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김요한목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된 걸 감사하라

Joyfule 2024. 2. 17. 09:40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된 걸 감사하라(롬6:15-18)



만일 로마서가 없다면 아담 안에서 잘 못 태어나서

죄와 사망의 종이 되었던 죄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을

믿고 따라 순종하여 그리스도와 연합이 된 구원의 과정을 알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바울이 로마서를 쓴 것은 그 당시 세계의 중심에 복음의 핵폭탄을

터드려 전 세계를 복음화 시키려는 비전이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를 잘 믿느냐 못 믿느냐 서로 비교하는 도토리 키 재기를 하는 교회가

있고 십계명을 지켜야 하느냐 마느냐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현재의

상황도 결국은 로마서적인 구원이 아니기 때문에 일어나는 폐단이라고 봅니다.

주님이 밖에 계시는 채로 예수 믿는다는 말이 누룩처럼 퍼져 결국은 아무리

잘 믿어도 예수를 밖에 두고 믿는 라오디게아교회로 점철되고 마는 겁니다.

지금의 교회의 모습은 예수를 믿고 말씀대로 살면 하늘에 상급이 있고

다시 오실 주님이 공중에 끌어올려 휴거가 되고 다시 이 땅에서 천년 동안

왕 노릇한다는 소망은 있지만 지금 현재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먹으므로 세상을 이기고 주님과 더불어 보좌에 앉아(계3:20-21)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 있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로마서적인 구원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겁니다.

 

Q. 은혜 아래에 있다고 죄를 지을 수 있는가요?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롬6:15)

 

A. 그럴 수 없다고 성경은 단호하게 말씀합니다. 

율법 아래에 있으면 언제나 고발과 변명의 내란이 일어납니다(롬2:15)

구약의 율법 아래 있던 이스라엘은 언제나 즉결 처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은혜 아래 있다는 것은 죄인이었던 상태로 믿음에 의해

그리스도 안으로 옮겨져서 그 죄에 대한 처단이 유예되었다는 뜻입니다.

진리로 구분되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으로 재창조

되어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이 되고, 그리고 난 다음에 태워 버릴 것은

불 못으로 보낼 그때까지 은혜 안에서 심판이 유예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심판이 유예 되어 있다고 해서 죄를 막 지어도 되느냐

그럴 수는 없다고 말씀합니다. 지금 현재 교계를 보면 율법주의자들이 많습니다.

이 율법주의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와 진리로 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은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진리 안에 들어와서 자유를 누리며 다른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그런 복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죄에서 자유와 진리 안에서 자유를 함께

누려야만 합니다. 이를 알지 못해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은 잘못입니다.

 

우리가  율법을 다 지킬 수는 없지만 믿음의 법이 우리 속에 와서

그 믿음의 법을 점점 풍성하고 자유롭게 하는 것은 율법의 요구입니다(롬8:4)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게 하는 몽학선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속에서 믿음의 법이 커지면 드디어 율법을 능가하는 사랑에 이르게 됩니다.

십계명을 볼 때 내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겼음을 알고

그래서 내가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겠구나 하는 잔소리를 듣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 아래에 있어도 반드시 율법이 필요하다 이 말입니다.

우리가 방법이 없을 땐 십계명을 보고 나는 완전히 망할 놈이구나! 끝났구나!

이렇게 되지만 이제는 새 언약이 우리 속에 있기 때문에 십계명을 볼 때

아차 내 마음속에 다른 신을 뒀었구나 내가 주님보다 딴 것을 더 사랑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고, 주여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이 나를 온전히 다스려 주옵소서.

이렇게 할 수만 있다면 십계명이 우리에게 믿음의 유익이 되는 겁니다.

그러나 반 율법주의가 되어 율법은 필요 없다 십계명은 없어졌다 이러면 안 됩니다.

또 혼합 주의도 문제입니다. 나름대로의 이성의 판단에 맡겨라 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인간의 이성은 결코 믿을 바가 못 됩니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윤리를 만듭니다.

현실주의는 또 어떻습니까? 현실세계는 오염된 인간의 구조적인 죄에 완전히

오염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더 안 됩니다. 왜 안 되는지 고린도교회를 보면 압니다.

 

Q. 순종의 대상에 따라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가요?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6:16)

 

A. 죄를 순종하면 사망을 얻고 의를 순종하면 생명을 얻습니다.

자신이 성령의 음성을 귀담아 들으려 하는가 육체로부터

욕심의 언어(오감)를 귀담아 들으려 하는가 늘 점검해 보십시오.

이 공부가 참 어렵습니다. 오래 걸립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광야 40년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우리를 종으로 삼을 것은 하나님의 의, 진리, 거룩함,

사랑 이런 것들 밖에 없습니다. 만약 아니면 육신을 따라 살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알라”(갈5:1)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십자가의 사활로 죄와 사망에서 자유를 주셨다면

우리는 적어도 그리스도 보다 못한 것들은 주인을 삼지는 말아야 합니다.

자유를 얻고 나서야 비로소 그 다음으로 사랑의 종이 될 수 있습니다(갈5:13)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고 그 상황에서 그 구조적인 죄와 생활의 자유를

못 누리면 그것이 주인이 되기 때문에 사랑을 좇아가는 사랑의 종노릇을 못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묶이지 말아야 합니다. 죄의 종은 사망입니다.

순종의 종은 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는 성향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쪽으로 기울어지는 나의 마음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개념이나 사고방식,

생각이나 사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므로 말미암아 계속 씻겨 집니다.

따라서 말씀으로 거룩하게 되고,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게 됩니다.

 

Q. 바울의 감사를 우리도 공유하고 있을까요?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이 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6:17-18)

 

A. 우리는 원래 아담 안에 있는 죄의 종이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교훈의 본, 전통, 가르침의 원리, 교리, 이런 걸 따르고

전승받으므로 그것을 마음으로 순종 곧 귀담아 들음으로서 구원에 이르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제적으로 효력이 나타난 것이 바로 이겁니다.

말씀을 듣고 분명한 효력이 있어야 합니다. 병원의 약도 신뢰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효력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우린 죄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의로 옮겨져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젠 우리가 죄의 지배 아래에 있지 않음으로 의를 따라 사랑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루터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에 의해 자신을 팔고

그리스도를 사들이는 걸 위대한 거래라고 말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말씀을 듣다보니 어느덧 나도 모르게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이 되어

그 안에서 죄의 종이었던 나는 십자가 건너로 멀어져 가고 의를 좇아 살아가고

있는 자신으로 말미암아 뒤엣것은 똥같이 여기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에

참여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빌3:8-14)

따라서 만일 우리가 바울의 복음을 공유한다면 바울과 같은 감사를 드릴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