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삯과 하나님의 은사의 차이를 알라(롬6:20-23)
나름대로 한국교회에서 젊은이들이 좋아하고 건강한 교회로
꼽히는 교회의 목사의 설교를 잠깐 듣다가 그만 크게 실망을 했습니다.
그 내용인즉 베드로가 물고기 잡는 어부로 있다가 주님을 만나서 주께서
너는 장차 사람을 낚은 어부가 되리라 한 말이 큰 긍지가 되었다고 합디다.
그리고 이새의 말째 아들 다윗은 아버지도 대수롭게 보지 않는 아들이었으나
이스라엘의 왕으로 부름을 받아 기름부음을 받은 것도 큰 긍지를 주신 거랍니다.
아마 이 말씀을 들은 그 교회의 신자들도 큰 긍지를 가지고 은혜를 받았다 할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시므로 내게 일어나는 그 놀라운 임팩트를 모르고
어린애 장난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불쌍한 모습을 보아야만 하니 참 민망합니다.
로마서 6장은 주의 대속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에 연합이 되는 세례(침례)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담에게서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 있는 자로
소속이 바뀌고 주관자가 바뀌고 이제 성향마저 서서히 바뀌어 가는 말씀입니다.
Q. 아담 안에 있는 죄 가운데에 있을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나요?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롬6:21)
A. 바울은 아담과 그리스도를 대칭하여 복음을 진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의의 종이 되어야
하느냐 하면 그리스도의 생명의 능력을 맛보기 위함입니다.
그럼 사망이란 건 어떤 존재일까요? 생명이 존재이며 실제의 에너지인
것처럼 사망과 음부도 분명한 존재이기 때문에 나중에 불 못에 들어갑니다(계20;14)
그 쪽에선 거짓선지자와 적그리스도 다음에 마귀 사단이 있고 최고수가 사망입니다.
이 사망이 내게 왔을 때 나타나는 현상은 삶이 무미건조하여 도무지 살맛이 안 납니다.
대부분 나이보다 폭삭 늙은 사람들은 사망의 종으로 오랫동안 고생한 사람들입니다.
사망을 가지고 있다는 건 수류탄을 들고 산다고 보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제가 무슬림 지역을 다닐 때에 보디가드가 M16과 45구경 권총과 수류탄을
가지고 늘 저를 따라 다니는데 항상 긴장하고 불안한 모습으로 주변을 살핍니다.
아무 것도 없는 저는 홀가분한데 중무중한 그는 항상 초조한 날들을 보냈습니다.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인간은 사망의 종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열매는 뻔한 이야깁니다.
Q.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제는 어떤 열매를 맺나요?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A. 그리스도인의 저력은 거룩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여호수아도 가나안 땅에 들어오면서 거룩함에 영접되어 신발을 벗었습니다.
베드로는 거룩함으로 부르심을 받았으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합니다(벧전1:14)
하나님이 거룩하심으로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신 말씀을 인용합니다(벧전1:15)
만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에 연합이 되는 회개와 세례를 모른다면
그는 여전히 죄와 사망 가운데에 버티고 자의로 거룩함에 이르려고 노력하겠지요.
주님께서 거룩하신 자(단수)로서 그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으로 거룩함을 입은 자들(복수)을
사망의 세력을 잡은 마귀를 멸하시고 그에게서 빼앗아 놓아주셨습니다(히2:11,14-15)
그로 인해 우리는 죄에서 해방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되어 소속이 바뀌었습니다.
그 종국은 영생입니다. 믿음의 결국은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9)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하나 될 때에 영원한 생명이 한 없이 공급됩니다.
그래서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는 영생의 상태를 가장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요15)
주를 믿고 있는 자에게 생수의 강이 넘쳐 남으로 삶의 의미를 찾고 나서 진리를
알고 하늘의 양식을 찾고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 참 그리스도인의 복입니다.
이러한 삶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우리에게는 큰 기쁨이 됩니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께 드린 만큼 가치가 달라집니다.
우리가 그의 영광을 위해 일하는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광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Q. 지금 나는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가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3)
A.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가졌으면 영생을 얻고 있는 겁니다.
죄가 주는 봉급은 언제나 사망입니다. 그것이 엄연한 영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은사(gift) 곧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은 영생입니다.
제가 미국에 공부하러 갔을 때에 제임스 케네디에게 질문한 것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이란 은사는 미국교회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가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다른 은사를 말하느라 차마 대답을 못하더라고요.
영생이라면 영원한 생명으로 영원히 산다는 개념만 가지고 있어 죽음을 보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생각만 할 뿐 현재적인 하나님의 은사라는 사실을 간과하는 걸 봅니다.
아뇨. 이 은사를 받은 사람은 그 영생의 능력으로 인해 복음을 전하는 행함이 됩니다.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은 영생의 은사를 확실히 받아 맛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영생의 은사는 구원의 즐거움이며 구원의 감격입니다. 그 행복을 남에게 전할
수 있다는 것은 보통 복이 아닙니다. 이런 일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아담에게서 그리스도 안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과 그 은사는 후회도 아낌도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 믿음과 자기 개념과 자기의 의식으로 인해 하나님의 생각을 앞서려고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럴 테면 하나님이 긍지를 주신다고 하는 말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눅15장에서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니 누가 더 좋아합니까?
사실은 돌아온 아들보다 아버지가 더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마음에 다가오는
이런 저런 느낌만 챙겨 생각하느라고 나로 인한 하나님의 기쁨은 미처 헤아리지 못합니다.
로마서를 살아 있는 말씀으로 읽도록 하십시오. 이 로마서 안에서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실존적이고 언제나 살아 있는 현재적사건으로 믿어야 합니다.
생명도 현재요, 사망도 현재입니다. 천국도 지옥도 언제나 실제이며 현재입니다.
잊지 마시고 날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이 하나님의 은사임을
믿고 그 분께 계속 돌아가고 또 그 안에서 더 가까이 나아가는 여러분이 되세요..
여러분의 개념과 잘못된 믿음이 하나님 아버지를 축소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그 분은 이미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약속대로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우리를 여기까지 부르시며 추적하여 오셨습니다.
그 아들을 우리에게 내어 주신 분이 무얼 더 아끼겠어요? 뭘 주춤거리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줄까 말까 약을 올리시겠습니까? 아니 우리를 모른다고 하시겠습니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를 거부하시겠습니까? 문전박대 하시겠습니까?
천부당만부당입니다. 다만 우리가 그 분을 찾아감이 없어서 받지 못할 뿐입니다.
만일 어떻게 주님을 내가 찾아 갈 수 있는지는 카페에 오셔서 긴 시간 공부하세요.
오늘도 우린 ‘주여, 나를 외면하시면 나는 어디 가리까?’ 하면서
‘주님 외에는 아무 곳도 갈 데 없습니다’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나갈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의 은사가 우리를 충만하게 하실 것을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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