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믿음의 무서운 금단현상
제가 전에 복음을 사다리에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회원님들께서 글 읽는 방법 때문에 지금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다리는 위에 올라가기 위한 도구입니다.
사다리는 위로 올라가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다리를 밟고 올라가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지식 주의에 심취하다 보면 신앙이 지식으로 흐르게 되고,
성경의 본질을 떠나 단어 하나, 구절 하나에 가려서 말씀의 본질이 가려지고 은혜 자체도 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지식 믿음의 가장 취약한 맹점입니다.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이는 곧,
사다리의 원래 목적인 밟고 올라가는 본질을 잃어버리고
사다리의 재질을 따지고,
사다리의 디딤 틀 간격을 따지고,
사다리의 기울기를 따지며,
사다리 자체가 지식이 되어 사다리 자체에만 치우치는 악한 현상이 생기게 됩니다.
마치...
사다리에 대하여 잘 알면 그게 믿음이고 구원받은 것으로 착각하는 참담한 현상이 찾아옵니다.
교만도 올라오고, 자만심도 올라옵니다.
이런 좋지 못한 것들이 동시다발로 올라옵니다.
그것은 마귀가 절묘하게 사람을 속여넘기는 경우입니다.
어느 블로그든 카페에서든 글을 읽다 보면 단어의 선택이나 문맥상 맘에 안 드는 구석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치중하여 신경쓰다 보면 글을 안 읽으니만 못하고, 은혜도 안 되고, 짜증이 확 올라옵니다.
그래서 글의 본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관성적으로 꼭 한마디 훈수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현상이 찾아옵니다.
이것이 지식 믿음의 가장 대표적인 금단현상입니다.
어떤 글이든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완벽할 수 없고, 글을 읽는 분들의 기준에
100% 다 만족하게 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사다리는 올라가는 것이 본질이고 주목적이듯,
복음은 성령으로 회개하여 거듭난 후 성령님이 인도에따라 순종하며
구원의 대열에 합류하게 하는 것이 본질이고 목적입니다.
전에 누가 단어 선택 때문에 권사님이 올리신 글에
현대 기독교에서 같은 의미로 쓰이는 단어를 가지고 자신의 교단이 번역한 성경에는 이렇게 되어있다며
이 표현이 올바른 표현이니, 저 표현이 올바른 표현이니
불만을 터트리다가 분에 못 이겨 스스로 탈퇴한 분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아주 좋지 못한 현상입니다.
본질도 아닌 단어 선택의 문제를 가지고 논쟁을 합니다.
올라가는 사다리의 재질이 알미늄이든 나무이든 황금이면 또 어떻습니까...
황금으로 만들었다고 해야 사다리 구실을 합니까?
중요한 것은 사다리의 기능이 본질이고 사다리를 밟고 올라가는 게 핵심입니다.
성경을 누가 번역함에 따라 단어의 선택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본질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제가 요즘 지식 믿음의 위험성에 대해서 종종 글을 쓰게 됩니다.
그 정도로 지식 믿음의 덫에 걸리면 중독되고, 복음의 본질인 영적 지혜가 없어지고,
복음의 본질에서 멀어지고, 머리만 비대해집니다.
복음의 핵심이 아닌 곁가지에 치우치게 됩니다.
즉, 곁가지 지식으로 머리만 채워서 삶이 따라가지 못하고 머리를 통해 나오는 입술 신앙에만 의존하게 됩니다.
그래서 논쟁이 쉽게 유발되고,
그 논쟁이 마치 진리논쟁이란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되어 분열과 분노의 악한 영을 불러들입니다.
마귀가 이 틈을 그냥 보고만 있지 않습니다.
반드시 틈타게 되어 있습니다.
하오니 블로그나 카페에서 활동하는 회원님들은 글의 본질에만 집중하시고
곁가지는 어지간 하면 그냥 넘어가시길 권면합니다.
그러나 글의 본질이 의문스러우면 얼마든지 말씀하십시오.
우리 카페에서만큼은 얼마든지 제가 답해드리겠습니다.
본질만큼은 정확해야 하고, 본질이 빠진 글은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이 도발할 때 왜 논쟁을 받아주신 줄 아십니까?
복음의 본질을 건드렸기에 이를 제대로 시정시키고자 함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쓸데없는 곁가지로 논쟁을 걸어올 때는 요나의 기적 외에는 보일게 없다고 단호히 말씀하셨습니다.
왜냐면, 기적을 보이는 것 자체가 구원으로 인도하는 본질이 아니었고
기적을 보이신들 완악한 바리새인들은 바알세불의 능력에 힘입어 저런 짓 한다고 몰아세울 게 뻔했기 때문입니다.
요즘 체험신앙이 없이, 지식 믿음을 소유한 자부심이 강한 사람들은 남들의 어떤 경험이나 체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바리새인처럼 귀신이 시켜서 하는 것이라고 몰아세웁니다.
바리새인과 너무도 닮아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더욱더 알아갈수록 그에 비례해서 더욱더 겸손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천재적인 머리를 지닌 명문가 출신 사도바울은 성령으로 거듭난 후
자신이 여태 배우고 갈고닦은 것이 다 배설물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구원의 본질과는 아무 관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경 지식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삶도 없이 본질을 벗어난 입술만의 지식은 세상의 허탄한 지식과 같은 것입니다.
성경은 구원의 본질을 알고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하는 삶이 진짜 하늘의 지혜입니다.
우리 초돌사 회원님들은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는 것에만 집중하는 귀한 분들이 되시길 간절히 권면 드립니다.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말 곧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디모데전서 6장 3-5절)
눈물의 기도 없이 성경에만 몰두하면 교만의 영이 틈타고
성경을 읽지 아니하며 기도에만 몰두하면 분별을 못 하여 마귀의 음성에 바로 넘어갑니다.
복음의 근본 원리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영적 균형입니다.
성경을 읽은 만큼 기도를 하시고 기도한 만큼 성경을 읽으십시오.
그러면 마귀가 꼼짝을 못 할 것입니다.
글 : 랑별파파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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