가 허다하다. 남자들이 잘 짓는 죄는 짜증이나 화를 내는 죄이다. 특히 아내나 자녀 등 만만한 가족들에게 이런 죄를 짓고 있다. 소리를 지르거나 언어폭력, 혹은 물리적으로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미워하는 생각만 품어도 죄이다. 또한 돈과 명예 등 세상에서 잘되고 성공하려는 생각에 잘 넘어진다. 또한 음란한 생각에 자주 넘어간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도 은밀하게 음란물을 볼 수 있으므로 음란한 생각이 들어오는 통로가 무척이나 넓다. 여자들은 남자와상대적으로 연약하므로, 걱정이나 염려, 불안이나 두려움, 의심이나 좌절, 절망 등의 부정적인 죄를 자주 짓는다. 또한 쇼핑에 정신을 빼앗기고 럭셔리한 라이프 스타일을 채우려는 탐욕과 방탕함의 죄에 잘 넘어간다. 청소년이라면 게임중독이 되거나 음란물을 통해 죄를 짓고, 부모 등의 어른들에게 반항하는 죄, 또는 거친 말이나 욕 등을 내뱉는 죄에 노출되어 있다. 어떤 죄라도 생각으로 들어온다는 것을 잊지 말라. 그러므로 죄를 짓게 하는 생각이 들어오면 즉시 빠르게 예수피를 외치면서, 죄를 넣어주는 생각이 사라질 때까지 전심으로 축출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죄를 빠르게 인지하고 즉시 쳐내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지가 늦어서 이미 생각으로 받아들인 뒤라면 쳐내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고수는 빨리 인지하고 반사적으로 기도를 시작하는 사람이고, 하수는 언제나 늦게 인지해서 기도가 늦어지는 사람이다. 빨리 인지한 사람과 늦게 인지한 사람의 차이는 죄를 짓게 하는 생각이 사라지는 속도에 있다. 빨리 인지해서 치면 비교적 빨리 사라지지만, 늦게 인지하면 기하급수적으로 늦는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고수는 죄를 넣어주는 생각이 말끔하게 사라질 때까지 악착같이 기도하지만, 하수는 기도하다가 생각이 사라지지 않으면 실망하고 좌절에 빠져 더 이상 기도를 포기한다. 귀신의 목적은 죄를 짓게 하는 것이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실망하고 좌절해서 자포자기 하는 것이다. 사실 죄를 지으면 철저하게 회개하여 죄 씻음을 받으면 된다. 그래서 다시 일어나서 죄와 싸우는 기도를 하면 된다. 그러나 좌절하고 낙심하고 절망한다면 기도하는 것을 포기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귀신들은 가장 치명적인 죄인 낙담과 절망에 사로잡혀서 절벽에 떨어뜨리게 해서, 다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를 하지 못하게 하려고 집요하게 공격하는 것이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전15:55,56)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18:1)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12:3~5)

 

영원한 사망은 죄로부터 오며, 죄의 능력은 율법에서 비롯된다. 귀신들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율법을 지키지 못한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넣어주어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히게 만들어서 실망과 좌절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기도를 할 때 절대로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불의한 재판관에게 찾아가서 소원을 이룬 가난한 과부의 비유를 해주셨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이 비유를 마치면서, 인자가 다시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는 불길한 예언도 해주셨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낙심하지 않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보기 힘들 거라는 말씀이시다. 예수님께서 징계하실 때도 우리의 구원을 위함이며, 아무 죄가 없는 하나님께서 우리 같은 죄인을 위해 십자가의 고통을 달게 받으신 이유이다. 그러므로 어떤 고난과 역경이 오더라도 절대로 낙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를 넣어주는 생각이 들어올 때는 말끔하게 사라질 때까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집중적으로 싸워야 한다. 치열하게 싸워서 없어졌다고 하더라도, 다시 들어오면 또 그렇게 반복해야 한다. 그래서 내공이 쌓이면 귀신들의 공격이 약해지고 뜸해질 것이다. 그러나 싸울 때마다 쉬 낙심해서 포기한다면 절대로 이길 수가 없다. 이 싸움의 승패는 자신의 의지나 싸우는 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에 있다. 예수님의 보혈이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믿음이 부족하기에 전심으로 맡기고 끝까지 인내하지 못한다. 이 싸움은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지켜보고 계시다. 그래서 끝까지 낙심하지 않고 싸우려는 믿음을 가진 자녀에게 나타나셔서 도와주시고 귀신의 공격을 몰아내주시는 것이다. 이것이 죄와 싸워 이기는 비결이자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